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세계문학, 무엇을 읽을 것인가. 19세기 근대소설부터 읽기로 했다. 근대 하면 프랑스문학 아닌가. 프랑스문학하면 스탕달과 발자크고. 자, 이제 출발이다! 세계문학,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렷!
세계문학 첫 책은 누가 뭐래도 스탕달의 <적과 흑>!
3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다. 다음날 새벽 출근을 위해 저녁을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폰으로 한국과 독일의 코로나 소식을 읽다가 갑자기 든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 남의 일 같던 코로나는 우리 손을 떠난 것 같았다. 한 달 전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다. 그리고 3월 말. 내 인생에 그토록 다이내믹한 봄날도 없을듯하다. 칸티네를 그만두고 새 직장을 구했고, 갑자기 내린 휴교령으로 남편과 아이가 집에 머무는 상황이 되었다. 한 주 뒤에는 외출 금지령까지내렸다.
뮌헨의 상황은 사월 첫째 주인 지금까지도 살벌하지 않다. 출퇴근 때나 외출 때 경찰을 본 적도 없고,마트의사재기도 주춤하다. 시어머니가 상용하시는 새콤달콤한비타민 차 Zink Verla C(20포/5€)를 사러 우리 동네 약국아포테케에갔더니 마스크나 손 세정제는 없다고 입구에 붙여놨다. 비타민C도 품절. 코로나 감염 시에는아스피린 대신 타이레놀을 복용해야 한다고 들었다.타이레놀의 독일명칭은파라체타몰Paracetamol.만약을 위해 20정(2.99€)구입. 약사들이 마스크도안하고있는걸 보니 마스크가 없긴없나 보다. 뮌헨의 지하철에도마스크를 쓴 사람이늘고 있는 추세인데.
불안을 이기는 세 가지. 봄꽃들과 독일 타이레놀 '파라체타몰', 그리고 약국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는 비타민 차!
다시 삼월의 마지막 밤으로 돌아가자. 독일에서 읽겠노라 큰소리치며한국에서세계문학책을 박스로 싸들고 왔다. 그런데 지난 2년간 어떻게되었나.브런치에 글을 쓰느라 펼친 책이 몇 권되지 않는다. 이게 무슨 아이러니인가. 책을 읽어야 가슴도글도풍성해질 텐데. 장기전으로 돌입한 코로나 시절이 또 한 번의 기회를 줄지도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도 그밤이었다. 그러자 불안과 공포역시빠르게 창 밖의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한밤의고민은다시 시작되었다. 읽는다면무엇부터 읽을 것인가.
독일문학, 프랑스문학, 영국문학, 스페인문학, 이태리문학, 러시아문학.. 세계문학이라는 큰 나무의 곁가지가 오죽 많아야지. 답은 금방 나왔다. 그 숲에서 길을 잃지 않으려고 세계문학 강의를 들은 덕을 톡톡히 본 셈이었다. 일단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는 제쳐두고 19세기 근대소설부터. 근대 하면 프랑스 문학아닌가.프랑스 문학하면 스탕달과 발자크고. '근대소설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불리는 스탕달의 <적과 흑>. '근대소설의 표준'으로 손꼽히는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말이다.
근대소설이란 무엇일까. '근대란 각자의 능력이 타고난 신분의 제약에서 벗어나 인생 역전의 기회를 갖게 해주는 시대'를 가리킨다. <적과 흑>의 배경은 '1789년 대혁명 이후 1815년 나폴레옹이 워털루전쟁에서 몰락하고 다시 성직자와 귀족이 지배하는 왕정복고기'다. 근대소설에서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인<적과 흑>의주인공 쥘리앵이나 몰락한 시골 귀족의 아들인 <고리오 영감>의 주인공라스티냐크의 투쟁을 그린다. 한 마디로 '청년 주인공이 상경하여 출세를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라는뜻이다.
서론이 길었다. 책장을 넘기기도 전에 힘을 너무 빼면 고전의문지방도 못 넘고 의욕을 잃을 수있으니 주의해야한다. 그래도 세계문학 읽기 출사표인데 라스티냐크처럼 한 마디는해야겠지?라스티냐크의 대사는 책을 끝까지 안 읽었어도 기억한다. 책에 열심히 밑줄 그어가며 강의를 들었기에. 그가 파리를 향하여 호기롭게 날린선언말이다. '이제 우리 둘의 대결이다!' 그럼 나는무슨 말로 출사표를던지나? 자, 이제 출발이다!세계문학,거기서꼼짝 말고 기다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