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사람은 만나기 어렵다

편지 50

by 뮌헨의 마리


세상에는 좋은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도 독일도 어디서든요. 그런데 찾아보면 꼭 없는 것도 아니에요. 좋은 사람을 '친절한 타인'이나 '마음이 잘 맞는 친구'에 한해서 정의하면요. 샘과 저처럼 말이지요.



요양원 행사 후 남은 꽃다발을 선물로 받은 수요일!(위) 요양원 정원과 꽃들(아래)


그리운 샘.


어느덧 6월이에요. 올해 독일의 6월 1일은 'Pfingsten Montag 핑스턴 먼데이'라는 공휴일이었어요. 이번 주와 다음 주는 핑스턴 방학이고요. 핑스턴을 찾아보니 성령 강림절 혹은 오순절이라고 부르네요. 독일의 공휴일은 대부분 종교와 관련된 날입니다. 독일 남부인 바이에른은 가톨릭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있었던 북부는 개신교가 강합니다. 그럼에도 종교는 더 이상 독일인들의 삶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진 못하는 것 같아요. 젊은 세대들에게는 더더욱요.


저의 요양원 근무도 3개월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코로나 사태로 제공되던 무료 점심은 6월부터 없어졌고요. 아침에 무료로 제공되던 빵도 돈을 내야 합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그 무엇을 준대도 코로나 시대와 우리의 삶을 바꾸고 싶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 뒤늦게 일을 하면서 느낀 건 나이를 먹을수록 좋은 친구 만나기가 어렵, 일터에서 좋은 동료 만나기도 힘들다는 거예요. 언제 어디서고 아무 때나 그런 이를 만난다면 소중함을 모를까 봐 꼭꼭 숨겨둔 걸까요. 어떨 때는 좋은 사람 찾기가 보물찾기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제 오후 두 시에는 방학으로 심심했던 알리시아와 단짝 카타리나가 저희 집에서 만났답니다. 뮤지엄에서 일하는 카타리나 엄마 레나테가 오전 근무를 마치고 카타리나를 데려다주었지요. 레나테와 저는 부엌 식탁에서 둥굴레차를 마시며 두 시간 동안 폭풍 수다를 떨었답니다. 레나테와 그녀의 남편 울리히는 보기 드물게 저희 부부와 나이가 같은 학부모랍니다. 저희와 달리 사람은 아이가 두 명입니다. 카타리나와 한창 사춘기라는 열다섯 살 아들 킬리언이에요. 나이와 무관하게 친구가 수 있는 독일이지만 그럼에도 세대 차이는 엄연히 존재합니다. 나고 자라고 경험해 온 세월의 무게가 머리로만 이해될 수는 없나 봐요.



요양원 옆 성당 방과후 교실과 꽃다발



레나테는 인상이 강한 여성입니다. 딱 봐도 독일 여자처럼 보이지요. 그녀의 큰 체격도 한몫합니다. 미간에는 깊은 세로줄도 있네요. 오랫동안 제가 말을 못 건넨 이유이기도 합니다. 두 아이가 교실에서 같은 책상에 앉는 횟수가 많아지면서 엄마들도 가까워지기 시작했지요. 알리시아를 자기 집으로 먼저 초대한 것도 카타리나였고요. 얼마나 똑 부러지는지 한 마디로 똑 소리 나는 여자 아이입니다. 레나테는 자기도 뮌헨에서 공부한 게 아니라서 친구가 별로 없대요. 뮌헨 사람들이 외부인에게 마음을 잘 안 연다면서요. 두 시간 동안이나 무슨 얘길 그렇게 했냐고요? 얘기는 아니에요. 코로나, 연로하신 부모님, 아이들, 여름휴가.. 그런 것들요.


