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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은 왜 평온한가

코로나에도 학교는 간다

by 뮌헨의 마리


9월 현재 독일의 확진자는 매일 1,000명을 넘는다. 그럼에도 일상은 평온하다. 이 무심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님 둔한가?


원래도 한산하지만 코로나로 더욱 조용한 독일의 거리.



독일은 평온하다. 3월 중순 셧다운 이후 반년이 가까워온다. 6월 중순부터 가게들은 문을 열기 시작했고, 초창기 반발이 심했던 마스크 착용도 일상이 되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와 마트/병원/레스토랑 등 가게를 방문할 때만 필수고, 야외나 거리에서는 대다수가 마스크를 안 쓰는 분위기도 그대로다. 거리에서 마스크를 모범적으로 쓰는 건 주로 노인들. 9월 현재 독일의 확진자는 매일 1,000명을 넘는다. 그럼에도 일상은 평온하다. 무심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아님 둔할 뿐?


유럽의 코로나 재확산은 휴가철인 8월부터 본격화되었다. 9월 첫째 주 주말인 현재 매일 확진자 수는 스페인이 1만 명, 프랑스가 8천 명에 육박하고 있다. 영국, 이태리, 터키 등이 독일과 마찬가지로 1천 명 대를 유지. 스위스, 오스트리아, 포르투갈이 200~300명 대, 스웨덴이 100명 대를 기록하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봄과 같은 패닉은 없다. 베를린에서 마스크 반대 집회는 있었다. 독일 정부는 거리두기를 조건으로 허용했다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권력을 투입해 해산시켰다.



코로나 시절의 불편함은 함부로 사진 찍기도 눈치가 보인다는 것.



잘은 모르겠지만 독일의 인구 밀도가 한국만큼 높지 않다는 것이 불안이 덜한 이유가 될지도 모르겠다. 뮌헨만 해도 남독일 최대 도시임에도 인구는 130만. 인구로만 보면 한국의 소도시 수준이다. 한국에서 온 나는 어딜 가도 붐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예외라면 코로나 전에는 관광객이 많았던 뮌헨의 쇼핑 거리나 야외 상설 빅투알리엔 마켓, 옥토버 페스트 정도가 다였다. 코로나 이후에는 늦은 밤 파티로 떠들썩했던 시내 공원이나 셧다운 해제 이후 청소년과 청년들이 몰려나왔던 이자르 강변 정도.


한국보다 각종 모임이나 동호회가 적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다. (독일에도 스포츠 동호회는 많다. 대신 2차 회식이나 술자리 같은 모임이 우리보다 적은 편이다.) 가족도 부모와 어린이 혹은 청소년 자녀만 해당, 조부모는 가족의 범주에 들지 않는다. 가족 행사가 적고, 결혼식이나 장례식이 아닌 한 친인척이 모이는 경우도 드물다. 한국에서 흔했던 결혼식과 장례식을 주변에서 1년에 한 번도 듣기 힘들다. 동창회나 사내 회식, 취미 동호회가 아예 없거나 적고, sns 역시 한국만큼 활발하지 않다. 아직도 이메일이 대세인 나라가 독일이다.


음식 문화만 봐도 그렇다. 기본이 빵 아닌가. 다양한 빵에 다양한 치즈와 살라미를 끼우면 끝. 밥상을 차리고 어쩌고 할 것도 없다. 찌개나 탕류나 반찬 개념이 없으니 수저를 같이 댈 일도 없다. 가족이라도 레스토랑에서 각자 1인분씩 시켜 먹는다. 셋이 가서 각자 시킨 메뉴를 먹다가 접시를 돌리는 것은 우리 가족만의 일이다. 간혹 아이들이 먹다 남긴 파스타나 독일 돈가스 슈니츨을 아빠들이 먹는 풍경은 볼 수 있다. 일상 속 거리두기가 개인주의 문화의 바탕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독일의 9월은 가을이 물씬.



8월 20일 경 뮌헨 시청사 앞 후겐두벨 서점에 갔다가 변화가 느껴졌다. 셧다운 이후 5개월 동안 서점 안 북카페는 문을 닫았고, 소파나 독서용 테이블은 테이프를 둘러 사용을 못하게 했다. 그런데 그 장막들이 모두 걷힌 것. 어찌나 반갑던지! 레스토랑들도 코로나 이전에는 가게 앞 인도에만 테이블과 의자를 놓을 수 있었다. 코로나 이후에는 거리두기로 줄어든 좌석 수를 확보하려는 레스토랑의 노력과 시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가게 앞 도로까지 노천 레스토랑과 카페가 진출했다. 주차용으로 사용하던 크고 작은 골목길에 목조 데크로 임시 테이블이 설치된 것.


9월은 바이에른주의 개학이 있는 달이다. 독일 내에서 여름방학이 가장 늦게 시작하고 개학도 늦은 바이에른주는 다음 주인 9월 둘째 주 화요일에 일제히 개학을 한다. 개학 후에는 마스크를 쓰고 등교하는 것은 물론, 수업 시에도 계속 써야 하는 게 방학 전과 다른 점이다. 방학 전에는 교실 내에서는 마스크를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는 벌써 준비물을 챙겨놓고 개학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아이에게도 김나지움 등교는 새 출발이다. 새 학교, 새 친구, 새 선생님, 새 출발이 어찌 설레지 않겠는가. 학교가 문을 닫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저녁 7시 무렵이면 빛나는 석양빛.



돌아보면 지금까지 일상이나 직장에서 코로나로 인한 차별은 겪지 않았다. 단 한번 버스에서 아이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마스크를 벗었다가 독일 할머니에게 혼난 적은 있다. '이런, 중국 여자 같으니!' 운운하며 매섭게 노려보며 혀를 차던 할머니와 나는 같은 정류소에서 내려 엇갈려 지나갔다. 나의 잘못이니 변명할 이유도 없었다. 죄송하다고 고개만 숙일 뿐.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에서 트레킹을 때는 사정이 좀 달랐다. 우호적이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코로나를 피해 간 알프스 산에서 아시아 여자를 만났으니.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9월 1일자로 새 일자리를 구했다. 이야기가 길어서 상세한 설명은 다음으로 미뤄야겠다. 근무지는 대형 마트 안. 마트 직원은 아니지만. 코로나 재유행이 세계적 이슈가 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발걸음을 멈출 수는 다. 그게 삶이라서. 마스크는 꼭 쓴다. 손도 자주 씻고, 잠도 잘 잔다. 우리가 할 일은 불안에 잠식되지 않기. 방심도 자만도 금물이지만 공포에 떠는 것도 정신을 해칠 테니까. 그건 그렇고, 요즘은 아침에 눈만 뜨면 한국의 코로나 현황을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되었다. 사흘째 한국의 확진자 수가 100명 대를 유지하고 있어 안심. 보라, 떠난다고 떠난 게 아니다.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이 마음이라니!



저 길을 걸어서 출퇴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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