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시어머니 생신날 한국 며느리는 뭘 할까

뮌헨으로의 초대

by 뮌헨의 마리


새어머니께 뮌헨에 오셔서 식사나 같이 하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시어머니 생신날에 어머니가 쏘시는 저녁과 와인을 나만큼 맛있게 먹고 즐겁게 마신 며느리도 드물 것이다.


어머니와 산책길에 들렀던 장미정원, 로젠가르텐 Rosengarten!



제목을 저렇게 써놓고 보니 누가 들으면 오해하다. 한국 며느리인 내가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한국 음식이라도 차려드린 줄 알고. 사실은 반대다. 남편의 새어머니이신 어머니가 뮌헨으로 오셔서 우리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셨다. 원래는 레겐스부르크에서 생일 파티를 하실 생각이었으나 코로나로 예약해놓은 콘서트와 레스토랑이 줄줄이 취소되는 바람에 계획이 무산되었다. 초대 손님은 열 명이었다. 남편의 형네와 뮌헨에 사는 시누이 바바라는 초대 받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고립과 고독감으로 올해 부쩍 어머니가 약해지셨다. 행사를 기획하고,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기도 하셨는데.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엔 침울해하시고 몸도 자주 아프셨다. 마음의 병이 아니었을까 싶다. 칠십이 넘도록 7층의 펜트하우스에서 양탄자 깔린 복도 계단을 뛰어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가던 분이었는데. 멀쩡한 엘리베이터를 놔두고서 말이다. 독일로 와서 어머니를 찾아뵐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던 사례 중 하나다. 2년 전 뮌헨으로 이사 왔을 때는 하도 궁금해서 여쭈어 보았다. 그러시면 무릎이 괜찮냐고. 괜찮다 하셨다. 평생 그러셨다고.


어머니가 많이 달라지셨구나 느낀 건 지난달 우리가 레겐스부르크를 방문했을 때였다. 생일 파티고 뭐고 다 피곤하다 하셨다. 지난 넉 달 동안 목과 어깨와 장 통증에 주무시다가 다리에 쥐도 자주 나서 힘들어하셨는데, 요즘은 왼쪽 무릎과 오른발 통증으로 고생 중이시다. 매주 골프를 치러가시는데도 어려움이 있고, 산책도 오래 못하신다. 평소엔 우리보다 동작이 빠르신 분이었는데. 생신날 오후 이자르 강을 따라 2km 남짓 걸어서 시누이 바바라 집에 다녀올 때도 그랬다. 예전의 어머니가 아니셨다. 그것도 모르는 남편이 산책길을 돌고도는 바람에. 언제까지 옛날 어머니인 줄로 착각하는 남편의 무신경!



로젠가르텐 입구에 핀 코스모스



새어머니께 뮌헨에 오셔서 식사나 같이 하자고 제안한 건 나였다. 어머니가 반색하시며 그래도 되냐고 몇 번이나 물으셨다. 한국 같으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말이다. 매년 시부모님 생신날이면 갈비찜을 10킬로나 재서 수원에서 천리길을 이동한다는 친구 E 생각이 났다. 난 여태 시부모님 생신날에 밥상 한번 차려드린 적이 없는데. 독일은 생일을 맞은 사람이 다른 이들을 초대하는 문화다. 그럼 내 생일에라도 부모님을 초대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런데 생일조차 제대로 챙겨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 또한 얼마나 낯설고 생경하고 어색한지.


각설하고, 새어머니는 뮌헨에 오시기 전날 전화로 내게 말씀하셨다. 오전에 일찍 뮌헨에 와서 혼자서 시내 구경도 하시고, 오후에 우리랑 만나 이른 저녁을 먹고 밤에 레겐스부르크로 출발하시겠다고. 아이고, 어머니! 주무시고 가시는 게 당연해서 따로 언급을 안 드렸더니 저러시는구나. 저희 집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셔야 저희가 안 서운하죠. 이번 주말에는 미리 휴무도 받아놨다고 말씀드리자 그제야 은근한 기쁨이 전화기를 타고 전해왔다. 주말에 우리를 방해하기 싫어서 그런다 하시지만 얼마나 사람의 온기가 그리우실 것인가. 어머니는 우리 집에서 딱 하루를 묵고셨다. 다음날 늦은 아침을 핑계로 점심도 안 드시고.


마음 같아서는 하루만 더 계시다 가시라, 저녁은 제가 한국식으로 대접하겠노라, 붙잡고 싶었지만 남편과 아이가 난색을 표했다. 남편은 주말에도 밀린 일을 해야 했고, 아이는 율리아나랑 놀고 싶어 했다. 바바라는 저녁만 먹고 갔다. 다음날 바바라가 어머니를 브런치에 초대했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 것인가. 무심한 사람들! 어쩌랴. 나만 어머니와 놀아드릴 수도 없고. 어머니가 원하시는 건 남편과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일 텐데. 형네 딸은 만 5세인가 6세 때부터 어머니와 관계가 불편했던 형수님이 딸아이를 일절 어머니께 보내지 않았다. 어머니께 육아의 경험이란 열세 살 때부터 거둔 우리 남편이 다였다.



