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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25. 2020

문학이 나를 해방시키던 날들이 있었다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문학이 나를 해방시키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 그토록 나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쓰기? 그랬으면 좋겠다.





며칠 전 기다리던 책이 왔다. 언니가 한국에서 보내준 소포였다. 책만 온 게 아니라 아이의 생일이라고 여러 가지 선물도 같이 든 한국의 우체국 박스. 2월 초에 보낸 선물을 16일 만에 받았다. 한국에서 소포를 보낼 때마다 두세 가지를 당부한다. 등기가 아닌 일반 항공으로, 소포 안의 내용물은 선물로, 가격은 전부 합쳐 50유로를 넘지 않게 적을 . 곧이곧대로 가격을 적거나, 선물란에 체크하는 것을 깜빡하거나, 비싼 항공 등기로 보냈다가 세관 통과를 못해서 세관에 가서 물건을 일일이 확인시켜주 직접 들고 온 적이 있기 때문이다.


언니가 보내준 책은 <로쟈의 한국 현대문학 수업>. 선생님의 문학 수업을 들으며 느꼈던 그 환희를 어찌 잊으랴. 문학이 나를 해방시키던 날들이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 그토록 나를 자유롭게 만들 수 있을지 궁금하다. 글쓰기? 그랬으면 좋겠다. 다시 기다리는 선생님의 신간은 <문학에 빠져 죽지 않기>(2012-2020). 내가 서울에서 선생님의 강의를 듣던 시절의 서평집이라 더더욱 기대된다. 책의 목차처럼 그때가 내게도 꼭 '문학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살다가 언제 펼쳐보아도 아름답게 기억될 날들이다.


요즘 나는 책을 정리하는 중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에는 많고, 수백 권의 책을 기증받는 곳을 찾기도 어려워 고민하던 차였다. 작년에 뮌헨에도 한국문화센터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다 싶었다. '이미륵 한국문화공간'. 문제는 책 기증을 받아줄 것인가, 혹은 그럴 만한 공간이 있느냐였다. 고맙게도 책을 받아주겠다고 했다. 나로서도 쌓아만 둔다고 다 읽을 책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들고 온 수백 권의 세계문학전집이 내 독서의 1순위이기 때문이다. 세계문학을 독일어로 읽는 로망까지 포함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될까. 짧으면 10년? 길면 20년? 체력과 시력까지 감안해서 말이다.  

 


파싱 화요일 전날 뮌헨 시내와 백화점 파싱 코스튬 전시 풍경



어제와 오늘은 가 근무하는 칸티네 휴무일이었다. 이번 주가 독일의 카니발인 파싱 방학이기 때문이다. 시누이 바바라 회사도 '파싱 화요일 Faschingsdienstag' 인 오늘은 오전 근무만 한단다. 남편 역시 어제 중요한 일을 순조롭게 마무리했다. 그리하여 오늘은 넷이서 다시 한번 슈탄베르크의 시어머니를 방문할 계획이다. 도움이 필요하신 일은 없는지 여쭤보고, 양아버지의 안부도 여쭙고. 원래는 방학 동안 스키 휴가를 가려고 했다. 아이의 친구 레아마리네 부근에 일찌감치 호텔까지 예약해 놓고. 그러나 어쩌랴. 남편은 일이 바쁘고, 부모님은 편찮으시니. 안 되는 건 빨리 접는 게 낫다.


어제저녁엔 늦게 침대로 간 아이가 눈물을 찔끔거리며 말했다. 엄마 아빠가 맨날 바쁘기만 하고 아무도 자기랑 안 놀아준다고. 아니, 그게 무슨 소리람? 하루 종일 엄마랑 집에서 놀다가 오후에는 둘이 정답게 영화관에서 영화까지 놓고. 그게 아니란다. 방학 때는 저녁마다 엄마 아빠랑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셋이서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나. 아이들이란 참! 무한대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구나. 파파는 너무 피곤하니 자도록 내버려 두고, 엄마랑 영화를 볼까?


그날 아이와 나는 두 편의 영화를 보았다. 오후에는 영화관에서 <작은 아씨들>을, 밤에는 집에서 <마놀로와 마법의 책>을. 얼마나 좋았으면 영화를 보는 내내 몇 번이나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뽀뽀 세례를 받았다. 그리도 좋을까. 아침에 그 얘기를 남편에게 전했더니 남편도 놀라는 눈치였다. 그래서 밤에 다시 영화를? 남편이 말했다. 오전만 일하고 올게. 다 같이 슈탄베르크 가자. 아, 거기에 멋진 수영장이 있었지! 할머니 할아버지 잠깐 뵙고, 우린 수영장으로? <작은 아씨들>의 감독 그레타 거윅이 주인공이었던 영화 <메기의 플랜>만큼 괜찮은 플랜 아닌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손키스로 화답했다. 사정이 이러하니, 내가 문학에 다시 기댈 날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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