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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Feb 24. 2020

시어머니 카타리나의 눈물

그리고 아네모네 한 다발


지금의 상황은 팔순의 어머니께 너무 힘든 일이다. 어머니가 쓰러지실까 봐 노심초사하는 나. 그날 나는 어머니를 위해 색색의 아네모네 한 다발을 골랐다.




금요일 오후 시어머니 댁에 다. 저녁 무렵엔 바쁘다는 남편도 호출했다. 갑자기 인터넷이 고장 나서 어머니가 인터넷 뱅킹을 못하게 되셨기 때문이다. 침대에만 누워계신 아버지를 두고 차를 몰고 시내에 있는 은행에 다녀오실 때마다 어머니 마음이 얼마나 급하시겠나. 어머니는 일을 미루지 못하는 성격이시다. 팔순이 넘으신 어찌 그리 부지런하신지. 늦게 온 남편이 순식간에 인터넷을 손보고, 부엌의 전구를 고치고, 덩치 큰 소파를 뚝딱 옮겨드리자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아버지가 쓰러지신 지  달째. 병원에서 집으로 신 지도 한 달. 작년  처음 쓰러지셨을 때는 잘 극복하셨다. 다시 일어나 기도 하셨는데 이번에는 힘들어 보이신다. 1년 만에 기력이 많이 약해지셨나 보다. 구십이 넘으신 분께 너무 큰 기대인지도 모른다. 정신은 아직 맑으시다. 1주일 내내 누워계시다 우리가 가는 날엔 얼굴이 생기로 가득하시고 고운 목소리로 아리아부르다. 아이의 손을 잡고서. 바바라와 나를 차례로 돌아보시며.


지난 주엔 어머니를 위해 꽃을 다. 시누이 바바라가 아이와 차로 먼저 출발 날이었다. 오후 3시에 일을 마치고 슈탄베르크행 에스반(S6)을 탔다. 슈탄베르크 역에 도착하니 날씨가 얼마나 좋던지. 어머니를 위해 꽃을  지도 오래. 긴 병구완에 효자 없다고 했던가. 지금의 상황은 팔순의 어머니께 너무 힘든 일이다. 어머니가 쓰러지실까 노심초사하는 나. 슈탄베르크 근처의 꽃집에 들러 처음으로 장미 대신 색색의 아네모네를 골랐다. 택시를 타고 어머니 집 앞에 도착하자 바바라와 아이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만났다. 아네모네는 아름다운 도자기 화병에 꽂혀 거실을 장식했다.





그날 어머니 카타리나의 눈물을 보았다. 바바라가 아버지를 위해 오래된 흑백 명화 비디오를 골라 함께 감상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는 2층 옥탑방 계단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부산을 떨었다. 어머니와 거실 소파에 앉아 어머니의 안부를 여쭐 때였. 말없이 아네모네를 바라보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눈물을 보이셨다.


"난 저 양반이 마지막 순간까지 행복하길 바란다. 지만 이대로 계속 가기엔 내가 너무 힘들구나. 아무래도 요양원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난 안다, 어머니의 저 마음. 우리 할아버지도 십몇 년을 병석에 계셨다. 옛날에 요양원이 어디 있나. 요즘도 집에서 누군가를 돌보느라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우리 언니도 이태리에서 형부와 함께 10년간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았다. 치매를 앓으시던 시어머니가 3먼저 돌아가시고, 시아버지는 100세 무병장수 하시다 편안히 눈을 감으셨다. 두 분 다 집에서.  일은 형부가 다 했지만, 동반자인 언니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딸과 시누이 바바라는 어머니의 의견에 반대였다. 요양 도우미를 매일 집으로 부르는 게 낫지 않느냐는 것이. 시아버지를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의 의견에 동의한다. 아버지는 전문기관에 모시고 어머니께서 매일 방문하시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어머니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다. 우리가 들 얼마나 자주 가겠나. 1주일에 한번이 고작. 나머지는 전적으로 어머니의 몫이다. 누구도 어머니께 희생을 강요할 권리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어머니의 선택은 존중되어야 한다. 어머니의 고통본인 말고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 때문이다. 본인이 힘드시다는데 !





"클레멘스 생일이 일요일이니 너도 같이 넷이서 뮌헨 근교 온천에 서 놀다 오너라. 입장료는 충분할 거다. 먹는 건 너희가 알아서 사 먹고."


우리 어머니는 같은 여자로서 봐도 너무 쿨하고 멋지시다. 그날해도 그렇다. 금방 눈물을 거두시고는 곧 다가올 막내 아들인 내 남편의 생일 선물로 현금을 챙겨주시며 말씀하셨다. 바바라까지 불러서. 뮌헨에서 북쪽, 공항으로 가는 길에는 에르딩 온천 Erding Therme 이 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놀이 기구가 많다. 현금은 그 전에 쓰지 말고, 반드시 온천 입장료로 쓰라는 특명이 내려졌다. 나는 어머니의 이런 면을 사랑한다. 너무 귀여우시다. 그리고 바바라 퇴장. 어머니가 내게 말씀하셨다.


"내가 저 양반 애들까지 합해서 너희 다섯에게 물려줄 게 많지 않다. 이 집 말고는. 저 양반이 돌아가시고 당장 유산을 받고 싶은 애들은 자기 지분의 50%. 마지막까지 기다리는 애들에게는 지분의 100%  생각이다."


얼마나 쿨하신가. 말씀만 들어고맙다. 각자의 지분은 1/5. 아버지의 자녀는 둘, 어머니의 자녀는 셋. 서양의 유산 상속에 대해 잘 모르는 내게는 어머니의 말씀이 영화나 연극 속 이야기처럼 들린다. 유산 상속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은 소설만큼 버라이어티하다고 다. 부모가 유언장을 써놓고 공증을 받아놓아생길 문제는 생긴다고. 아무렴, 인간의 욕망과 돈이 만나는 지점인데. 예상되는 나쁜 일은 최대한 미루는 게 좋을 때가 있다. 현재로써는 두 분이 오래 장수하시는 만이 방법이겠다. 일단은 부헨벡 7번지, 두 분이 32년간 살아오신 이 아름다운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요양원을 찾는 일부터 시작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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