어머니와 함께한 산책길



형네가 딸을 낳았을 때 어머니가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나는 안다. 드디어 어머니도 '새어머니'라는 타이틀을 벗어나 '할머니'가 되실 기회였다. 그러나 멍에는 계속되었다. 형네는 아이에게 양쪽 네 분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우리가 부르듯 그분들의 이름으로 부르게 했다. 어린아이의 입에서 네 분의 이름이 불려질 때, 그때의 비애감이라니. 내가 아이를 낳아서 네 분을 꼭 할아버지 할머니로 만들어 드릴 거야! 다짐은 십 년 후에 이루어졌다. 요즘도 아이의 입에서 할머니라는 호칭 '오마 Oma'가 애칭 '오미 Omi'로 바뀔 때면 혼자서 감격하곤 한다. 우리 어머니가 드디어 할머니가 되신 거야!


서른 다섯 싱글로 오십이던 시아버지와 결혼하실 때 어머니는 본인의 아이를 간절히 원하셨다. 시아버지는 아이 셋을 다 키운 후라 다시 육아를 반복하실 생각이 없으셨다.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은 소망을 접어야만 했던 어머니. 어머니는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어머니가 태어나기 전 첫딸을 잃은 당신의 어머니는 첫딸을 평생 못 잊어 둘째딸로 태어난 우리 어머니를 박대하셨다. 다행히 당신의 아버지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다고. 어머니는 평생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적이 없지만, 마른 우물처럼 부족했던 사랑은 차고 넘치는 부로도 메워지지 않았다.


어머니와 남편의 형과 누나, 그들의 관계는 시간이 흘러도 나아지지 않았다. 재혼 직후 시아버지가 뉴욕으로 발령이 났고, 연년생이던 형과 누나는 뮌헨에서 대학을 다녔다. 어머니로서는 홀가분했을 것이다. 열세 살이던 우리 남편만 데리고 시아버지와 셋이 뉴욕에서 십 년을 사셨다. 남편은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그때 형과 누나의 마음이 어땠겠는가. 자기들도 미국에서 살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새 가족의 일원이 되고도 싶었을 것이다. 남편이 그들의 소외감을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만 안다. 새어머니와 그들의 불화는 지난 세월의 연장전이다. 어떻게 끝날 지는 누구도 모른다. 연장전 휘슬 직전에 영입된 나는 개입하지 않기로 했다.



로젠가르텐을 빛낸 흰 코스모스



저녁은 맛있었다. 우리 집 앞 이태리 레스토랑 소피아 말고, 우리 동네 블록 끝에 있는 맛집 이태리 레스토랑 야외 테이블을 예약했다. 음식도 와인도 끝내주는 곳. 어머니와 나와 바바라가 셋이 나눠 마신 화이트 와인 한 병 중 절반은 내가 마셨을 것이다. 시어머니 생신날에 어머니가 쏘시는 저녁과 와인을 나만큼 맛있게 먹고 즐겁게 마신 며느리도 드물 것이다. 한편, 올해 우리가 한국에 못 가는 걸 가장 반기신 분도 우리 어머니시다. 코로나 여파로 아이슬란드행 가족여행이 취소되자 스페인 안달루시아로 우리를 초대하기로 하셨다. 형네와 바바라는 빼고. 바바라한테는 아직 말하지 못했다. 그걸 어떻게 말하나! 저녁을 먹고 집에서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보드게임을 했다.


코로나 때 시작한 매일 저녁 8시 안부 전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가끔은 남편과 아이가 힘들어한다. 전화 한 통 드리는 게 그리 힘드나? 물론 피곤할 도 있지. 매일 어머니와 무슨 할 말이 그리 많겠나. 나도 작년까지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전화로 통화하는 걸 싫어해서 한국의 친정 엄마와도 톡으로만 안부를 전한다. 그러던 내가 자진해서 새어머니께 매일 전화를 드리는 것은 고독이 얼마나 파괴적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걸 어떻게 아냐고? 글쎄, 어떤 일은 저절로 알게 되지도 않나.


어머니의 생신 다음날은 토요일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늦은 아침을 먹었다. 나와 아이가 늦잠을 자는 동안 남편이 어머니와 함께 빵집과 슈퍼에 들러 빵과 커피와 과일 등을 사왔다. 시어머니를 초대해놓고 다음날 늦잠을 잔 이유는 간 큰 며느리여서가 아니다. 어머니가 당신의 생신날 밤 11시에 뮌헨의 천문대를 예약해놓으셨기 때문이다. 당일 새벽 4시 45분에 일어나 오후까지 일하고 돌아온 며느리가 졸면서도 새벽 1시까지 강행된 한밤의 가족 행사에 동행했다고 눈감아 주신 것. 이런 면이 어머니와 우리 남편의 공통점이다. 보통 사람이 흉내내기 힘든 극단적인 취향이랄까. 어머니가 뭐라 하셔도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이 어머니 편 되어주었기에 어머니 인생이 크게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앞으로 줄에 두 명이 더 추가될 전망이다. 한국의 며느리와 사춘기를 코앞에 둔 손녀가.



어머니, 당신은 혼자가 아니십니다.



P.S 밤늦게 어머니께 왓츠앱을 보냈다. 밤 9시였다. 잘 도착하셨나요, 어머니. 앞으로도 뮌헨에 자주 오세요. 어머니가 오셔서 참 좋았답니다. 어머니가 답하셨다. 고맙다, 얘야. 너의 따듯한 마음과 환대, 잊지 않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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