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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22. 2020

순수와 이타가 정의를 만났을 때

역동적인 한국인!


나를 감동시키는 건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정의감에 불타는 행동들이다. 한국인의 핏속에 흐르는 이 자질을 나는 사랑한다.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봄의 전령 튤립.



뮌헨에 살고 있는 나는 자주 한국 생각을 한다. 안 그래도 힘들 텐데 왜 바이러스까지 거드는가 걱정하면서. 뮌헨에서 나는 바이러스로 인해 아무 일도 겪지 않았다. 한 번은 주말에 아이와 지하철 우반을 탔는데 자리에 앉아 있던 독일 사람이 일어나 옆 칸으로 가더라는 얘기를 집에 와서 아이한테 들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아이와 앉으라고 비켜준 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건 경험의 축적 치로 내 뇌가 비슷한 상황을 판단하는 알고리즘일 것이다.


이번 주 목요일엔 칸티네에서 예상에도 없던 이른 조퇴를 한 후 오전에는 카페에서 글을 썼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칸티네로 돌아갈 준비를 는데 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독일의 위생 점검은 하루 종일 걸리나? 건강검진서가 구비되지 않은 나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봐 복귀하지 말라는 이었다. 어쩜 이리 일 복도 없는지. 아침부터 모두들 긴장해서 대기하던데. 전날은 늦게까지 반짝반짝 청소도  줄 알았는데 평소대로만 하고 제시간에 퇴근하는 게 신기했다. 덕분에 독일의 위생 점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구경할 기회는 놓쳤다.



뮌헨의 보건소 Gesundheitsamt 로 가는 길



이 얘기를 북부 이태리 볼자노에서 10년을 살다가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온 우리 언니에게 톡으로 했더니 언니 왈, 우리가 원래 일 복이 없단다. 대신 사람 복은 . 다행이다. 일보다도, 꽃보다도 사람이 먼저 아닌가. 칸티네 일을 시작한 이후 언니와도 통화를 자주 못했다. 언니는 목동의 이름도 예쁜 요가원과 건대 쪽 힐링센터의 요가 및 명상 강사다. 요즘은 요가원에서 임산부 요가 수업도 한다. 어떤 수업보다 보람이 크다고. 저녁 수업을 앞둔 언니와 톡을 주고받다가 갑자기 언니가 이런 말을 다.


"내가 이태리 10년 살고 내린 결론은 한국 사람들이 무척 순수하고 이타적이라는 거야. 때가 오면 대의를 위해 나를 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 한국 사람 같아. 외국에 살아보니 대부분 자기 생각만 하며 살더라. 어쩜 저리 이기적일까 싶을 정도로 말이야. 이런 정서를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잖."


우리 언니가 어떤 사람인가. 소설 제목처럼 '한국이 싫어서' 20대 후반에 잘 다니던 직장 때려치우고 호주로, 인도로, 이태리로 떠난 사람이었다. 요즘이야 퇴사나 세계 여행, 외국에서 한 달 살기  예사로 들리지만 20년 전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겠다던 사람이 지금은 한국에 와서 잘 살고 있다. 영혼은 인도인, 인도가 고향 같다던 사람이 말이다. 여기엔 내 공이 크다. 한국에 와서도 몸만 있지 마음은 인도에 있던 언니를 확실하게 한국에 못 박아 둔  나이기 때문이다. 그게 진정 언니 위일이었는지, 또한 정답이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언니가 한국에 남은 걸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만이 다행일 뿐.


언니는 인도에서 이태리 형부를 만났다. 잘 나가던 기자라는 직업을 때려치우고 취재차 들렀던 인도의 라즈니쉬 아슈람에 눌러앉으신 분이 우리 형부다. 지금은 인도도 이태리도 아닌 한국에 정착해서 이태리어를 가르치며 언니와 살고 있다. 이태리 사람인 우리 형부가 한국에 엄지 척을 하는 부분은 뭘까. 한국 사람들의 인정. 부모님을 부양하는 문화. 가족애와 형제자매간의 우애 같은 것들이다.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정에 표를 준 것이다. 요즘은 우리 엄마 생활비도 형부가 드린다. 예전엔 우리랑 반반씩 드렸는데. 지난여름 한국에서 주말 저녁 정동으로 산책을 갔을 때 형부가 밝고 환한 달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서울이 얼마나 놀랍도록 깨끗하고 안전한 도시인지. 한국에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형부에게 고마웠다.



글쓰기를 돕는 빵집 카페의 카푸치노 한 잔!



최근 브런치 작가 강신옥 님의 글 <만국 공통어> 편을 읽고 순수한 이타심에 대해 다시 생각했. 인천공항으로 가려고 지하철을 탄 중국인 일행이 있었다. 옆에 선 청년은 짐 올리는 걸 도와주고,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이곳저곳에서 쉽게 가는 법을 고민하며 훈수를 두신다. 문제는 양쪽 다 영어가 짧다는 것. 작가님이 남편분을 불러 중국어로 안내를 한다. 그래도 걱정이 된 사람들. 누군가가 서울역에 같이 내리니 그들이 안전하게 환승하도록 도와주겠노라 하자 '잘됐네 잘됐어!' 이어지는 말들. 그런 마음은 말을 떠나 바로 전달되는지 '땡큐 땡큐, 코리아'를 반복하며 내리는 중국 가족들에게 '잘 가요 잘 가' 손 흔들며 한국어로 답하는 사람들. 나도 안다. 그런 풍경, 자주  수 있다. 그렇다고 세상 어디에 있는 건 아니다.


거기에 추가하고 싶은 항목은 정의감과 역동성. 누가 한국인의 정서를 체념과 한이라 했는가. 한국만큼 역동적이고 정의감에 불타는 국민성과 정서를 나는 알지 못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최근 브런치 홈에 실린 꽃뜰 작가님의 글 <태국골프 고개 빳빳 코브라>가 그것이다. 태국에서 골프를 치다 코브라를 만난다면? 화장실에 다녀오던 현지인 남자 캐디가 고개를 꼿꼿하게 치켜든 2미터 남짓한 코브라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면? 바로 그때! 어디선가 용케 드라이버찾아들고 바람처럼 달려와 코브라의 정수리를 맞춰 기절시키고 캐디를 구해줬다는 무협지에나 나올 법한 스토리의 주인공은 정의감이 넘치는 한국인 남성. 안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그런데 나를 감동시키는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을 때 반사적으로 나오는 이런 행동들이다. 한국인의 핏속에 흐르는 이 자질을 나는 사랑한다. 누구에게있을 수 있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과장이 심하다고? 그것도 안다. 어쩌겠는가. 사랑이 지나치면 그렇게  것을.


해적 코스튬을 입은 아이. 최근에 자신이 한국 사람인 것 같다고 커밍아웃함.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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