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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Dec 10. 2019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가는 마음


아이가 말했다. 첫 번째 초는 우리 가족을 위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엄마, 아빠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은 자기를 위해 빌겠단다. 나는 찡했고, 약간 감동을 받았고, 엄마라는 사람이 첫 번째 소원을 자기 자신을 위해 빌었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했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 초에 불을 밝히다!



지난 일요일은 두 번째 아드벤츠(대림절/강림절)이었다. 두 번째 크리스마스 초를 켜는 날. 나는 그날 아침 호텔로 출근을 해야 했다. 새벽 6시. 남편도 일어나길래 아이를 깨워 초에 불을 붙였다. 셋이 긴 복도의 초 앞에 서서 두 번째 소원을 빌었다. 둘을 각자의 침대로 돌려보내고 출근하려는데 아이가 말했다. 첫 번째 초는 우리 가족을 위해서 켰다고.  착하네, 우리 알리시아. 그럼 오늘은 너를 위해 소원을 빌었겠네. 아이는 아니라고 했다. 첫 번째 초는 우리 가족을 위해,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엄마, 아빠를 위해, 그리고 마지막은 자기를 위해 빌겠단다.


아직은 가정이 세상의 모든 것인 나이 만 아홉 살. 나는 찡했고, 약간 감동을 받았고, 엄마라는 사람이 첫 번째 소원을 자기 자신을 위해 빌었다는 사실이 조금 미안했다. 그런데 보랏빛 새벽하늘을 보며 걷다가 마음을 고쳐먹었다. 엄마가 건강하고 행복한 것이 가정이 서는 기본 아닌가. 내가 우울해지고 세상만사 귀찮아져날마다 집에 누워만 지낸다면? 화만 내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나는 가족과 주말을 보낼 수 있는 일자리가 절실했고, 그것을 간절히 빌었고, 구했다. 두 번째 소원은? 다행히도 가족을 위해 빌었다. 아이에게 덜 미안한 마음이었다.



사랑은 저토록 기운다. 부헨벡 7번지와 할아버지의 사랑!


금요일에는 조금 늦은 시간에 시어머니 댁으로 갔다. 시누이 바바라가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차를 가지고 우리를 데리러 오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아이도 시험 공부할 시간이 부족했다. 크리스마스 방학 전에 독일어 독해와 작문 시험 두 개가 남아있었다. 집에 와서 독일어 읽기를 조금 하고 출발했다. 오후 4시 20분쯤 뮌헨을 출발할 때는 해가 밝았는데 S반으로 5시쯤 슈탄베르크 호숫가 역에 다다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석양빛이 비치는 호수는 아름다웠다. 이런 풍경은 어머니를 방문하는 날 받는 특별 선물이다.


그날이 마침 니콜라우스 데이라 아이는 할머니께 특별한 인형도 선물 받았다. 재미있는 건 어머니가 사신 인형은 총 4개. 그 중 하나를 아침에 아버지께 선물했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좋아하시더라고. 마치 아홉 살 소년처럼 말이다. 어머니의 말씀을 들으며 어머니와 우리 모두 웃고 또 웃었다. 내가 사랑하는 건 이런 시간들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뵈었고, 니콜라우스 날이라며 선물을 받았고, 그날에 먹는다는 전통에 따라 저녁 식사 후에 어머니의 달콤한 달쿠키와 호두와 땅콩을 집어먹었을 뿐이다.


아이도 지난주에 할아버지께 선물을 드렸다. 작고 통통한 오리 인형이었다. 사실은 아이가 기차에서 심심할 때 놀려고 주머니에 넣고 간 건데 할아버지가 계속 손에 들고 쓰다듬고 계셨다. 작별 인사를 할 때 헤어지기 서운하신 할아버지가 물으셨다. 그거 나한테 주고 가면 안 되냐? 아이가 망설이지 않고 그럴게요, 하니 할아버지가 더 놀라셨다. 감동은 그렇게 찾아온. 어머니가 전해주신 바로는 우리가 떠나고 사흘 내내 어머니께  오리 인형 자랑하셨다고. 자기의 소중한 인형을 할아버지한테 선물로 주고 갔다며. 그리고는 오래도록 오리를 쓰다듬으셨다는 뒷 이야기.  이야기를 듣고 아이는 흐뭇하게 미소만 지었다.


평범한 겨울 저녁이었다. 창밖은 칠흑같이 어둡고, 아이는 할아버지와 거실에서, 나는 어머니와 부엌에서 1주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의 근황을 었다. 저녁을 먹으며 어머니는 자꾸만 아버지께 빵 한 조각을 더 드시라고, 치즈와 훈제 연어도 한 입 더 드시라 권했다. 나와 아이가 옆으로 나란히 앉고, 어머니 옆자리엔 늦게 올 바바라 접시가 놓여 있었는데 나랑 아이가 자꾸 포도알을 집어 먹자 몇 개를 집어다 바바라 접시 위에 올려놓으시던 어머니. 그런 모습마저도 좋았다. 그런 게 엄마 마음 아닌가. 이런 날이 영원하지 않으리라것을 나는 안다. 슈탄베르크 방문을 한 주도 빼놓을 수 없는 속사정이다. 겨울은 깊어가고 사랑할 시간은 많지 않다..



오후 다섯 시 슈탄베르크 호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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