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코로나가 물러가고 문학책이든 철학책이든 시집이든 꽃나무 아래서 바람이 귀를 간지럽히고 꽃잎들이 책 읽기를 방해해도 무심히 책장을 넘기는 그림 같은 봄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어요.
2020.3.10일자 독일 일간지에 선보인 독일식 드라이브 스루 "Drive-in". (한국의 시스템을 도입했다는 설명은 빠졌다.)
그리운 샘.
코로나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입니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이, 누군가에게는 생계가 달린 일이니 당연합니다. 개인과 가정과 사회와 국가의 사활이 걸린 일이기도 하고요.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작년에 까뮈의 <페스트>를 읽을 때의 긴장감, 오래전 주제 사마라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의 섬뜩함이 살아나네요. 그래서 어제는 책장에서 사마라구의 <눈뜬 자들의 도시>를 찾아 손에 들었습니다.
최근 코로나 사태로 독일의 시어머니 두 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랍니다. 카타리나어머니는올여름에 한국에 꼭 가야 하냐고 만날 때마다 물으시네요. 가지 말라고요. 행여나 한국에 들어갔다 못 올까 봐서요. 봄도 안 왔는데 여름 일을 걱정하시다니요. 일단은안심을 시켜드렸답니다. 걱정 마시라, 지켜보고 결정하겠다고요. 지금 같아선 상황이 역전될지도모르겠네요. 유럽이 더 심각해질 수도 있고요. 여러모로 신중하게 지켜보고 판단할 문제입니다. 저의 동선이 어느 쪽에도 피해를 줘서는 안 되니까요.
코로나 사태는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는 데도 지장을 줍니다. 시아버지의 친딸과 손녀는 2월 파싱 방학 때 남티롤로 스키여행을 다녀온 여파로 학교를 쉬고 있어요. 주말에 계획했던 할아버지 할머니 방문도 취소했대요. 두 분이 많이 실망하셨을 것 같아요. 저희도 더 자주 찾아뵙는 건 자제 중입니다. 시아버지께서 이전보다 몸이 더 약해지셔서요. 그래도 잘 견디고 계시니 다행이지요. 바바라와 저와 알리시아가 오는 금요일만 손꼽아 기다리시니까요.
카뮈의 <페스트>
레겐스부르크의 새어머니는 저희가 한국 방문의 뜻을 굽히지 않자 당근 정책을 펴시네요(갈수록 귀여워지시는 어머니!). 올여름에 저희를 아이슬란드 여행으로 초대하셨어요. 8월 하반기에요. 감사하게 덥석 받았죠. 한국은 일정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꼭 갑니다,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요. 그때까지코로나가 반드시 해결됐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다른 문제가 따라오네요. 어머니가 여행에 저희만 초대하신다고 선언하셨거든요. 북독일에 사는 형네와 뮌헨에 사는 바바라는 초대를 안 하시겠다고요. 가족 관계라는 게 정말 쉽지 않네요.
새어머니는 2월 말에 벌써 아이슬란드에 다녀오셨답니다. 넘 좋으셨던지 저희를 데리고 또 가고 싶으신가 봐요. 뵌 지도 오래라 주말에 한번 찾아뵙겠다 하니 코로나 때문에 안 오는 게 낫겠다 하셨어요. 저희가 열차를 타고 오면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 있다고요. 혼자 댁에 계시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하시네요. 대신에 전화는 더 자주 드리기로 했어요. 요즘은 하루 걸러 어머니와 통화를 한답니다. 예전에는 클레멘스가 있어야 전화를 드렸는데, 요즘은 알리시아랑 둘이서 전화를드리기도 해요. 어머니를 대하는 제 마음이 많이 편해져서 가능한 일입니다.살다 보니 싫었던 사람이 좋아지기도 하고 그 반대가 생기기도 하네요.
샘.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한국을 꼭 가야 하는 이유에 뾰족한 대답을 못 찾겠더라고요. 왜 가는가? 안 가면 안 되나? 알리시아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졌더니 애가 갑자기 시무룩해지네요. 알밥을 못 먹는다고요. 그게 답인 거죠. 안 가면 그렇게 되는 거겠죠. 뭘 해도 재미가 없고, 사는 맛도 안 나고. 그것이 가마솥 같은 8월의 폭염에도 동으로 동으로 날아가는 이유가 되겠죠. 샘은 요즘 철학책을 읽으신다고요. 전 시집들과 철학서들과 한국 소설과 에세이들을 뮌헨의 한국문화센터에 기증했답니다. 쌓아놓는다고 다 읽을 책도 아니라서요. 어서 코로나가 물러가고 문학책이든 철학책이든 시집이든 꽃나무 아래서 바람이 귀를 간지럽히고 꽃잎들이 책 읽기를 방해해도 무심히 책장을 넘기는 그림 같은 봄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어요.샘도 코로나 조심, 또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