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서 한 장의 기쁨과 슬픔

코로나 시대의 소통법

by 뮌헨의 마리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꾼다는 말은 맞았다. 엽서 한 장의 기쁨도 있고, 엽서 한 장으로 대신할 수 없는 슬픔도 있었다.



셧다운 첫날 밖에서 주운 열매. 발코니 테이블에 두었더니 1주일이 지나도 색이 그대로다.



레겐스부르크에 사시는 새어머니 힐드가드가 퇴원을 했다. 무릎 수술 후 한 달 만이었다. 10월 6일 수술. 11월 3일 퇴원. 나 홀로 입원과 1인 병실과 퇴원까지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는 과정이었다. 당사자인 어머니도, 어머니가 유일하게 의지하는 내 남편도 무덤덤한데, 나만 마음이 시큰했다. 시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 입원과 퇴원 때만은 동행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남편의 등을 떠밀고 싶었지만 오란 소리도 간다는 말도 없었다. 남편이 무정하고 매정한 사람도 아닌데 그랬다. 그들에겐 그들만의 룰이 있겠지. 잔소리나 간섭은 했다.


어머니가 입원하시던 10월 6일은 모든 상황이 양호했다. 2,600명에 불과했던 코로나 확진자는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한 달 만인 11월 6일 처음으로 20,000명을 넘었다. 저 많은 숫자는 어디서 왔을까. 록다운이 시작된 지 1주일. 한 주간의 가을 방학도 끝나고 이번 주부터 아이들은 등교를 시작했다. 록다운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이제부터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끝날 때까지는 끝이 아니다. 록다운의 끝은 괜찮아야 할 텐데. 얼마나 많은 가게들이 문까지 닫고 감행하는 록다운인가.


어머니가 퇴원하시면 찾아뵙겠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되었다. 병원에 계실 때 꼭 찾아뵙고 싶었는데. 이런 상황까지 예상한 건 아니었지만 말이다. 언제 뵙나. 11월 한 달로 제한하고 시작한 록다운이지만 사람의 일이 아니라서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일찌감치 취소되었던 시월의 옥토버 페스트와는 달리 12월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열릴 거라 기대했는데 현재로써는 불가능해 보인다. 성탄 마켓 없는 12월이라니! 기분은 벌써 암울한 중세 시대 모드로 돌아섰다. 시월 중순에 평소보다 절반 규모의 아우둘트 상설 시장이 열린 것은 기적이었다.



뮌헨의 아우둘트 연례시장. 시월에 극적으로 열렸다!(해마다 5월/7월/10월에 열린다)



한 달 만에 귀가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아이에게는 엽서를 쓰도록 했다. 우리가 고른 엽서는 꽃이 핀 풀밭 위에 작은 집. 웰컴 투 스위트 홈. 겉봉투도 아이 이름으로 보냈다. 며느리보다야 손녀지. 아이는 엽서에 뭘 써야 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더니 잠시 후 유레카를 외쳤다. ', 생각났다! 할머니 생신 축하드려요!' 엄마의 동작이 아이보다 빨라야 할 때가 이런 경우다. 엽서도 한 장 밖에 없는데. 상황 판단이 그렇게 안 되나. 할머니가 수술을 하시고 병원에서 퇴원하시는 거라니까. 엽서라면 생일 축하 엽서밖에 모르는 아이는 엄마와 파파에게 물어물어 겨우 엽서 한 장을 완성했다.


할머니!

집에 오신 거 축하드려요.

할머니 무릎도 잘 낫고요.

할머니랑 빨리 만났으면 좋겠어요.

알리시아가.


어머니를 위해 우리가 준비한 것은 한 손에 들어오는 아주 작은 발레리나 도자기 인형이었다. 한쪽 무릎을 그네에 앉듯 사뿐히 접은 여자 아이. 다른 쪽 다리는 곧게 뻗었고, 볼은 핑크빛. 크리스마스 트리에 걸 수 있도록 머리에는 앙증맞은 리본 끈도 달렸다. 병원에 누워계실 어머니께 아이 생각하며 보시라고 미리 사 둔 선물이었다. 어머니 퇴원 전날에 우체국에서 보냈다. 퇴원 다음 날에 받으셨으니 사흘이 걸렸다. 당일 배송을 기대하며 빠른 편을 문의하니 이틀에 13유로. 배송료를 아끼는 대신 어머니께는 기다림의 즐거움까지 플러스 원.


