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휴무를 신청했다. 아침에는 믹스 커피까지 한 잔. 기념으로 칸티네 생활에 대한 짧은 소감도 한 줄 남겨야지. 돌아보니 흐린 날도 있었고, 맑은 날도 많았다. 간만에 글을 쓰니 참 좋았다.
눈비 내리는 날도.
칸티네에서 일하는 즐거움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아침 휴식과 점심 휴식. 너무한가? 그런 게 리얼리즘이다. 둘 다 법정 시간은 각 30분. 근무시간과는 별개로 무급. 실제로 30분씩 다 채우지는 못한다. 바쁜데 어떡하나. 아침은 15분. 점심은 20분 정도. 그나마 세 파트 열두 명의 동료들과 다 같이 휴식을 한다는 건 좋은 점이다.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없으니까. (여기서도 보스의 눈치는 본다. 그 정도 눈치는 있어야 살아남는다!)
매일 다양한 차를 두 번 마시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유명한 차 브랜드에서 만든 차가 10종류나 된다. 의욕이 넘치던 첫 달에는 페퍼민트나 녹차류를 즐겨 마시다가 요즘은 달콤한 딸기 차를 마신다. 매일 동료 사인방으로부터 쓴소리를 사중주로 듣다 보면 그렇게라도 단 것을 보충해줘야 한다. 어떻게 매일 똑같은 드립을 지치지도 않고 할까. 칸티네에서 일한 후로 커피는 입에도 대지 않는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야 하는데 혹시라도 잠을 못 자면 큰일이니까. 주말 아침에는 뮌헨에 사는 조카의 엄마이자 다정한 나의 친척 언니가 한국에서 보내준 믹스커피를 한 잔 마신다.
새해부터 칸티네에서 몸으로 벌어먹고 사는 고달픔을 배운 건 좋은 일로 기록한다. 오래 일해온 동료들이불평불만이 많은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생계를 위해 10년, 20년을 이렇게 일해야만 한다고 생각해 보라. 온몸이 아프지 않은 게 오히려 이상하다. 칸티네 여자 동료들 대부분이 그랬다. 40대 중반부터 50대 초반인 그녀들 대부분이 엄마다. 세세한 가정사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게 있다. 그녀들의 말을 통해서. 우리 팀 세 명의 여성 동료들이 20~30대 성장한 자녀들과 열 살 전후 어린 자녀들이 있다.
외국인 여성으로 가장의 의무를 다하고 사는 일이 말처럼 쉽나. 남편이 있든 없든. 남편이 독일인이라면 조금 낫다. 언제라도 도움을 받을 일이 많을 테니까. 외국인이라는 존재의 무게는 가볍지 않다. 동료들의 거친 말과 무뚝뚝함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게 실존이다. 살기 팍팍한데, 몸은 아픈데, 다정하고 고운 말이 나올 수가 있나. 초속으로 돌아가는 주방에서. 그리하여 칸티네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욕설이 매일 난무한다. 못 알아듣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그런데 니체가광장에서 채찍질당하는 말을 끌어안고 운 대목이 왜 갑자기 오버랩되나. 필경사 바틀비는 또 왜. 아, 인간이여!
흐린 날도 있었다.
어제는 힘든 하루를 보냈다. 이번 주 내내 그랬다. 새벽 다섯 시 십오 분에 칸티네에 도착. 출입문을 열고, 계산대 양쪽 컴퓨터를 켜두고, 칸티네에 있는 두 개의 커피 머신에도 우유를 채워넣는다. 요구르트와 샌드위치와 케이크를 놓을 진열장의 조명도 켠다. 전날 남은 빵이나 샌드위치를 치운다. 다음은 아침 샌드위치를 준비할 시각. 이번 주는 샌드위치 재료 준비만 내가 하고 이태리 청년 세라피노가 전담했다. 대신 나는 베스나의 브레첼 샌드위치를 도왔다.
사람이 새벽부터 욕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 하루 종일 우울해진다. 20대인 세라피노도, 나와 나이가비슷한 베스나도 그럴 때면 인정사정이라곤 없다. 이쪽 업계의 말투인가 보다. 벌써 열흘이나 됐는데, 벌써 한 달이나 지났는데, 일을 이 따위로 밖에 못하냐. 그렇게 느려 터져서 언제 일을 마치냐. 그 정도만 해도 애교고양반이다. '너는 집에서 음식도 안 하냐.' (베스나의 타박.) '너는 집에서 엄마 아니냐.' (새파란 세라피노의 구박.) 그런 날은 남몰래 화장실에 몇 번 다녀와야 한다. 실제로 매일 아침 오른팔이 저리고 추울 때처럼 손가락 끝이 곱아서 샌드위치를 작은 비닐봉지에 포장하는데 내가 봐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 둘 뿐이면 말도 안 한다. 아침 샌드위치 준비를 끝마치면 아침 휴식. 짧은 휴식이 끝나면 다음날 아침용 과일 샐러드와 당일 점심 샐러드 준비에 돌입한다. 샐러드는 생야채 7~8가지와 데치거나 삶거나 요리한 샐러드 4~5가지. 그 많은 일들을 눈부신 속도로 해치우는 두 명의 동료 베스나와 세라피노에게 언제나 감탄한다. 드디어 점심 배식 시간. 쓴소리 2부의 시작이다. 다른 여자 동료 사비네와 나다가주인공들. 음식을 많이 담아준다고. 자세히 보면 자기들도 넘치도록 퍼주면서 나만 욕먹는 건 무슨 경우람. 억울하지만 어쩌나.실제로 내가접시에 음식을 좀 많이 담는 편이다.
어제는 서비스 연회 60명분 음료와 물잔과 맥주잔, 소시지에 찍어먹을 각종 겨자 소스들, 포크와 나이프 등 준비물을 챙기다가 베스나로부터 심장이 베일 듯한 차가운 소리를 들었다. 꼭두새벽부터 시작해서 일이 끝나는 오후까지 세트로 두 번씩이나. '이 따위로 일할 거면 때려치워!''내가 몇 번을 말해야 제대로 알아먹을래.' 준비물 하나를 빼먹었다고. 서류에 엑스 표시가 있어서 물어본다는 게 타이밍이 늦었다. 그런 말을 맞받아치거나 귓등으로 흘릴 정도로 강심장은 아니라서 오늘은 휴무를 신청했다. 아침에는 부드러운 빵에 달콤한 잼을 발라 뜨거운 믹스 커피까지 한 잔. 기념으로 칸티네 생활에 대한 짧은 소감도 한 줄 남겨야지. 돌아보니 흐린 날도 있었고, 맑은 날도 많았다.간만에 글을 쓰니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