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운전을 놓았더니 자신감이 없어지는 게 문제였다. 한국에는 없는 트람, 사방에서 달리는 자전거, 이러다 영영 운전대를 못 잡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독일의 두 분 시어머니가 연로해 지시는 것도 결심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뮌헨 시내
독일에서 운전 면허증을 발급받은 건 2004년도 가을이었다. 지금도 그럴 것 같은데, 도로 주행 같은 조건 없이 한국 면허증을 바로 독일 면허증으로 바꿔주었다. 당시에도 한국의 위상이 그랬다! 독일 살이 3년 차에어울리지 않는 허술한 정신 상태로 증명사진이 없다고 사진을 잘라서 들고 갔다. 그걸 또 받아주는 관청은 뭔가. 지금은 안 통하겠지. 면허증 발급에 조건이 붙긴 했다. 교정시력이안 나와서 운전 시 반드시 안경을 쓸 것.그러니 안경을 들고 오라 해서 비싼 안경을 맞춰가자독일 운전 면허증을 발급해 주었다. (그때 그 안경을 20년이 다 되도록 아직도 쓰고 있다.)
독일에서 운전을 하기로 마음먹은 건 올여름 구직 활동을 할 때였다.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니 운전면허 소지 여부를 묻는 곳이 많았다. 그쪽으로 구직할 생각은 없지만, 이 기회에 운전을 시작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뭐든 새로 시작하려면 자기 자신을 설득할 동기가 필요하다. 배운 걸 익혀두면 언젠가 쓸 일이 생기는이치를 말해 무엇하랴. 반대도 성립한다. 준비를 안 해 두면 후회할날도온다. 너무 오래 운전을 놓았더니 자신감이 없어지는 것도 문제였다. 한국에는 없는 트람, 사방에서 달려오는 자전거, 이러다 영영 운전을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 결정적으로 독일의 두 분 시어머니가 해마다 연로해 가시는것도 결심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다.
뮌헨 시내
주말에 시어머니 카타리나를 방문하러 슈탄베르크로 가는 길을 스타트로 삼았다. 왕복 운전을 내가 하겠다고 하자 남편이 순순히 차 키를 내주었다.남편은 옆, 아이는 뒷좌석. 남편이야 내 운전 실력과 습관과 패턴까지 소상히 알고 있으니 옆에앉아만 있어도 든든했다. 독일에서 운전 경험이 없다고 내 운전을 불안해하는 시누이 바바라가 동행하지 않은 것은 서로에게 다행이었다. 그러니까 연습이 필요한 거지! 뮌헨 시내의 우리 집에서 슈탄베르크 어머니 댁까지는 고속도로 포함 29킬로. 차로는 30분 거리였다. 작년에도어머니댁을 다녀오는 길에 내가 우겨서 운전대를 잡은적이 있다.내 뒷좌석에서 불안에 떠는 바바라를 보자오기가 생겼다. 시내 주행부터 연습하라 이거지. 서울에서 할 연습은 다 했다는데도 그러네. 그런 그녀의 운전 경력도 7년 차.
독일로 올 때 한국에서 가져온 내 차도 수리를 맡겼다. 올여름에 바바라 차가 고장이 난 적이 있어서다. 한국에서 올 때 내 차를 싣고 온다고 할 때제일 반대한 사람도 바바라. 뮌헨에서는 차 쓸 일이 없다고. 자기 차 하나면 충분하다고. 내가 뭐 한다고 하기만 하면 난리를 친다. 자기 차도 아니고 내 차를 내가 가져온다는데?내 차에 안 태워줄까 보다. 바바라가 타던 차는 수년 전 우리가 새어머니한테 사서 바바라에게 준 차였다. 시아버지가 타시던 차라 보험료도 싸고, 중고로 팔기엔 제 값을 받기 힘들다고 판단하신 새어머니가 우리에게 구매를 제안하셨다. 지금도 기억나는 차값은 하나도 착하지 않았다. 15년이나 된 친아버지 차를 그래도 아들인 우리 남편에게 파신 것도 놀라운데 그 사실을 기억도 못하셨다. 최근에내가 팩트까지 언급해 드렸건만. 이젠 내가 잊을 차례다.
