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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에도 삶은 계속된다

독일 초등학교는 격일로 등교 중

by 뮌헨의 마리


모든 것은 변한다. 시간과 함께. 사람도 변한다. 당신도 나도. 그럼에도 변치 않는 한 가지.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가야 한다. 코로나보다 더한 것이 온다 해도.


카페 이탈리 왼쪽 끝은 빅투알리엔 마켓(왼쪽) 오른쪽 끝 빨간 지붕은 아이의 학교(오른쪽)



6월부터 독일 초등 4학년인 아이는 격일로 학교에 간다. 같은 반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하루씩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학년별 등교 시간도 다르다. 15분 단위를 즐겨 는 독일답게 1, 3학년은 아침 7시 45분. 2, 4학년은 아침 8시 15분이다. 4학년은 주로 세 과목만 수업한다. 독일어, 수학, 사회과학. 체육 수업은 없고, 기타 과목은 주 1회. 인문계인 김나지움과 실업계 레알 술레로 가는 중등과정 입시가 끝난 4학년은 속 편하고 즐겁다. 남은 과제는 발표 수업. 이런 수업도 김나지움 준비에 포함된다. 주제는 중세 시대의 삶.


학생들은 등교 마스크를 쓴다. 교실 안에서는 벗을 수 있는 모양이다. 화장실을 오가거나 복도로 나오거나 교실을 벗어날 때만 마스크를 착용한다. 반 학생수 절반인 열두 명이 거리를 띄우고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 수업은 오전 4시간. 12시 전에 끝난다. 급식 없음. 지난주는 화/목. 이번 주는 월/수/금에 등교를 한다. 학교를 안 가는 날엔 숙제가 많다. 아이는 첫날에 1주일치 숙제를 몽땅 해치우는 눈치다. 나머지 날엔 책도 읽고, 율리아나랑 카타리나 집에 가서 놀거나 파파랑 자전거를 타러 간다.


다른 아이들은 모르겠는데, 우리 아이는 하루 걸러 노는 이 등교 루틴이 꽤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나라도 나쁘지 않을 거 같다. 나도 근무 일수 적은 달을 좋아한다. 나는 짝수 달엔 20일, 홀수달엔 16일을 일한다. 많이 일한 달은 더 받고, 적게 일한 달은 덜 받는다. 요양원 정규 직원이 아니라 임시직이기 때문이다. 요양원에서도 근무 때는 마스크를 계속 다. 동료들은 힘들어한다. 호흡이 불편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나이 많은 동료 귤헨은 두통약까지 먹는 것을 보았다. 본인 말로는 마스크 때문이라고. 나 때문은 아니고.



카페 이탈리 입구



요양원 주방에 근무한 지도 석 달이 지났다. 이번 주말이면 100일이 된다. 왜 힘들어도 100일은 견뎌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시간은 모든 것을 바꾼다. 시간과 함께 모두가 변했다. 지난 세 달 동안 주방에서 극강 스트레스를 받았다. 주연은 귤헨. 조연은 나. 그녀 역시 스트레스가 있었겠지. 한쪽만 받는 스트레스도 있겠지만 이 분도 나 때문에 괴롭다고 번 밝힌 적이 있으니 나만 힘든 건 아니었을 것이다. 느리고 일을 못한다는 그녀의 평가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대놓고 토를 달 군번도 못된다.


귤헨과 나는 군대로 치면 이등병의 작대기와 장군의 별 정도 차이다. 우리 요양원 주방 경력만 30년. 이제 겨우 3개월 차인 내가 명함을 내밀 수준이 아니다. 그녀는 성격도 군대 스타일. 남자 형제들과 자라서 그렇다고. 슬하에도 아들만 하나. 애초에 다정하고 부드러운 분위기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녀와는 2주 만에 같은 조로 만났다. 귤헨이 6월 초에 2주간 휴가를 받았기 때문. 그녀가 없는 사이 일을 몸에 히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더니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다.


