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각 7시. 세팅이 끝나고 빵굽기도 끝내고 한숨을 돌리던 차에 손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냐고. 오늘의 친절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당신의 나라를 기억 하겠다.
이런 곳을 얼마 전에 발견했다니! 우리 동네 지하철역 건너편 언덕배기 공원. 초록색 말뚝은 애완견 출입금지 표시.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놀라고.
독일 사람들은 국적을 묻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대놓고 어디서 왔냐고 묻는 경우를 별로 겪어보지 못했다. 호텔에서도 마찬가지. 어떤 손님도 묻지 않았다. 심지어 우리 호텔 주인 할머니도 내가 일하기 시작한 후에야 내 국적을 물었으니까. 그것도 태국이냐, 베트남이냐고. 호텔에서 일하는 베트남 여자분도 있고, 이전에 3년간 일한 여자분도 태국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누구나 자기에게 가장 친숙한 나라를 먼저 떠올릴 테니까. 아니면 아시아 사람은 다 비슷해 보이거나. 내가 동남아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고.
월요일은 손님이 처음으로 내 국적을 물었다. 혹시 물어봐도 실례가 안 된다면, 이라는 참으로 예의 바른 단서까지 달고서. 그리고는 내가 대답도 하기 전에 '혹시 말레이시아 사람인가요' 하고 물었다. 아하, 말레이시아랑 친하시구나. 아니면 첫 번째로 '말레이시아'란 나라가 나올 리가 있나. 웃음을 참으며 한국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렇게 국적까지 물을 때는 이유가 있다. 내가 손님에게 친절을 베풀었기 때문이다. 60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분이었다. 서른 살쯤 되는 딸과 함께였다. 아버지나 딸이나 인상이 좋았다.
월요일 아침 6시 30분.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찻물을 끓이고, 홀의 커피 머신을 켜고, 주방의 머신에서 블랙커피를 내린다. 4단 오븐에 크라상과 각종 빵을 굽는다. 빵마다 익는 시간이 달라서 수시로 체크해야 한다. 냉장고에서 10개의 크고 작은 쟁반들을 꺼내고, 받침대에 냉각 용기를 깐다. 따뜻한 실내에서 상하지 않도록. 우유와 버터와 빵 전용 크림치즈와 요구르트도 마찬가지. 계란도 아주 부드럽게 삶아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 손님들마다 선호도가 다르기 때문. 각종 주스들과 토스트 빵들도 날라놓는다. 이것이 아침 7시까지 30분 동안 내가 하는 일이다.
저 노랑노랑! 눈부신 황금빛! 독일에 와서 노랑은 내게 가을색이 되었다.
7시 정각에 레스토랑 문을 연다. 월요일 아침부터 왜 그리 정신이 없던지. 호텔 주인 아들 가족이 지난주부터 호텔에 묵고 있기 때문이었다. 애가 셋. 첫애가 학교에 가야 한다며, 7시 그 정신없는 시간에 아들이 내려와 냉장고를 열고 닫고 난리였다. 애 간식 도시락을 싸야 한다고. 나도 알지. 나도 새벽 6시에 애 간식 도시락을 싸서 가방에 넣어주고 오니까. 일에 방해가 되어 미안하다 해서 괜찮다고 했다. 같은 학부형 아닌가. 문제는 6시 45분에 손님 두 사람이 가방을 들고 레스토랑으로 들어온 것. 얌전히 닫혀 있어야 할 문이 주인 아들이 들락거리느라 열려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인 아들이 난감한 얼굴로 주방으로 들어와 물었다. 괜찮겠냐고. 그럼 괜찮고말고. 손님들도 다 사정이 있지 않겠나. 나라도 비싼 숙박비 내고 아침도 못 먹으면 아깝지. 달려 나가 웃음으로 맞았다. '빵은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그래도 오믈렛이나 요구르트 등 다른 것부터 준비해 드릴 수는 있답니다.' 손님들이 함박웃음으로 답했다. '아니에요, 우린 커피부터 마시며 천천히 기다릴 수 있어요. 절대로 우리 때문에 서두르실 필요는 없어요.' 얼마나 훈훈한가. 아침부터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은 축복이다. 나는 머리도 손발도 빠른 한민족. 친절한 손님에겐 더욱 빠르다.
빛의 속도로 커피가 든 커피 포트와 우유를 서빙. 다음은 빨리 구워진 빵과 요구르트부터. 계란 프라이도 올려놓고. 아차, 계란 프라이 끝부분이 살짝 탔네. 다시 만들 시간은 없고. 양해를 구하자 괜찮다며 맛있게 먹었다. 이런 훌륭한 손님들이라니! 정각 7시. 세팅이 끝나고 빵굽기도 끝내고 한숨을 돌리던 차에 손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냐고. 오늘의 친절을 잊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당신의 나라를 기억 하겠다. 체크 아웃을 하던 손님이 나를 찾는다 해서 나가자 아버지 손님이 동전 5유로를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그럴때 받는 돈은 돈이 아니다. 처음으로 내가 받은 팁을 미나와 나눈 날. 호텔에서 배운 한 수는 이렇다. 친절은 돌고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