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첫날. 새벽부터 한 평짜리 나만의 글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 휴무날 아침 가장 좋은 시간이다. 이제 아침을 먹어야겠다. 밀린 글을 쓰고 빵집에서 갓 구운 빵을 사와서 먹는 시간. 일을 안 했으면 몰랐을 기쁨이다. 오월, 코로나가 무색하도록 열심히 살아보겠다.
오른쪽 사진은 2020년 9.19-10.4 옥토버 페스트 공식 포스터 (사진:쥐트도이체 차이퉁)
올해 뮌헨의 가장 큰 손실은 봄축제 취소다. 삼,사월이면 옥토버 페스트가 치러지는 장소인 테레지엔 비제에서 봄축제가 펼쳐진다. 아름다운 전통 복장을 차려입은 젊은 세대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봄 같다. 작년에는 얼마나 봄다웠나! 얼마나 싱그러웠나! 봄에 옥토버 페스트 장소에서 단 하루 펼쳐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벼룩시장도 올해는 당연히 못 본다.
오월의 전통 시장 아우 둘트 Audult도 취소다. 아쉽고 아쉽다. 우리 동네 마리아힐프 광장에서 1년에 세 번(봄, 여름, 가을) 2주간 열리는 연례 전통시장이다. 작년 가을에는 마리아힐프 광장 옆 호텔에서 몇 달 일하며 우리 호텔에 묵었던 아우 둘트 상인들과도 인사를 나눴던 터라 더더욱 남 일 같지가 않다. 그들의 생계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현재 아우 둘트 상인회는 10유로권 쿠폰을 9유로에 판매 중이다.
그중에서도 최대의 충격은 가을 옥토버 페스트 취소다. 가을 축제를 벌써 취소하다니! 그만큼 독일 정부가 코로나를 심각하고 보고 있다는 뜻이겠지. 이 정도면 올여름 한국 방문도 기약하기 힘들겠다. 옥토버 페스트 주간이 되면 발 디딜 틈 없던 뮌헨 시내가 그립다. 다시 열리면 절대로, 절대로 투덜대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는 북적대는 분위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그래서 뮌헨이라는 도시를 선택한 거고. 그건 그렇고, 300개가 넘는 그 많은 호텔들은 어쩌나.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실린 기사들. 중국 코로나 기원설과 5월 개학(위). 한국의 총선을 다룬 기사에 아이가 형광펜을 칠했다!(아래)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남편의 새어머니께서 구독해주시는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 주말분이 도착한다. 코로나 시대의 변화다. 두툼한 일간지를 매일 받아보는 건 생각만 해도 벅찬데 한 주에 2부만 받으니 부담이 없다. 신문은 나만 본다. (남편은 안 보심.) 주말에도 근무할 때가 많아 제목만 훑고 주요 관심사만 일독한다. 관심사란 주로 문학과 문화와 작가들이다.
3.16일 이후 휴교는 여전하지만 5월에는 대입을 위한 졸업시험 아비투어도 치러야 해서 중고등학교 졸업반 학생들부터 개학할 예정이다. 정해진 건 아니지만 초등 졸업반인 4학년들도 함께 개학을 기대 중이다. 예정일은5.11일. 이번 주에는 책방도 문을 열었다. 들리는 말에는 도서관도 문을 연다는데. 여름방학을 포함 긴 코로나 시절에 대비해 아이의 읽을거리도 겨울 땔감 마련하듯 준비 중이다.아이의 독서는 고공행진 중. 시리즈물 6권째에 진입했다.
세계문학 읽기도 계속하고있다. 프랑스 근대소설부터 읽고 있다. 4월에 스탕달의 <적과 흑>, 5월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이다. 그 사이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실린 르 클레지오 기사를 읽고 그의 첫 소설 <조서>를 펼쳤다가 금방 접었다. 저녁에 손에 들기만 하면 어찌나 잠이 쏟아지던지. 어쩌면 그렇게 안 읽히는 내용을 그렇게 길게 쓸 수 있는지! 작가의 역량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는 말로 감상을 대신한다. 독서 내공을 키우면 언젠가 다시 도전할 수있을까. 집 책꽂이에르 클레지오의 책이 두 권이나 더 있더라는 놀라운 발견. 제목은 <사막>과 <홍수>.
70페이지를 못 넘긴 르 클레지오의 <조서>. 5월의 독서는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 아이의 6권째 책.
오월의 첫날. 오늘부터 사흘간 휴무다. 원래 계약은 1일 6시간 파트타임인데, 일은 풀타임으로 한다. 당연히 오버 타임이 있다. 그 시간을 휴가로 주는 모양이다. 기왕 일하러 나왔으니 돈을 더 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휴가를 받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책도 많이 읽고 글도 자주 쓸 수 있으니 말이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다. 금방 마음이 편해진다. 4월에는 20일 근무/10일 휴무. 5월엔 16일 근무/15일 휴무다. 내 생애 이렇게 긴 휴가도 처음이다. 알뜰살뜰 챙겨 먹을 생각이다.
며칠 전에는 4월이 가기 전에 글을 한 편 올리려다가 말도 안 되는 실수를 했다. 다 올리고 보니 첫 문단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고 없는 게 아닌가! 급히 다시 살려 넣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제목이 '독일의 마스크 착용 의무'인데, 그 내용이 날아가 버렸으니. 참고로 독일의 마스크 착용 의무제는 이번 주 월요일(4.27)부터 시행되었다. 차분하게 진행 중이다. 궁금한 건 갑자기 어디서들 그렇게 재빨리 마스크를 구했는지. 민첩한 동작에 더 놀랐다. 벌금도 있다. 150유로!
이번 주엔 비가 자주 내렸다. 주말에도 비 소식이 있었는데 비는 안 오고 아침부터 날이 맑았다.4월부터 꽃비가 아닌 노란 꽃가루가 심하게 내려서 눈이 가려웠다. 독일 와서 3년째 봄을 맞이하는데 해마다 봄철 가뭄이 심하다. 시어머니 두 분이 정원의 나무들과 베란다 꽃들이 마른다고 걱정하시는 걸 보면.꽃과 나무를 걱정하는 이런 평온한 일상.. 이제 일어나 아침을 먹어야겠다. 새벽부터 한 평짜리 나만의 글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 문 밖 복도에서 남편과 아이의 기척이 차례로 들린다. 휴무날 아침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이때다. 숙제처럼 밀린 글을 쓰고 빵집에서갓 구운 빵을 사와서 가족과 먹는 시간. 일을 안 했으면 몰랐을 기쁨이다. 오월, 코로나가 무색하도록 열심히 살아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