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티네, 그 이후 이야기

칸티네 8

by 뮌헨의 마리


한국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코로나에 대비하여 체력도 키워야겠다. 투명하고 용감하게 정면 승부하는 내 나라가 자랑스러워 이 말만은 꼭 전해야겠다. 멀리서도 대한민국을 응원함!


언제나 푸르게 기억될 칸티네!



칸티네를 그만두기로 했다. 이유는 여러가지다. 살면서 한번도 해보지 못한 강도 높은 일이라 가족, 친구들의 염려가 크고, 장시간 근무로 아이를 돌볼 시간도 남편을 챙길 여력도 없다는 것. 몸에도 무리가 와서 오른손과 오른팔의 저림이 왼손으로 이어졌고, 양쪽 귀의 이명도 갈수록 심해졌다. 촌각을 다투는 일의 특성상 동료들의 신경이 곤두설 때면 정신적 긴장과 스트레스도 극에 달했다. 지난주는 계산대 직원의 휴가로 새벽 5시 15분부터 오후 4시까지 11시간 가까이 최장 근무를 기록했다. 다행인 건 최근 동료들의 태도는 훨씬 부드러워졌다.


사직서는 2주 전에 제출했다. 하루 휴무를 신청하던 날 메일로 사직서를 보냈다. 퇴근 후 매일 피로해하는 나로 인해 남편과 아이도 자주 힘들어했다. 주말까지 사흘을 쉬고 출근하자 퇴사 소식을 들은 동료들이 놀란 듯했다. 내 사수 베스나가 그만두지 말라며 다음날 본사에 편지를 썼다. 나와 계속 일하고 싶으니 내 사직서를 반려해 달라고. 갑작스런 상황의 반전이었다. 그만두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졌다.


사소한 일로도 무섭게 몰아치던 독일 여자 동료 사비네가 자기 때문에 그만두는 거냐고 물었다. 아니라고 했다. 내 능력이 부족한 것 같다 하니 사비네가 자기는 이 일을 스물 세 살때부터 시작했다 했다. 그때는 업계의 분위기가 더 살벌했다고. 이 바닥에서 버티려면 강해져야 한다고. 너처럼 마음이 약하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맞부딪히고 되받아치며 누구에게도 양보하는 법 없이 제 밥그릇 챙기는 법과 당당하게 싸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여기서 그걸 배우라고. 어딜 가도 마찬가지 아니냐며. 어찌 그리 구구절절 맞는 말씀만 하시던지! 그녀의 충고는 옳았고, 고마웠다. 기억하겠다, 내 인생의 스승들!



햇볕에도 녹지 않고 남아있는 눈



단 한 번도 친절하게 일을 알려주지 않고, 매번 타박만 하던 우리 팀 청년 세라피노도, 같은 말을 해도 듣는 사람 기분은 아랑곳 없이 시도때도 없이 고함과 험한 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나다도 모두 놀란 눈치였다. 이후 우리 팀에는 나와 입사 동기인 에티오피아 출신 쟌느가 왔다. 나는 2주 동안 사표 문제를 재고하기로 했다. 쟌느는 독일에서 일한 경험이 오래였다. 당연히 일도 나보다 빨리 익혔다. 서비스 쪽은 일이 많다며 처음부터 설거지 쪽을 자원했는데 최근 그 팀에 흑인 남성 두 명이 충원되는 바람에 우리 팀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차분하고 유순한 쟌느를 나는 처음부터 좋아했다. 함께 일하면 든든하고 안심이 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 역시 첫 주가 지나고 둘째 주가 되자 피로하고 지친 기색이었다. 첫 주에 우리 사수 베스나가 하도 고함을 지르니까 (나한테는 더 이상 고함을 안 질렀다. 아무도!) 참다참다 베스나에게 한 마디 했단다. '나한테 고함지르지 마. 난 고함지르면 더 못 알아듣는다고.' 쟌느의 얘기를 듣고 나는 감탄했다. 저렇게 조용하게 대응하는 방법도 있구나.