바바라는 나이 오십에 운전을 시작했다. 나이 사십에 담배를 끊더니 오십에 운전이라니. 오십까지 싱글이었으니 싱글로 계속 살아갈 확률을 절반이라고 봐도 운전은 필수. 살아갈 날을 생각하면 늦은 나이가 아니다. 독일에서는 7080 노인분들도 현역으로 운전하신다. 그녀의 선택을 가장 열렬히 지지한 사람은 나였다. 육십에는 결혼 선언까지 하는 거 아니냐고 농담도 던지면서. 처음에는 차가 없으니 공유 차로 시작했다. 남편이 아버지 차를 누나에게 주었다. 오래된 차라 운전 연습하기 좋을 거라며. 그때 우리는 한국에 있어서 그 차가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의 내 차도 바바라 차도 똑같은 폭스바겐 골프였다. 애 낳고 첫 운전을 할 때 남편이 독일 차를 권했다. 독일로 올 때는 비싼 보험료와 사고 시 비싼 수리비때문에 누구에게 선뜻 주기도 어려웠다.
뮌헨의 트람(위)과 버스(아래).
내가 운전을 하고 왔다는 것을 아신 두 분이 무척 놀라신 눈치셨다. 가끔 시부모님들을 놀라게 만드는 것도 괜찮다. 내 목표는 남편이 바쁠 때 아이와 둘이 자유롭게 두 분을 찾아뵙는 것. 그날 방문은 갑자기 이루어졌다. 아침에 어머니가 남편에게 호출을 하셨다. 인터넷 뱅킹이 안 되니 아이패드를 좀 봐줄 수 있겠냐고. 오후에 들러 커피와 쿠헨을 먹고, 남편이 아이패드를살피는 동안 나는 시아버지의 손톱을 깎아드렸다. 아이가 할머니와 보드 게임을 할 때 옆에서 할아버지가 훈수를 두시던늦은 일요일 오후. 저녁은 먹지 않고 돌아왔다. 나는 운전 때문에 늦기 전에 출발하는 게 좋고, 남편은 저녁 시간이 절약되니 집에서 일을 할 수 있어 좋고, 어머니도 힘들지 않으시니 좋았다. 어머니가 치즈와 살라미, 아이의 용돈까지 챙겨주셨다. 이런 게 윈윈.
오랜 세월 시댁을 방문했는데 내가 직접 운전하지 않을 때는 터널을 몇 개 지나는지 어디서 고속도로로 접어드는지도 몰랐다. 이번에 놀란 건 고속도로로 빠지는 신호등 앞이 내가 5개월간 일했던 요양원 건물 맞은편 사거리더라는 것. 독일의 고속도로 아우토반은 도시 진입로와 공사 구간만 아니면 속도 제한이 없다. 나처럼 안전하게 운전하기를 바라는 운전자는 반드시 맨 오른쪽 차선을 이용해야 한다. 추월은 왼쪽 차선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3차선의 경우, 1차선은 앞차 추월용. 추월한 후에는 다시 원래 차선으로 돌아와서 1차선을 항상 비워야 한다. 쭉 가면 위반. 1차선 차가 2차선보다 느리면 안 되고, 2차선 차가 3차선보다 느려도 안 된다. 오른쪽 왼쪽으로 종횡무진 추월은 독일 아우토반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시내 운전 때는 트람이 걱정이었는데 남편 왈, 긴 버스라고 생각하란다. 특별히 고민할 필요가 없다나. 한국에서 온 내게 관건은 트람과 함께 자전거다. 어찌나 빠르고 많은지. 자전거 도로가따로 있을 때는 괜찮지만 차로를 같이 달릴 때가 문제다. 놀라운 건 차 만큼 빨리 달리면서 한쪽 팔로 좌회전 우회전 수신호도 완벽하게 날린다. 이 역시 익숙해지는 것 말고 도리가 없겠다. 뮌헨도 주차 공간이 부족하긴 마찬가지. 도로에 주차할 땐주변의 주차 티켓 발매기에서 영수증을 뽑아 운전석 앞쪽에 놓아두어야 한다. 우리 동네를 보면 시간당 1유로. 1일 최대 금액은 6유로(월-토). 재미있는 건 12분당 20센트. 저런 치밀함에서 독일을 느낀다.1차 목표인 시댁 방문이 완료되면 2차 목표는 어디까지 확장될까. 나 역시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