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을 시작한 건 글쓰기가 안 되어 고민이 컸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 편으로 버틴 지 꽤 되었다. 산책만이 답이다. 그래서 나섰다. 저녁마다 쿠션감이 살아있는 운동화를 신고서. 때로는 아이와 때로는 혼자.
로젠 가르텐 풍경
저녁 산책을 시작한 건 열흘 전부터다.뮌헨의 우리 집에서 이자르강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손바닥 만한 장미 정원, 로젠 가르텐이나온다. 이른 저녁을 먹고 15분쯤 걸어서 장미 정원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장미들을 들여다보다집으로걸어오는 한가로운 산책. 로젠 가르텐은 코로나와함께 문을 닫았다가 칠월 중순에야 빗장을 열었다. 정확히 언제 개방했는지는 모른다. 유월 초에 암담한 심정으로 돌아선 기억만이선명하게 남아 있다. 얼마 전 기대도 없이 갔다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문이 열리던 순간의놀라움이라니!
로젠 가르텐의 장미들
장미의계절이란 누가 뭐래도 오월 아니면 유월이겠다. 그럼에도 칠월의 장미에감동하는 이유는 장미 정원에서 만난 첫 장미라 그렇다. 로젠 가르텐의 장미는 세 부류로 나뉜다. 이미 졌거나, 아직 건재하거나, 새로 피거나. 꽃들의 세대교체는 저녁 일곱 시에서 여덟 시 사이 칠월의 햇살아래서도 계속되었다. 내 눈길이 머문 건 전성기가 막 지난 중년 꽃들의 자태. 꽃잎마저 떨군 채 담담히 서 있는 마른 꽃들의 고요함. 지난봄 우리가 지나온 폭풍 같은 싦에 대해 알 리 없는 어린 봉오리들의 싱그러움이야 말해 무엇하랴. 여름날 저녁 장미들이 시간과 공모해 만들어내는 향연은 경이로웠다.
로젠 가르텐의 장미들
장미들의 희비극이 펼쳐지는 무대 앞에서 카프카의 <변신> 한 구절을 펼친다고 예의에 어긋나지는 않겠지. 내일당장 내게도 그런 일이 생긴다면 뭐가 되지? 고민도 해가면서. 새? 나비? 잠자리? 그것도 아니면 물고기? 개미나 벌의인생은 사양하려 한다. 곤충인지 해충인지 등껍질 단단한, 그 누구도 가까이하려 않는 생명체로 변신하고도 새벽 다섯 시 기차를 놓칠까 봐 안절부절 못하는 존재의 가련함이여. 그 장면에서 책을 덮는다. 그레고르 잠자여, 카프카여. 나도 그 시간에 뮌헨 지하철 우반을 타러 간다. 카프카 대신 까뮈의 <이방인>을 들고 왔어야 했나. 뭐가 다른가, 카프카나 까뮈나.묵직하게 마음이 아파오기는 마찬가지.
로젠 가르텐의 장미들
산책을 시작한 건 글쓰기가안 되어 고민이 컸기 때문이다. 1주일에 한 편으로 버틴 지 꽤 되었다. 문제는 글만이 아니다. 요리도, 책읽기도 동력이 떨어지고있다. 오후에 퇴근하고집에 돌아오면 한 걸음도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않은날의 연속이다. 장도 보고, 남편과 아이와 자전거도 타고, 간혹 사람을 만날 일도 생기는데. 다행히 잠은 잘 잔다. 그러니 우울증은 아닐 거라 믿고싶은 마음. 이유는 모르지만, 답은 안다. 산책만이 답이다. 그래서 나섰다. 저녁마다 쿠션감이 살아있는 운동화를 신고서. 때로는 아이와 때로는 혼자. 자전거 타기도 버거운 내가 갑자기 암벽을 탈 수는 없어서. 누가 아는가. 장미 정원에서 글쓰기의 열정 혹은 즐거움을 비어 가는 글 주머니와 바닥이 드러나는 글 바구니에 가득 채워 돌아올 날이올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