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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여름날 벌레에 물렸다(2)

뮌헨의 가정의(혹은 주치의)

by 뮌헨의 마리
이자르 강변 산책길



내가 모기나 벌레물림에 과민성 알레르기 체질임을 안 것은 오래되지 않는다. 돌아보면 수도 없이 사례가 많았음에도 나는 튼튼한 시골 출신이라 스스로 건강한 줄 고 살아왔다. 독일에 온 첫해 여름. 야외 잔디공원에서 1주일에 한 번 하는 피트니스 운동을 신청했다벌레에 팔과 다리를 물린 적이 있다. 개미 같았다. 팔다리는 벌에 쏘인 것처럼 부어올랐고, 물린 자리에도 염증이 생겼다. 약국에도 가고 우리 정의가 아닌 피부과에도 들렀지만 아물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가정의는 안 가면서 독일에 와서 응급병원만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 응급실은 작년이었다. 시아버지가 쓰러지셨다. 고관절 수술로 입원하신 시어머니 대신 시아버지 병원에 매일 들렀다가 알바를 다녔다. 두 달 후 재활 클리닉을 거쳐 두 분이 집으로 귀가하시자 긴장이 풀린 나머지 방광염을 앓았다. 초기였는지 시누이 바바라가 약국에서 사 온 방광염 차를 마시고 나았다. 다만 내 몰골을 보고 큰 병이라도 난 줄 알고 놀란 바바라가 일요일에도 문 여는 응급병원이 있다며 동행해주겠다 했다. 궁금해서 따라갔다가 항생제를 먹고 병이 도질 뻔했다. 결론은 항생제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


두 번째는 올해 삼월 중순이었다. 요양원 주방에 출근한 지 사흘 만의 일이었다. 저녁에 설거지를 하다가 유리잔에 엄지와 검지 사이를 깊게 베였다. 응급실은 밤 9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갔다. 바야흐로 엄중한 시국이었다. 코로나로 외출금지령이 내린 지 사흘째. 동양인 여자가 밤에 응급병원에 출현하니 접수처 직원들이 혼비백산했다. 당시엔 병원에서조차 마스크를 쓴 사람이 없었다. 보호자인 남편은 출입 불가. 친절한 노의사를 만나 몇 바늘을 꿰맨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의사가 써 준 병가를 가방에 넣고 출근했다. 상처는 하룻밤 사이에도 제법 아물었고, 밴드를 붙이고 비닐장갑을 착용한 채 일했다. 초기라 정해진 업무가 없기에 가능했다.



한창 때를 지나고 있는 라벤더



각설하고, 이번에 세 번째로 응급실을 갔다가 다음날 정의를 만나러 갔다가 착하고 친절한 여의사 만난 얘기 해야겠다. 출근날인 월요일 아침에는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주말에 왜 그리 무더웠는지 알 것 같았다. 독일은 무더위가 무한정 지속되지 않는다. 며칠 덥다가 수그러들었다가 다시 덥다. 에어컨이 없어도 견딜 만한 이유다. 그날은 새벽 6시에 출근했다가 퇴근했다. 전날 잠을 못 잤는데도 피곤하지 않았다. 싫어하는 정의를 만나야 한다는 부담 때문이었다. 오전 11시에 집을 나섰다. 크리닉은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예약을 못했더니 한참을 기다렸다.


남자 정의 대신 앞에 나타난 여의사는 젊고 친절했다. 시간은 점심시간인 12시를 넘고 있었다. 진료실이 다른 걸로 보아 의사가 두 명으로 늘어난 것 같았다. 그녀는 차분하게 내 말을 고 질문하고 답했다. 시간에 쫓기는 기색도 없었다. 열나고 가려운 데 도움이 될 거라며 거즈를 차가운 소독액에 담갔다가 손등에 얹고 붕대로 감아주기도 했다. 도움 정도가 아니라 다 나은 기분이었다. 진드기가 아닐까 걱정하는 내게 모니터를 돌려 사진을 보여주었다. 진드기를 닮은 모기 종류라 했다. 진드기는 반드시 핀셋으로 빼내야 한다고. 그 생소한 모기의 이름은 크리벨 뮉케. Kriebelmücke. 한국어로는 동물 파리매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졌다. (뮉케 Mücke 독일어로 모기를 뜻한다.)



어느 골목집 담벼락에서 익어가는 과일



심성 고운 사람 앞에서는 외국어도 잘 나왔다. 내 손이 붓는 게 항생제 알레르기 때문이 아닌가 물으니 다른 소견을 말했다. 근본적으로 내가 벌레 물림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알레르기 체질 같다고. 맞다! 지난주에도 아이와 레겐스부르크에 계시는 남편의 새어머니를 따라 어느 정원에 놀러 갔다가 오래된 사과나무 아래에서 무차별 모기떼의 공격을 받았다. 팔다리의 물린 자리가 금세 풍선처럼 부어올랐다. 새로 만난 여자 정의는 다음날에도 차가운 거즈로 쿨링을 한 후 청결한 붕대로 감아주었다. 이틀 진료받고 이틀을 쉬어주니 붓기와 가려움증이 다 나았다.


그녀가 처방해준 약과 연고는 항알레르기성 치료제였다. 물약과 알약과 연고 모두 순하고 부작용이 없었다. 가장 큰 소득은 예방접종. 예방접종을 성인도 맞는 줄은 몰랐다. 다음번에 올 때 예방접종 수첩을 가지고 오라길래 없다고 하니 잠시 놀라는 눈치였다. 의사가 내게 추천한 것은 백일해/디프테리아/파상풍 삼종 세트. 접종 하나로 세 개를 커버할 수 있었다. 염증을 막기 위해서인 듯했다. 진드기 예방접종도 권하길래 그 자리에서 바로 맞았다! 망설일 게 뭐 있나. 이런 가정의를 어디서 또 만난다고. 수포는 터뜨리지 않기로 했다. 또 다른 감염으로 번질 수도 있어서. 싫어했던 정의 만나러 갔다가 수호천사를 만난 기분이었다.


가을에는 남편과 아이도 진드기 예방접종을 맞을 생각이다. 접종은 세 차례로 진행되는데 2차는 한 달 후에, 3차는 5년 후다. 올해는 온 가족이 독감 인플루엔자 예방접종도 맞을 생각이다. 나름 적극적인 코로나 2차 대응책인 셈. 독감을 제외한 성인을 위한 예방접종에는 뭐가 있을까. 폐렴과 뇌수막염을 일으키는 폐렴구균. 1회 접종만으로도 효과가 있다. 그 외에도 대상포진이 있는데, 60세 이후 접종을 권한다. 예방접종 없이도 무사히 지나온 세월이 감사하다. 언젠가는 코로나도 예방접종으로 대처할 날이 오겠지. 꼭 그랬으면 좋겠다.



이자르 강변 산책로



P.S. 가정의를 방문하고 다음날 주방에 전화를 했다. 붓기는 가라앉고 있으니 셋째 날부터 출근할까 물으니 대체 인력 구했음. 맘 편히 쉬기로 했다. 나는 일 복이 없는 사람!


참고로, 우리 주치의 리닉 근무시간은 다음과 같다.

독일은 화요일 진료 시간이 가장 길다. 놀랍게도 저녁 8시까지. 다른 관공서들도 비슷함. 점심시간도 놀랍다!


월/목 오전 8시-12시. 오후 3시-오후 6시.

화 오전 8시-12시. 오후 3시-저녁 8시.

/금 오전 8시-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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