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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Nov 18. 2019

린다와 공부했던 날들

그런 날이 오래갈 줄 알았다


독일어 샘 린다와 공부한 시간은 2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석 달이었다. 까뮈의 <이방인>을 함께 읽었다.  그런 날들이 오래갈 줄 알았는데. 사람 일이란 알 수가 없다. 있을 때 잘하자!





독일어 샘 린다와 공부한 시간은 2월 초부터 4월 말까지 석 달이었다. 까뮈의 <이방인>을 함께 읽었다. 린다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이었다. 매주 배운 걸 테스트했다. 버거웠다. 한 주 전에 배운 것만 시험 보면 좋은데 범위는 처음부터 배운 곳까지였다. 페이지가 늘수록 부담도 늘었다. 린다는 창창한 30대. 왜 배운 걸 기억 못 하는지 이해가 안 되겠지. 나도 자꾸 까먹는 내가 이해가 안 되는데.


5월에 시어머니와 사시는 양아버지께서 쓰러지시고 매일 병원에 오가면서 공부를 중단했다. 이른 아침에는 기차를 타고 슈탄베르크 병원을, 점심 때는 다시 뮌헨으로 돌아와 한국 슈퍼에 알바를 갔다. 그리고 아이를 픽업하는 일로 하루가  찼다. 재활원을 거쳐 퇴원을 하신 후에는 주 1회 방문. 여름엔 한국을 다녀오고 가을엔 호텔에서 일을 하느라 린다와 공부를 다시 시작하지 못했다. 그 사이 린다도 다니던 빵집을 그만두었다.


린다는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성격 같았다. 린다가 다니던 빵집은 그냥 빵집이 아니었다. 뮌헨의 중심가 오데온 플라츠의 오래된 디저트 전문 가게로 명문 콘디토라이 Konditorei였다. 린다는 할 말을 다하는 직원 같았다. 직원들이 왜 화장실 청소까지 해야 하냐고 따졌다. 린다를 빼주었다. 청소는 다른 직원들이 했다. 이건 아니다 라고 하자 주인이 청소 인부를 따로 구했다는 것까지 봄에 들었다. 린다를 잡기 위한 전략 같았다.





린다는 왜 빵집을 왜 그만두었을까.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은 교양도 있고 수준도 높다고. 팁도 제법 받는 것처럼 말했는데. 린다가 빵집을 그만두었다는 말은 조카에게 들었다. 당시 린다에게 독일어 수업을 받던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 반년도 더 지난 지금은 조카만 수업을 계속하고 있다. 내가 볼 때 린다는 선생님으로 최고였다. 다만 공부를 어려워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어학은 6개월만 하면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스스로가 몇 개의 언어를 구사했다.


결론적으로 린다가 원했건 아니건 고객 관리를 잘하지는 못한 것 같다.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약한 곳을 잘 케어해 주지 못한 셈이 된 것이니 말이다. 다행인 건 독일어 과외도 떨어지고, 빵집 알바도 그만두고 어떻게 사나 궁금해서 조카에게 물어보니 외국인 학생들 에세이 작성법을 도와주고 있단다. 오, 잘 됐다! 그런 쪽도 잘 어울린다. 좀 더 학술적이고 깊이 있는 분야가 린다에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봄에 나온다던 책은 어찌 됐을까. 독일어 공부를 중단한 이후 몇 번 왓츠앱으로 근황을 주고받기는 했는데 책은 못 물어봤다. 린다의 자부심이자 책에 전부를 걸었는데. 소위 소설 아닌가. 조만간 안부를 물어야겠다. 린다와는 고작 세 달을 공부했을 뿐인데 오래 함께 한 사이처럼 느껴졌다. 글을 쓴다는 연대감도 한몫했다. 그런 날들이 오래갈 줄 알았는데. 사람 일이란 알 수가 없다. 별일 없을 때가 봄날 지도 모른다. <이방인>을 배우고 난 후 교훈은 하나. 있을 때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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