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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22. 2019

불행이 한꺼번에 찾아오듯 행운도 그러하길

2019년을 보내며


 불행을 불행이라 여기지 않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련 없는 삶이 어디 있나. 평생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지만,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내고 이겨내는 경험도 값지고 소중하다.


뮌헨 시청사 앞 마리엔 광장의 크리스마스 마켓과 트리



2010년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가 2020년 2월이면 독일에서 만 열 살이 된다. 그 사이 한국과 독일에서 남편의 일은 부침을 겪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을 시작한 지난 몇 년이 그랬다. 불행은 한꺼번에 문을 두드리는 모양이었다. 남편은 생각지도 못한 송사에도 휘말렸다. 살면서 그런 일은 두 번 겪고 싶지 않다. 나쁜 일은 예고도 없이 밀물과 썰물처럼 밀려왔다 밀려갔다. 그럼에도 지금은 말할 수 있다. 모두 지나간 일이다.


동안 금전적인 손해도 보았다. 창업 자금으로 억대를 날렸고, 억울한 송사를 만회하려고 3년 동안 끌어온 결과 변호사비만 수천이었다. 함께 송사에 말렸던 남편의 외국인 동료가 비용 한 푼 내지 않고 발을 뺀 대가였다. 누구를 탓하랴. 과한 욕심과 무리한 동업이 남긴 결과인데. 인생이 원하는 대로만 술술 풀려가는  약일까 독일까. 시련이라곤 모르고 살아온 남편이 체력적으로나 멘털로나 버텨준 것이 놀랍. 고백하건데 남편이 직장인으로 돌아가기를 바란 적도 많았다. 그러나 어쩌랴. 한 번뿐인 인생, 누구에게나 원하는 대로 살 권리가 있다. 가장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홉 수 넘기기 어렵다는 말이 있듯이 이 모든 일이 오십이 가까워 올 때 일어난 일들이다. 기왕 일어나고 겪은 일이니 그 정도로 넘어간 걸 다행으로 여기기로 했다. 더 늦은 나이에 불행이 닥쳤으면 어쩔 뻔했나. 거기다 남편도 나도 건강을 잃지 않았고, 그 와중에도 아이는 뮌헨에 와서 잘 적응하며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었으니. 어쨌거나 새해가 오기 전에 묵은 일들을 쓰레기 분류하듯 정리하고 싶었다. 불운했던 모든 일에 종지부를 찍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발을  수 있도록. 안 좋은 일에 계속 끌려다니는 두 번째, 세 번째 화살을 맞는 것과 같다. 그만하면 충분히 어리석었다.



마리엔 광장에서 칼스 광장까지. 뮌헨의 쇼핑 거리와 크리스마스 풍경



그렇게 마음을 먹자 수습은 간단했다. 전세를 주고 있던 한국의 작은 오피스텔을 처분하고, 독일의 레겐스부르크에 세를 받고 있던 소형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아직도 팔 게 남아있다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 깔끔하게 주변을 정돈하고, 송사 문제에서 미련 없이 손을 떼고, 제 살 길만 생각하 이기적인 동업자와는 인연을 끊고, 뮌헨에서 월세가 비싼 아파트에 살기보다 아담한 아파트를 사기로 했다. 뮌헨의 집값이 서울과 맞먹기에 은행 대출을 끼고 사야 지만 월세 대신 원금과 이자를 갚는다 생각하면 인생이 즐거울 것이다.


다행인 것은 아이가 어려서 중년의 나이도 잊고 신혼살림을 장만하는 기분으로  수 있다는 것. 독일에는 일자리가 많아 외국인인 내게도 일기회가 있다는 것. 아이는 열심히 공부하고, 남편은 성실하니 이보다 고마운 일이 없다. 불행을 불행이라 여기지 않기는 어렵다. 그러나 시련 없는 삶이 어디 있나. 평생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내고 이겨내는 경험도 값지고 소중하다. 어떤 것을 어려움이라 부를지 절대적인 기준도 없고, 그것이 언제 내게 들이닥칠 지는 누구도 모르기 때문이다.


백지장도 당연히 맞들면 낫다. 새벽부터 나가서 일한다고 벌면 얼마를 벌겠나. 그럼에도 백지장을 함께 들고자 하센 의지만은 남편에게도 아이에게도 전해질 것이다. 시련은 잘만 넘기면 가족을 똘똘 뭉치게 만든다. 시련의 순기능쯤 되겠다. 부족함 없이 자라는 아이에게도 인생을 배우는 공부가 될 수 있다. 엄마 아빠가 어떤 자세로 대하는가를 아이들은 정확히 보고 기억할 테니까. 어떤 인생을 살았건 마지막은 평등하다. 언제인지도 모르고,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고, 누구와도 함께 다. 우리가 떠난 이후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이 인생의 답이다.



뮌헨 시청사와 마리엔 광장 부근의 연말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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