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의 첫날인 지난 토요일. 그 무더운 날 저녁에 이자르 강변에 피크닉을 갔다가 벌레에게 물렸다. 다음날인 일요일 손등이 붓고 물린 자리에 염증이 생겼다. 뮌헨 중앙역 부근 응급병원으로 달려갔다.
뮌헨 중앙역 부근의 공원
독일에서 생애 첫 예방접종 주사를 맞았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그렇다. 나는 시골에서초등학교를 다녔고, 6학년 때 부산의 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시골에서 예방접종을 받은 기억은 딱 한번. 일명 공포의 불주사라 불렸다. 무슨 예방접종 인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단체로 맞았다.시골에는 병원도 보건소도 한의원도 없었다.고기만 먹어본 자가 잘 먹는 게 아니다. 병원도 다녀본 사람이 잘 간다. 나는 어른이 되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병원에 잘 못 가는 사람이 되었다.
독일은 집 근처에 가정의(혹은 주치의)가 있다. 독일어로는 하우스 아츠트 Hausarzt다. 우리나라의 내과 같은 분위기. 소아과, 치과, 안과, 산부인과 등은 별도다. 지난 2년 반 동안 내겐 이 가정의가 문제였다. 말하자면 길다. 나는 혈압약을 복용 중이다. 가족력과 마흔 넘어 출산한 노산이 문제였다. 싱가포르에서 시험관을 할 때 혈압이 높다는 걸 알았다. 훌륭한 의사를 만나 혈압도 관리하며 한 번에 성공했다. 아이는 한국에 와서 낳았다. 의사 복이 있는지 좋은 의사분을 만나 안전한 출산을 했다.
자연분만이 아니라서 그런지 출산 후에도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독일로 오기 전 혈압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안전이 제일이라는 가족들의 권유도 있었다. 평소 운동에 열심인 편도 아니고 아이도 어리니 안전망을 쳐두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독일에 와서 가정의를 정하고 첫해에 기본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가정의에게 혈압약 복용 사실도 알렸다. 현재 복용 중인 한국 약이 떨어지기 전에 자신에게 와서 새 약을 처방받기로 했다.독일에 온 첫해인 2018년 12월이었다.
뮌헨 중앙역 부근 공원 안의 비어가든
겨울의 늦은 오후였다. 대기실에서 1시간을 기다린 나는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 때문에 속이 타는 중이었다. 가정의 역시 심기가 불편한 날이었는지 있는 대로 짜증을 부렸다. 접수처 직원에게는 왜 멋대로 이 환자를 진료실로 배정했냐고. 나에게는 접수처에서 처방전을 받지 않고 왜 면담을 요청했냐고.첫 처방 때 당신이 오라고 했다는 내 말은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결론은 내 독일어가 부족해서라고 했다. 영어로 설명해도 변함이없었다. 그의 짜증의 원인은 모른다. 피곤해서? 배가 고파서? 나 때문에 퇴근이 늦어져서? 아니면 갱년기? 그로부터 1년 반 우리는 얼굴을 대면하지 않았다.
중년 남성인 내 주치의는 이름에 귀족 가문의 후예를 암시하는 폰 von이 들어있다. 이름만큼이나 거만했다. 주치의를 바꾸고 싶어도 마땅한 대안이 없었다. 안 가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던 중 울며 겨자 먹기로 최근에 주치의를 방문할 일이 생겼다.팔월의 첫날인 지난 토요일 저녁. 종일 무더위에 지친 나와 아이에게 남편은 이자르 강변에 피크닉을 가자고 노래를 불렀다. 빵과 치즈와 살라미. 삶은 옥수수에 버터와 소금을 뿌리고, 각종 과일과 야채를 썰어 담고서. 포테이토 칩도 한 봉지 챙기고. 저걸 다 먹고 오겠다고? 난리 북새통인 부엌과 설거지는 또 어쩌나.
그럼에도 피크닉을 따라갔다. 저녁 8시가 되어서야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바람도 불기 시작하고 하늘에는 먹구름까지. 그사이 강가에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자리를 펴고 앉았는데 따끔해서 보니 가운데 손가락과 넷째 손가락 사이에 작고 검은 벌레가 붙어있었다. 진드기인 줄 알고 놀라서 쳐내니 바늘구멍만 한 물린 자리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벌레의 몸통도 내 피로 붉었다. 다음 날 일요일 오후. 손등이 붓고 물린 자리에 염증이 생겼다. 늦은 오후 뮌헨 중앙역 부근 응급실로 가자 1시간 후에 예약을 잡아주었다. 남편과 근처 공원의 비어 가든에서 대기하다가 오후 5시에응급실로 갔다.
뮌헨 중앙역 부근 공원 안의 비어가든
60대 남성 의사는 불친절했다. 독일에서 내가 배운 건 오후 5시 이후에는 병원 진료를 피할 것. 내게 항생제 약물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예전 싱가포르 의사가 알려주었다. 알레르기명을 모른다고 하자 버럭 하는 응급실의 노의사. 다음에 올 땐 통역을 데리고 오란다. 통역을 데리고 온다고 잊어버린 알레르기 이름이 기억 나나? 의사도 나도 기분이 나빴다. 불신으로 시작한 치료는 부작용만 키웠다. 연고가 안 맞는지 손등은 계속 붓고 가려웠다. 항생제 때문인지 잠을 못 잤다. 다음날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는데.
응급실 의사가 잘한 것 한 가지는 5일간의 병가서를 써 준 것. 그 손으로 주방일은 안 돼! 그래도 출근을 해야 한다면? 경과를 보고 하루 이틀 일찍 출근하는 건 괜찮아. 내일 당장 가정의에게 가서 치료받고 상의해! 월요일 새벽 출근은 꼭 해야 했다. 보스에게도 보고하고, 주방엔 까칠한 귤헨과 첫 출근하는 새 직원과내가 한 조였기에. 그것 때문에 칠월 마지막 출근날 귤헨이 나에게 얼마나 히스테리를 부렸는지! 자기는 늦은 근무조라 출근이 늦고, 새벽에 출근하는 내가 새 직원을 가르치며 모든 업무를 쳐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녀 생각에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도 엄두가 안 났다.
월요일 새벽 여섯 시. 어쩐 일인지 귤헨은 새벽부터 나와있었다.밤새 손등은 터질 듯이 부풀어올랐다. 불룩한 게 두꺼비 등 같았다. 물린 자리도 심상치 않았다. 수포로 가득했다. 두 손가락 마디가 부어서 손끝을 오므릴 수도 없었다. 새벽마다 저기압인 귤헨에게 아침 인사를 하고 손등을 보여주었다. 진드기에게 물린 것 같다 하니 보스와 의논해 보란다. 급하면 장갑을 끼고라도 일을 하겠다는 내게 그제야 차가운 태도를 거두며 말했다. 일은 어떻게든 된다고.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고마운 마음에 눈물이 날 뻔했다. 보스는 이틀 후 경과가 좋으면 나오라 했다.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이번 주 내내 쉬고 있다. 병원에서 생애 첫 공식 예방주사도 맞았다. 예방접종 수첩과 함께.놀랍게도 가정의 클리닉에는 다른 여의사가 와 있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