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다음날 뷔페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홀에서 리드미컬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뮤지컬 노래가 들려왔다. 밝고 경쾌하고 풍성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 현실이 어떻든 그들은 노래한다. 삶이여, 너 아름답구나!
지난주는 뮤지컬 배우와 가수와 예술가들이 단체로 우리 호텔에서 1주일 정도 묵었다. 예술가들이 일반 손님들과 눈에 띄게 다른 점은 단 하나. 얼마나 활기차고 생기가 넘치는지! 아침은 늦다. 예술가들 아닌가. 8시 30분쯤 내려와서 10시 30분까지 두 시간 가까이 레스토랑을 접수한다. 머무는 시간이 다른 손님들보다 두세 배는 길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대화와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레스토랑의 공기마저 춤추듯 출렁거린다.
빵을 몇 번 더 굽고, 커피를 1~2리터 더 내리고, 냉장고에서 신선한 주스를 꺼내놓고, 햄과 치즈 쟁반도 자주 보충했다. 젊은 멤버들은 미리 내려놓은 블랙커피보다 기계에서 금방 내려주는 카푸치노를 선호했다. 두세 잔까지 부탁하는 손님들도 있다. 어떤 날은 스모크 연어가 떨어져 동네 슈퍼까지 급히 뛰어가 사 오기도 했다. 마치 어릴 때 동네 잔칫날 같았다. 그때처럼 즐거웠고, 발걸음은 가벼웠고, 피로한 줄을 몰랐다.
예술이란 게 그런 거지. 숨길 수 없는 생의 고뇌와 애환에도 사람을 저토록 생생하게 바꾸어 놓는 것. 그들도 다른 멤버들이 내려오기 전 서너 명씩 둘러앉을때가 있었다. 서로의 가족과 아이와 배우자와 자동차와 월세에 대해 얘기할 때면 목소리 톤이 낮아지기도했다.어느 날은 다음날 뷔페 준비를 할 때 홀에서 리드미컬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뮤지컬 노래가 들려왔다. 밝고 경쾌하고 풍성한 중년 여성의 목소리. 거기에는 오페라와는 다른 결의 질감이배어있었다.현실이 어떻든 그들은 노래한다. 삶이여, 너 아름답구나!
그런 그룹에도 까칠한 팀원들이 한둘 섞여있기 마련이다. 매니저로 보이는 중년 커플이었다. 남편은 편안하고 친절한데, 여자분은 말도 없고 표정도 눈매도 매서운 사람이었다. 그런 손님들과는 꼭 일이 꼬인다. 각오를 했다. 그래도 친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일은 첫날부터 터졌다. 토스트 빵과 같은 통에 내놓는 검은 빵이 신선도가 떨어졌던 모양이었다. 빵 조각이 부서져 있었다. 미처 살피지 못한 내 탓. 딱딱한 표정으로 말없이 빵 봉투를 건네길래주방으로 들고 가서 확인. 곧바로 테이블로 가서 정중히 사과했다.
어느 날 티 전용 뜨거운 물에 석회가 생겼다. 새 물통을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왜 이런 분들이 마시는 차에만 꼭 일이 터지나. 내 속도 탔다. 미나도 없이 이틀째 혼자 동분서주하던 날이었다. 다음에 호텔을 옮길 땐 작은 호텔은 피해야지. 혼자 일하는 건 부담 백배. 여자분은 말도 없이 찻잔을 바 위에 올려놓고 돌아섰다. 반전은 손님의 남편분. 테이블로 커피를 들고 가자 5유로짜리 팁을 건넸다. 미소도 함께. 여자분은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보이지 않았다.
호텔 생활 만 두 달. 손님들로 인해 상처를 받지는 않는다. 세상만사가 내 뜻대로 굴러가 주지는 않으니까. 세상에는 친절한 손님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내게 친절해야 할 이유도 없다. 친절의 의무는 내 몫이다. 마지막날 아침 그들의 헤어짐은 무대 위 연극처럼 뜨거웠다. 같은 팀인 줄 알았는데 뮌헨 공연만 같이 했나. 공연이 끝났으니 각자 귀가하는 것일까. 긴 포옹과 양볼의 입맞춤과 서로에게 건네는 이별의 말이 끝없이 이어졌다. 마지막 인사를 위해 서 있던 나와 미나에게도 남자 배우가 모자를 들었다 놓으며 배우답게 멋진 작별 인사를 날렸다. 레이디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