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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Jan 04. 2020

2020년 새해에 받은 선물

영화 <카페 벨에포크>


뮌헨의 2020년 새해 선물은 사흘간의 햇빛. 그리고 나 자신에게 선물한 영화 한 편이었다. 인생은 영화 같은 것. 두 시간 만에 아귀가 꼭 맞게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막이 내리는.

뮌헨의 예술 영화관 <Arena>



뮌헨에도 새해가 밝았다. 뮌헨의 날씨는 사흘째 맑음. 12월 31일 밤 아이의 친구인 율리아나 집에서 재야의 종소리 대신 자욱한 연기 속에 불꽃놀이를  새해를 함께 맞이하자던 행사는 생략했다. 하필이면 그 우리 남편과 율리아나 파파가 동시에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양쪽 가장들이 한 해 동안 얼마나 고군분투했는지 여실히 증명된 날이기도 했다.


12월의 마지막 밤은 그리하여 조용히 집에서 보냈다. 셋이 소파에 나란히 누워 아이는 <마법의 요리책>이라는 청소년 영화, 나는 남편이 저녁 내내 고심하며 고른 고전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았다. 배우자와 함께 보기에 적당히 유쾌하고 적당히 해피 엔딩인 최고의 선택이었다!  해의 마지막 순간에 포인트를 살짝 챙기남편의 순발력. 새해 첫날을 감기로 맞이한 것만 빼고 말이다.





2020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찬란한 햇볕과 함께. 남편이 자신의 감기잊어버리고 산책을 제안했다. 나가는 김에 호텔에 들러 이직 전에 유니폼을 반납하려 했더니 초과근무 시간을 잘못 계산했다고 이틀을 더 나오란다. 그때 알았다. 호텔을 떠나기가 정말 어렵구나. 알겠다고 했다. 무조건 좋게 떠나는 게 내 목표라서. 몸도   새벽에 일어나는 워밍업 한다 생각하기로 했다.


1월 2일. 날은 더 화창했다. 어쩌라고 날씨는 그리도 좋은지. 남편은 아침부터 티슈 한 통을 다 쓸 만큼 코를 풀었다. 독일에 온 지 2년 동안 쉬지 않고 달려온 탓이었다. 2월 말 봄방학 때 얼마 전에 다녀온 아이 친구 동네로 스키 휴가를 떠나자! 남편에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최소한 사흘. 아이와 둘이서 작당을 하고 일 구덩이에서 파파를 구하기로 했다. 남편 순순히 백기를 들고 오케이 사인을 보냈.


1월 3일. 해가 밝았다. 며칠 쉬었다고 남편은 사무실행. 오후엔 레겐스부르크에 다녀올 계획이라 했다. 아이와 나는 개학과 새 출근을 앞두고 머리를 잘랐다. 우리 동네 해적 미용실 Pirate. 젊은 남자 미용사 파비의 솜씨는 여전했다. 말 없는 미소와 조용조용한 음성도. 오후에는 시누이 바바라가 할머니 할아버지 댁에서 자고 오기로 한 아이를 차로 데려다 주었다. 얏호! 남편도 아이도 없는데 뭘 하지? 이런 날 집에서 설거지나 청소하고 있으면 안 되잖아! 



영화 <카페 벨에포크>



우반을 타고 예술 영화관 <Arena> 달려 12월부터 벼르던 프랑스 영화를 보았다. 영어 제목은 <노스탤지어 여행 Nostelgie-Trip>. 독일어 제목은 <우리 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때 Die schönste Zeit Unseres Lebens>. 나는 독일어 제목이 더 좋았다. (한국어 제목은 <카페 벨에포크>) 프랑스 영화답게 자유분방하고, 가볍고, 유쾌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어찌나 자연스럽게 잘 살려내던지. 재미없는 도덕이나 딱딱한 교훈 같은 건 강물에나 던져버리고 말이다.


한 때 사랑하고 결혼하고 권태를 맞은 노년의 부부 이야기. 어느 밤 아내에게 쫓겨난 남편이 찾은 곳은? 1974년 그들이 처음 만난 곳. 옛날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완벽하게 그 시절을 세팅해 주고, 배우들이 그때 그 장면을 연출해 준다면? 연기인 줄 알면서도 아내 역을 맡은 젊은 여배우에게 사랑을 느낀다면? 그런 게 '현실적' 아닌가. 프랑스 영화의 맛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


영화관은 작고 소박했다. 생각보다 사람들도 많았다. 뮌헨의 영화비는 9유로 50센트. 때로는 홀로 때로는 좋은 사람들과 영화를 보던 서울 광화문의 씨네 큐브도 생각났다. 그때 거기서 나는 무슨 영화를 봤더라. 혼자 본  영화는 기억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뮌헨의 2020년 새해 선물은 사흘간의 햇빛. 그리고 나 자신에게 선물한 영화 한 편이었다. 인생은 영화 같은 것. 두 시간 만에 아귀가 꼭 맞게 기승전결로 완결되는.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가야 막이 내리.



예술 영화관 골목길의 레스토랑


P.s. 한국에서도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 영화 제목은 <카페 벨에포크>(2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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