오후 네 시. 레나테는 집 근처 오픈 마켓에서 야채를 사야 한다며 서둘러 돌아갔습니다. 식구들이 아토피가 심하다는 설명과 함께요. 카타리나는 울리히가 퇴근하는 길에 데려가기로 하고요. 올 때 바퀴가 달린 시장바구니를 끌고 온 레나테는 갈 때 알리시아가 카타리나 오빠에게 선물하는 레고 박스 3개까지 들고 갔지요. 그걸 다 어떻게 들고 가니? 걱정하는 제게 시골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나요. 진짜? 나도 그래! 시골뜨기들의 유쾌한 커밍 아웃은 계단을 울리는 웃음으로 훈훈하게 마무리되었답니다.


오후 다섯 시. 카타리나 파파 울리히가 벨을 울리네요. 아이들이 아쉬워하는 바람에 울리히와 부엌 테이블에서 30분 정도 담소를 나눴답니다. 울리히 왈, 우리는 네가 좀 더 나은 곳에서 일하지 못하는 게 마음 아파. 제가 답합니다. 걱정해 줘서 정말 고마워, 그래도 난 괜찮아. 진짜야, 꿈은 따로 있거든. 지난 2년간 내가 글을 473개 쓴 거 아니? 내 목표는 7월까지 500개 쓰는 거야! 그리고 최근에 쓴 브런치 글을 하나 보여주었죠. 울리히가 안도하는 표정으로 말합니다. 사실은.. 나도 책을 쓰고 싶었어. 그런데 지금까지 세 꼭지도 못 썼어.



집으로 온 유월의 꽃다발!



샘.

세상에는 좋은 사람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도 독일도 어디서든요. 그런데 찾아보면 꼭 없는 것도 아니에요. 좋은 사람을 '친절한 타인'이나 '마음이 잘 맞는 친구'에 한해서 정의하면요. 샘과 저처럼 말이지요. 제가 일하는 곳에 인도네시아 셰프 아저씨가 한 분 있어요. 가끔 제게 묻습니다. 힘들지 않냐고요. 이런 동료나 반가운 이웃이나 아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는 대화가 되는 학부모를 만날 수 있다면 운이 좋은 거지요.


아참, 제가 만난 소크라테스 얘기도 해드릴게요. 저희 설거지팀 소속의 그리스 청년 이야기랍니다. 처음엔 설마 했지요. 살아있는 소크라테스를 만나다니요! 도대체 어떤 부모님이길래 저리도 멋진 이름을 아들에게 지어주셨을까요? 이십 대인 이 청년은 키가 크고 체격도 듬직하고 외모도 출중합니다. 다만 독일어가 부족한데, 침착하고 고요한 행동거지가 자기 이름에 잘 어울린답니다. 설거지 팀에 있는 터키 할아버지 레시트도 저를 언제나 걱정해 주십니다. 한 번은 이러시더군요. 신이 다 보고 알고 계신다. 모쪼록 잘 견디거라. 스트레스 받지 말고. 우리는 다 형제자매다.


어제와 오늘은 휴무입니다. 휴무날에 맞춰 비까지 오시네요. 발코니의 라벤더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이번 주부터 시누이 바바라가 저희 집에서 2주간 머문답니다. 집주인이 욕실을 레노베이션한대요. 건물에 엘리베이터 공사도 하고, 발코니도 확장하고, 욕실 공사도 끝나면 월세가 오른다고 걱정이 많습니다. 살인적인 월세는 뮌헨도 비껴가질 않네요. 다음 주에는 4일 휴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바라와 알리시아와 가까운 호수라도 다녀올까 봐요. 한국의 유월은 더웠던 기억밖에 없는데 올해는 어떤가요? 지금까지 제 삶에 좋은 사람은 차고 넘쳤습니다. 고마운 인생입니다.



시누이 바바라의 취미는 여행. 그녀가 읽고 있는 이태리 나폴리에 관한 책(아래/왼쪽) 1925년생 작가의 시대에도 좋은 사람은 찾기 어려웠던 모양이다(아래/오른쪽).



*제목은 플래너리 오코너 <좋은 사람은 찾기 힘들다 A GOOD MAN IS HARD TO FIND>에서 따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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