둘째 주에는 나와 베스나가 종일 계산대를 지켜야 했다. 나는 카드 전용 계산대를, 숫자와 계산에 약한 베스나가 카드와 현금 겸용 계산대를 맡았다. 그녀는 사흘 내내 동전을 양손에 들고 전전긍긍했다. 암산이 그리 힘든 모양이었다. 위대한 구구단이여! 새벽에는 같이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이후의 모든 일은 세라피노와 쟌느의 몫이 되었다. 샐러드 바 준비와 디저트 준비. 점심 배식 때도 잔느는 잔소리를 많이 들은 듯했다. 2주가 끝나던 지난 금요일 쟌느가 말했다. 그들의 태도를 계속 방관만 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런 쟌느를 보며 나는 생각했다. 그녀는 멋지게 살아남을 것이다. 쟌느를 통해 아프리카 사람들의 당당한 삶의 자세를 보는 것이 좋았다. 칸티네 생활이 선물한 새로운 발견이었다.



칸티네 베란다에 쌓인 눈



2월의 마지막 주였던 지난주엔 수요일도 목요일도 저녁마다 뮌헨에 눈이 내렸다. 눈비에 섞여 대충 내리다 녹는 눈과는 차원이 달랐다. 얼마만인가! 펑펑 쏟아지는 함박눈을 보는 것이. 날씨가 춥지 않아서 다음날까지 기대하기는 어려웠지만 간만에 보는 반가운 눈이었다. 2년 전 뮌헨에 온 첫해 1월에는 눈이 얼마나 자주 왔던가. 올 겨울에는 눈 구경도 못하는 줄 알았다. 밤새 쌓일 것처럼 내리던 눈은 다음날 자동차와 건물의 지붕 위에만 하얀 흔적을 남겼다.


지난주는 아이의 학교 파싱(독일 카니발) 방학이었다. 칸티네도 월요일과 화요일은 문을 닫았다. 수요일부터는 출근을 해야 해서 이틀 동안 남편이 재택근무를 했다. 금요일은 오후에 출근하는 조카가 아이를 봐주었다. 방학인데 엄마도 없이 집에만 있어야 하는 아이를 위로하려고 밖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오던 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하늘에서 쏟아지던 희고 두툼한 눈꽃송이들. 남편과 아이가 환호하며 모자도 안 쓰고 맨손으로 눈싸움을 하느라 한참을 거리에 서 있어도 춥지 않던 겨울밤이었다.


2주 후 나는 퇴사를 결정했다. 부끄러웠다. 겨우 두 달 다니고 내빼다니. 바쁜 것도 알고, 내가 빠지면 남은 동료들이 얼마나 힘들지도 잘 알면서. 그래도 어쩌나. 긴장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면 자주 가슴이 쿵쾅거리고, 자신감마저 자꾸 잃어가는 것을. 내 사수 베스나가 끝까지 잡는 것은 고맙고 미안했다. 그녀는 매니저와 상의 후 내게 파트타임을 제안했다. 꼭 생각해보라고. 알겠다, 고맙다고 했다. 그만두기가 미안해서 시아버지가 편찮으셔서 그런다고 했지만 돌아서는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변명 같지만, 칸티네를 떠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글을 쓸 시간이 없다는 것. 자주 안 쓰니 감마저 잃을 것 같아 두려웠다. 또한 지금은 요양원으로 옮기신 나의 양아버지, 어쩌면 길지 않을 수도 있는 그분과 그분의 옆을 홀로 지키고 계신 시어머니를 위해서 시간을 준비해두려 한다. 또 있다. 한국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코로나에 대비하여 체력도 키워야겠다. 이런 시국에 외국에서 아프면 진짜 곤란하다. 누가 뭐래도, 투명하고 용감하게 정면 승부하는 내 나라가 자랑스러워 이 말만은 전해야겠다. 멀리서도 대한민국을 응원함!



칸티네에서 바라본 눈 내린 뮌헨의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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