퇴원 다음날 저녁 8시. 전화기를 통해 들리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활기가 가득했다. '알리시아, 엽서 잘 받았다. 너 글씨도 잘 쓰는구나! 선물도 고맙고. 그런데 너 그거 아니? 인형의 접은 다리가 어느 쪽인지? 할머니 무릎 수술과 똑같은 왼쪽이야!' 솔직히 그건 몰랐다. 어쨌거나 기뻐하시니 다행이었다. 깨지지 말라고 안쪽에 뽁뽁이가 든 봉투에 뽁뽁이로 두 번이나 더 싸서 보냈더니 안전하게 도착했다. 우편함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우체부가 어머니 댁의 벨을 눌러 엘리베이터 안에 소포를 내려놓고 6층을 눌러 주었다고. 저렇게 센스 있는 우체부도 있구나! 어디에 걸지 고민 중이시라는 어머니. 즐거운 고민이 되시리라 믿는다.



아우둘트 시장(위) 어머니가 오시면 빅투알리엔 마켓의 저 카페(아래)에서 맛있는 도너츠를 먹어야지. 어머니께 보내드린 엽서와 선물은 사진 찍는 걸 까먹었다. 아, 바보!



글이란 게 이상하다. 쓸 때는 몰랐다가 나중에야 번개처럼 깨달을 때가 있다. 지난번 독일 시어머니께 용돈 받는 며느리라는 글을 썼다가 이튿날에야 알았다. 결혼한 지 18년. 친시어머니인 카타리나 어머니께 용돈을 받은 건 불과 1년 남짓이라는 것을. 시아버지 오토가 쓰러지시고 그와의 관계가 회복된 후였다. 기억은 변질되고 착각은 커지는 모양이다. 나 자신이 평생 시어머니께 용돈을 받은 괜찮은 며느리였다고 내 무의식이 종종 혼돈하는 건 아닐까. 그러고 싶어서 말이다. 평소보다 많았던 용돈은 시누이와 자주 만나 맛있는 걸 사 먹으라는 어머니의 기대이자 한 달 동안 카페가 문을 닫아 백수가 될 며느리를 염려하신 때문이라는 것도 뒤늦게 깨달았다. 어떻게 알았냐고? 그냥.


새어머니 힐더가드와의 관계도 그렇다. 처음부터 다정한 고부관계는 분명코 아니었다. 변화는 작년 여름부터. 자꾸 깜빡하시는 걸 보고 걱정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누가 있나. 걱정해 줄 사람이라곤 나와 남편뿐. 남편은 바쁘고, 그럼 남는 건 나. 계기는 코로나였다. 올해 3월 코로나로 통제령이 내려졌다. 얼마나 오래 갈지도 몰랐다. 최선의 패를 고민하다가 매일 저녁 8시 안부 전화를 생각해냈다. 생각도 못한 건 내부의 반발이었다. 남편과 아이가 힘들다고 했다. 왜? 힘든 건 난데! 5분도 길다고 느끼던 통화는 그 후로 20분이 되었다. 매일 같은 걸 여쭙고 듣는다. 남편은 그게 힘들단다. 요즘은 가끔 남편을 빼고 한다. 남편과 아이가 익숙해지기까지는 8개월이란 연습 시간이 필요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친자식이 없어서 누군가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는 걸 부담스럽고 미안해하셨다. 남편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 함께 살았던 몇 년을 빼고는 재혼하신 시아버지와 두 분만 사셨다. 매일 전화 안 해도 된다고, 매일 생사확인을 할 나이는 아니라고도 하셨다. 그러시거나 말거나 계속했다. 주말도 예외는 없었다. 뭐든 처음이 어려운 법. 1년 365일 저녁 약속이 없는 독일이기에 가능했다. 카타리나 어머니를 방문하고 오는 날만 예외였다. 뮌헨 도착이 저녁 8시가 넘으면 어머니께 다음날 통화하자고 왓츠앱을 쓰거나, 집에서 일하는 남편에게 총대를 메게 했다. 저녁 8시마다 알람을 설정해 지키려 노력했다. 다른 뜻은 없었다.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와 내가 서로를 이해하는. 기회는 잡고 보는 것 아닌가.


요즘은? 5분만 늦어도 어머니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드물게 어머니가 먼저 전화를 주시는 때도 있다. TV에서 영화를 보고 싶으시다며. 독일의 TV는 저녁 8시 뉴스가 끝나면 8시 15분에 드라마나 영화나 인기 프로가 시작한다. 나도 처음엔 그걸 염두에 두었는데 어머니는 드라마를 잘 보시지 않는다. 폰 옆에서 남편과 아이가 양팔을 치켜들고 소리 없는 환호 속에 하이 파이브. 저렇게 좋을까. 비디오폰이 아니라 스피커폰 음성 통화라서 가능한 일이다. 코로나가 많은 것을 바꾼다는 말은 맞았다. 엽서 한 장의 기쁨도 있고, 엽서 한 장으로 대신할 수 없는 슬픔도 있었다. 어머니의 깜빡 증세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언제가 되든 어머니의 마지막 기억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록다운 2주째인 오늘 아침 뮌헨은 짙은 안개. 안개는 2시간 만에 물러났다. 코로나라는 안개도 걷힐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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