뜻밖의 지원군도 있었다. 귤헨과 다시 근무하는 첫날. 젊은 크로아티아 여성이 하루 시범일을 왔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나. 오호라, 뉴페이스 앞에서는 누구나 친절해지는 법! 나한테도 그랬으니까. 예감은 맞았다. 마리나가 옆에 있다는 것도 깜빡하고 번 버럭 하기도 하셨으나 대체로 양호하심. 우리 주방은 3월과 4월에 신규 두 명이 나간 후 한 명만 충원되었다. 마리나는 다시 오려나? 주방 일이 처음이라 일이 복잡하고, 모두가 좋은 사람은 아닌 것 같다며 안 왔다. 첫 만남에 굴헨의 호구 조사가 심하긴 했다. 나이, 결혼 여부, 자녀 수까지야 그렇다 쳐도 어디 사는지 주소까지 꼬치꼬치 캐물었으니까. 그 동네 자기도 잘 안다면서. 마리나의 반응은? 왜 그런 것까지 물으세요? 마리나 승!



부드럽고 부드럽고 부드러운, 카페 이탈리의 카푸치노. 사진도 찍기 전에 한 모금!



귤헨은 주중 이틀을 같이 일하고 다시 휴무. 주말에 나와 다시 만났다. 놀라운 일은 밤잠을 설쳐가며 떨었던 그녀와의 근무가 견딜만했다는 것. 그녀의 말과 행동에 더 이상 상처를 받지도 않았다. 눈물은 무슨! 예전의 나라면 어림도 없을 텐데 웃는 낯으로 차분히 응대까지 했다. 떨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말이다. 마스크까지 쓰고 웃는지 안 웃는지 어떻게 아냐고? 그런 건 숨겨지지 않는다. 웃는얼굴만이 아니라서. 눈도, 몸도, 마음도, 공기까지 같이 진동하기 때문이다. 어느 날 퇴근하는 내게 그녀가 말했다. 네가 일을 못한다는 말이 아니다. 너는 자신감이 없다는 게 문제다. 스스로를 믿는 것, 너에게 필요한 건 그뿐이다. 그리고 무탈하게 그녀와의 근무를 마쳤다.


독일에 와서 세 번째 봄을 맞았다. 두 번은 화창하고 세 번째인 올해는 6월에도 장마처럼 하루 걸러 비가 내렸다. 독일은 여름 장마도, 태풍도, 지진도 없는데. 기온이 20도를 밑돌았고, 외출할 때는 여전히 쟈켓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시간은 흐르고 흘러 이번 주부터 평년 기온을 회복할 예정이다. 매일 해가 나고, 기온은 21도에서 주말에는 29도까지 오른다고. 지난주는 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꼬박 7일을 일했다. 어제는 퇴근하자마자 쌓인 피로에 긴장까지 풀려 바로 뻗었다. 뜨거운 미역국에 밥과 김치를 먹고 나서.


오늘은 휴무날. 아이는 절친 율리아나와 학교에 가고, 남편은 집에서 재택근무 중. 나는 오랜만에 카페 이탈리로 왔다. 시내에 있는 아이 학교와 빅투알리엔 마켓 사이. 얼마 만인지! 내가 좋아하던 창가의 긴 벤치 의자도 치워진 지 오래. 넓은 카페 안에는 간격을 두고 딱 열 개의 테이블만 남았다. 그것도 2인용으로. 창밖에는 4인용. 전에는 카페 출입 시 이름과 연락처를 적기도 했는데 오늘은 안 했다. 매일 이곳으로 출근하던 날이 있었다. 그때로부터 얼마나 멀리 온 것인지. 아이가 초등 2학년이던 첫 해, 매일 아이를 학교까지 데려다주고 아침마다 이 카페로 왔다. 그때 나처럼 아이를 등교시키고 오후에 같이 픽업하던, 가끔은 옆 자리에서 커피를 마시곤 하던 학부모들은 어디로 갔을까. 모든 것은 변한다. 시간과 함께. 사람도 변한다. 당신도 나도. 그럼에도 변치 않는 한 가지. 우리는 살아간다. 살아가야 한다. 코로나보다 더한 것이 온다 해도.



오늘은 창가에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때로는 멀리서 보아야 잘 보이는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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