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종업원이란 직업이 그렇습니다. 타인을 바라보는 게 일이지요. 스포트라이트 원 바깥의 그림자 속에서만 존재하면서 무대 위의 배우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처럼요. 매일 새벽 저는 제 무대 위로 오르는 배우들을 맞이하러 호텔로 갑니다.
호텔 창가엔 반짝이 산타 등장!
그리운 샘께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바쁘신 와중에 프랑스 문학까지 들으시느라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실 것 같네요. 두바이 출장 가셨다는 소식은 어제전해 들었고요. 저는 11월을 몹시도 바쁘게 보내고 있답니다. 작년의 한가함과는 비교가 안 되네요. 호텔 일을 시작해서 그럴 수도 있지요. 풀타임 잡도 아닌데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답니다.
알리시아는 목요일에 독일어 시험과 발표까지 무사히 끝냈어요. 제 속이 다 후련하네요. 다음 주부터는 다시 1주일에 1 시험제로 돌아간답니다. 마침내 평온의 시간이 찾아온 거지요. 저는 왜 바쁘냐고요? 그러게요. 하루 6시간 일하고, 애 픽업하고, 글 쓰고, 한 번씩 시부모님 방문하는 게 다인데요. 사실은 며칠 동안 호텔에서 생긴 일 때문이랍니다.
푸른 신새벽!
샘은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지난 10월에 호텔에 묵으셨던 공포의 계란 할머니 말이에요. 저보고 계란을 오래 삶았다고 대놓고 구박하시던 분요. 그 할머니가 호텔에 또 오셨어요. 사흘이나계셨고요. 화요일 아침이었어요. 그날은 룸 담당이 휴무라 제 동료 미나가 룸으로 올라가는 날이었어요. 혼자 주방과 레스토랑을 접수해야 하는데 이른 아침 레스토랑의 첫 손님이 바로 그 할머니라면? 할머니가 무서운 얼굴로 '삶은 계란은 끓는 물에 딱 1분이야, 3분도 안 돼!' 하신다면요?
깜짝 놀라 룸으로 올라가려는 미나를 붙잡았죠. '저 할머니 어떻게 좀 해 봐. 난 도저히 안 되겠어.' 미나가 벗어놓은 앞치마를 다시 두르고 계란을 삶기 시작했어요. 할머니는 그날 컴플레인이 없으셨고요. 이 정도면 계란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차별하시는 게 아닐까 싶네요. 왜냐면 미나는 눈도 깜짝 않고 자기 방식대로 했거든요. 끓는 물에 4분! 독일엔 라면의 법칙만큼 다양한 삶은 계란의 법칙이 있네요.
문제는 그다음 이틀이었죠. 미나가 휴무였거든요. 이번엔 제가 먼저매를 맞기로 했어요. 수요일엔 끓는 물에서 4분, 목요일엔 3분. 할머니께 반갑게 인사하며 먼저 드셔 보시라. 마음에 안 드시면 다시 삶아드리겠다 했죠. 4분은 묵묵부답. 3분에는 제 손을 들어주셨어요. '오늘 계란은 괜찮다!' 마음 같아서는 테이블로 달려가 할머니 양손이라도 덥석 잡고 싶더군요. 두 손을 모으고 감사하다인사를 드렸죠. 그날 카운터에 4유로를 남기신 분이 할머니일까요. 미나 말로는 팁을 주신 적이 없다 하던데요.
샘.
할머니가 떠나시자 저는 기진맥진했답니다. 잔도 하나 떨어뜨리고 커피도 살짝 흘리고요. 다행히 주인 할머니가 안 계실 때였어요. 긴장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지 알겠더군요. 이럴 때일수록 평소 체력이 중요합니다. 일을 하니 따로 운동할 시간이 없군요. 핑계가 그럴듯하죠? 그래서 꾀를 냈답니다. 제 마음과 뇌를 살짝 속이기로요. 매일 새벽 출근길에 이런 생각을 하면서요.
나는 새벽에 호텔로 '운동'하러 간다. 6시간 동안 정신없이 빠르게 걷는 운동을. 나는 새벽에 호텔로 '사우나'를 간다. 땀이 살짝 나도록 얇은 옷을 몇 개나 껴입고서. 나는 새벽에 호텔로 '명상'하러 간다. 비파사나 비슷한방식으로. 나라는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는 훈련. 일명 '나란 없다' 명상법. 부정적인 말과 행동과 표정과 눈빛에 감정의 동요가 없도록. 어떤 상황에도 소 닭 보듯 남 일처럼 나를 바라보는 연습을.
호텔 종업원이란 직업이 그렇습니다. 타인을 바라보는 게 일이지요. 그리고 돈을 받습니다. 스포트라이트 원 바깥의 그림자 속에만 존재하면서무대 위의 배우들을 서포트하는 역할처럼요. 매일 새벽 저는 제 무대 위로 오르는 배우들을 맞이하러 호텔로 갑니다. 그들은 저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합니다. 타인을 바라보는 일은 제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기도 하지요. 재미있는 날도, 불편한 날도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그리하여 저의 새벽 출근은 계속됩니다. 겨울이 코 앞으로 다가왔어요.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신 샘의 두바이 소식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