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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뮌헨의 마리 May 31. 2020

독일 할머니 댁에서 3대가 노는 법

주말 저녁 그릴과 보드 게임


새어머니 방문을 1박 2일로 한 건 잘한 일 같았다. 같이 저녁을 먹고, 보드 게임을 하고,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평범한 시간 자체가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최대치의 선물이었다.


금요일 이른 저녁은 그릴. 꽃병에 꽂자마자 만개한 작약.



레겐스부르크에 사시는 남편새어머니 힐더가드를 방문할 때마다 날씨가 왜 이 모양인지. 흐린 건 기본. 매번 비가 뿌리고 바람이 불고 춥다. 오월도 내일모레면 끝인데. 남편 말로는 도나우 강 때문이라는데. 금요일 저녁 도착할 때만 해도 괜찮았다. 토요일은 딸기밭에 딸기를 따러 가자고 할 만큼. 이번 주 나는 긴 휴무를 받았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인 월요일까지. 원래는 주말만 휴무였다가 사흘로 늘었다. 이렇게 기쁜 일이. 아이가 6월에는 격일로 학교 간다고 좋아하는 것처럼. 그렇게 놀고  노니까 좋은 모양이었. 아이들이란!


뮌헨은 6월부터 모든 학년이 개학을 한다. 분반을 해야 해서 교사도 교실도 부족하다. 학교는 6월 첫 주와 둘째 주에 2주간 핑스턴 방학이다. 코로나 때문에 두 달이나 휴교를 했는데 학기 중 방학은 그대로 하는 것도 놀랍다. 이러다 여름방학이 짧아지는 건 아닐까. 4학년인 아이는 한 주는 월/수/금, 다음 주는 화/목에 학교에 간다. 지금까지는 오전 3시간, 앞으로는 오전 4시간 수업을 한다. 수업 시간은 오전 8:15~12:00. 급식은 여전히 없다. 맞벌이를 하는 율리아나 엄마가 볼멘소리를 했다. 애들 점심은 어쩌라고!


지난번 카타리나 시어머니 방문 때와 마찬가지로 꽃은 핑스트 로제 Pfingstrose, 작약을 샀다. 아이가 주문한 대로 조금 더 핑크빛으로. 놀라운 일은 어머니댁에 도착한 후 1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어났다. 살 때만 해도 동글동글 단단하던 작약 봉오리가 꽃병에 잠기자 순식간에 만개한 것이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꽃송이로. 마치 연꽃처럼. 그 셀 수 없이 촘촘하던 꽃잎들이라니. 잠든 아가의 얼굴들여다보듯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았다. 어머니의 베란다 화단에도 색색의 꽃과 장미가 한창이었다.



숫자 보드게임 루미 Rummy. 2단 우드(어머니 댁/위)와 3단 플라스틱 (우리집/아래) 등 다양하다.



금요일은 퇴근 후 동네 꽃집에서 꽃을 사고, 오후 5시에 차로 출발했다. 오후 6시 20분에 레겐스부르크 도착. 금요일 저녁 메뉴는 그릴이었다. 며칠 전 전화남편은 스테이크, 나는 감자, 아이는 옥수수를 주문한 상태였다. 문제는 각각 4인분을 준비하셨다는 것. 오 마이 갓, 그걸 어떻게 다 먹지! 스테이크를 굽는 건 남편의 일. 감자는 오븐에서 따끈하게 익어가는 중. 나와 아이는 스테이크 하나 반반나눠먹었다.


저녁을 먹고 밤 9시까지 창밖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숫자 보드 게임 루미 Rummy를 했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게임이었다. 혼자서는 할 수도, 재미도 없다.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시는 이유다. 색과 숫자를 맞춰 자기가 가진 큐브를 최대한 빨리 없애는 사람이 이긴다. 루미 게임의 장점이라면 머리를 조금 써야 하지만 복잡하지 않아서 3대가 즐기기 좋고, 조부모치매 예방에도 좋다는 .


10시. 거실로 와서 TV도 보고, 이야기도 나누고, 후식으로 아이크림도 먹었다. 아이는 소파에 앉아 집에서 챙겨 온 노트에 비밀 일기를 쓰고는, 할머니와 파파에게 차례로 보여주었다. 한국 단어도 섞어서 썼는지 아무도 못 읽다는며 혼자 의기양양했다. 엄마에게는 안 보여주었다. 새어머니 방문을 1박 2일로 한 건 잘한 일 같았다. 아무렇지도 않고 특별할 것도 없지만, 저녁 시간함께 보내는 일 자체가 혼자 계시는 어머니께 드릴 수 있는 최대치의 선물이었다.


TV를 보다가 내가 깜빡 졸았던 모양이. 저녁을 먹으며 곁들인 레드 와인 한 잔 탓인지, 아니면 원래 그 시간이 취침 모드여 그럴 수도 있겠다. 세 사람이 나를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겠지? 양해를 구하고 혼자 일찍 자러 갔다. (솔직히 나는 어머니 체력에 비할 바가 아니다. 칠십 중반이신 어머니는 체력으로만 보자면 50대. 낮잠은 No. 밤 12시 취침. 새벽 6시 기상. 일 아침 두툼한 조간 신문인 쥐트도이체 차이퉁을 완독 하시고, 주 1회 골프를 즐기신다.)



어머니의 베란다 화단을 장식하던 꽃들.



토요일은 아침부터 날이 스산해서 딸기밭은 포기. 시내에서 쇼핑을 하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머니께서 독일의 중저가 백화점 카우프 호프 Kaufhof에서 아이의 샌들을 사주셨다. 자전거 타기에 그만인 편안하고 튼튼한 샌들이었다. 정가는 59.99유로. 코로나 세일가는 39.99유로. 독일에서 신발만큼 만족도 높은 쇼핑도 드물다. 품질 좋고 가격은 저렴하고. 여름과 겨울 세일 기간에는 더더욱.


할머니께서 뭐라도 사주겠다 하시면 거절하지 말고 감사하게 받으라고 미리 교육을 시킨 덕분에 아이는 신발과 바지를 선물로 받았다. 앗, 문제는 할머니와 아이가 선호하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다는 것. 어쩐지 애 표정이 별로더라니. 다음부터는 할머니께 타이트한 흰 면바지 말고 편한 청바지가 좋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려!


어머니 댁에서 샐러드와 피자로 간단한 저녁을 먹고 뮌헨으로 돌아왔다. 무엇으로도 내 집의 편안함과 바꿀 수는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어머니의 톡도 도착했다. 너희가 와줘서 너무나 기뻤다, 고. 이번에 뵈니 코로나 기간에 살이 조금 빠지신 듯했다. 아이가 할머니 앞에서 전처럼 어려워하지 않고 엄마 아빠 앞에서처럼 밝고 구김이 없는 것도 좋았다. 얼른 자라서 할머니의 좋은 친구가 되어드리면 좋을 텐데!



레겐스부르크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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