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없어서 슬퍼

굴진짬뽕을 먹으며 친구를 생각함

by 뮌헨의 마리


요즘은 눈만 뜨면 한국을 생각한다.


아무것도 넣지 않고 오로지 하나만 넣고 승부를 건 굴진짬봉을 끓이며 친구를 생각한다. 팔월의 둘째날 뮌헨의 오전 11시. 바깥 날씨는 여전히 화창했다. 요즘은 눈만 뜨면 한국 생각이다. 한국은 매일 폭염의 새 역사를 쓰는 중이라는데 여기는 밤새 소나기가 내렸는지 바람의 온도가 조금 내려갔다. 다음 주면 벌써 입추. 도울 길이 없으니 자꾸 절기만 헤아린다.

갑자기 라면 생각이 나서 뒤적여 보니 아이가 좋아하는 진라면이 다 떨어졌다. 딱 하나 남은 건 지난봄에 아이 이모가 보내준 상자 들어 있던 굴진짬뽕. 내 기억에는 두 개가 있었는데 언젠가 아이에게 끓여줬더니 한국 라면 맛이 아니란다. 얏호! 그래서 내가 먹었다.


라면 물이 끓고 있는데 카톡 진동음이 울린다. 김해 친구였다.


"너의 글들로 인해 나까지 글을 쓰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물리적으로는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지만 글을 통하여 어쩜 더 가까워지고, 또 너에 대해 친밀감을 더 느끼는 것 같다. 어젯밤부터 나도 일기 같은 글쓰기를 드디어 시작했어.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도록 응원해주길 바래. 나 또한 너를 열심히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친구의 말 그대로였다. 나는 한국의 친구들과 글로 소통하고 싶었다. 일일이 연락을 하고 살기엔 나도 친구들도 바빴다. 장기간의 부재는 관계를 소원하게 만든다. 도리가 없다. 서로 만난다 한들 나눌 이야기가 없는 것이다.

친구들에게 글쓰기를 부추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글 맞나? 맞다! 시간만 많다고 꼭 써지는 게 글은 아니다. 의욕과 의지가 성실을 동반한다면 의외로 오래갈 수 있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스토리는 있는 법. 글감을 걱정할 필요는 없겠다. 중년의 위기와 고독을 책 읽기와 글쓰기로 극복하자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갱년기 준비다. 글은 고독에서 나오므로.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므로.


새로 사귄 친구가 아무리 좋다한들 옛 친구를 대신할 수는 없는 모양. 아이들의 우정 역시 그랬다. 서울 독일학교에서 마지막 절친이었던 유진이가 부활절 무렵 알리시아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이 편지를 받고 아이는 그날 저녁 서울에서 들고 온 학급 단체 사진을 보며 울었다.


"지난 토요일 남이섬에 갔어. 우리도 재미있는 시간 보냈어. 그런데 니가 없어서 슬퍼."


오늘 친구의 톡을 받고 나는 기뻤다. 울지는 않았다. 이렇게 알뜰살뜰 내 글을 챙겨서 읽어주는 친구가 있는데 울기는 왜 우나.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글을 쓸 때마다 친구의 글쓰기를 응원할 것이다. 가까이 있는 것보다 더 좋은 건 없다. 하지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그리워하며 사는 것도 괜찮다. 마음속에서 영원히 지워지는 게 가장 나쁘다.


p.s. 매번 내 글을 꼬박꼬박 읽어고 댓글을 달아분들이 계시다. 몇몇 친구들과 샘들. 처음에는 어색하고 쑥스러워 댓글에 답도 달지 못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함을 전한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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