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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의 요리

나의 영원한 숙제

by 뮌헨의 마리


아침을 먹고 부엌에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한다. 따뜻한 차 한 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책 한 권. 주말이면 쥐트도이체 차이퉁. 인생에 뭐가 더 필요한가.


요리의 '요'자도 모르던 내가 직접 밀가루 반죽을 치대 만든 100% 수제 수제비!(당근을 빼 먹은 대신 하얀 슈파겔을 넣었다!)



나는 요리를 못한다. 못하는 게 자랑이라는 건 아니다. 자랑은 무슨. 결혼 이후 계속 키워온 콤플렉스다. 아이가 없을 땐 그나마 괜찮았다. 한국에서 아이를 낳고 살 때도 어찌어찌 해결이 되었다. 문제는 독일에 와서부터다. 요리는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마음대로 외식을 할 수가 있나. 비싸니까. 배달은 언감생심. 2년 전 뮌헨에 왔을 때 아이는 초등 2학년. 학교는 12시 30분에 마쳤다. 학교 급식도 유료. 오후 4시까지 방과 후 수업도 유료였다.


그해 독일에서 남편의 사업도 첫 발을 뗐다. 1인 사업장이란 게 그렇다. 남편은 주말도 없이 주 세븐 데이로 일했다. 뮌헨에서 정착이 순조로울지 어떨지는 향후 3년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비싼 월세를 내고도 먹고살 만큼 벌어주는 남편이 고마울 뿐. 한몫 돕겠다고 그해 가을 아이가 3학년이 될 때까지 반년 넘게 아이와 집에서 지냈다. 문제는 점심과 저녁 준비. 뭘 먹이나. 아무리 파스타를 좋아한다고 매일 할 수는 없잖나. 이틀만 먹어도 질린다. 다양성이 문제였다.


2년 전을 소환하는 이유는 코로나 시절을 지나면서 같은 문제가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은 내가 대범해졌다는 거다. 요리에 대한 애정의 강도는 여전히 미적지근하다. 책 정리를 하며 가장 먼저 손대는 게 요리책이라면 말 다했다. 내가 아는 지인은 요리를 너무 좋아해서 방 하나에 사방이 요리책으로 가득하던데. 사람이든 요리든 좋아야 관심이 생기고 연구도 하는 법. 죽어도 관심이 안 생길 땐? 경험상 무조건 만만하게 대해야 한다. 두려워하면 평생 주눅이 테니까. 내가 그랬다. 알고 보니 문제는 자신감이었다.



마른 토마토와 파슬리로 만든 파스타(위) 심심하면 등장하는 효자 메뉴 미트소스 스파게티(아래).



얼마 전 브런치 글을 읽다가 만능간장을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맛있게 해 드립니다-만능간장' (by 이현희 님). 갑자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저건 나도 어릴 때부터 먹던 건데. 집 앞 텃밭에서 잘라온 부추와 상추와 오이와 고추와 호박과 가지.. 세상의 모든 겉절이와 나물을 넣고 쓱쓱 비벼먹던 그 맛. 때론 된장에 때론 양념간장에. 뭐든 비벼먹으면 맛있던 파 송송 양념간장. 국수에 수제비에도 비벼 먹던. 그때 든 생각. 요리, 별 거 아니네!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나도 해봤다.


수제비가 먹고 싶어서 아이와 밀가루를 반죽했다. 멸치와 다시다로 육수를 내고 양파, 주키니, 버섯 그리고 독일의 봄철 야채인 슈파겔 Spagel을 듬뿍 썰어 넣었다. 슈파겔은 흰 것과 초록이 있는데 흰 것은 껍질을 벗겨야 한다. 봄에는 거의 모든 요리에 슈파겔이 들어간다. 맛? 글쎄 심심하달까. 신기한 건 자꾸 먹다 보면 정직한 맛에 반한다는 것. 다음은 가끔 먹는 칼국수편. 닭다리를 압력솥에 푹 고아서 육수를 내고 칼국수를 끓여 넣고 뽀얀 국물에 슈파겔도 넣었다. 최고였다! (정신없이 먹느라 칼국수 사진은 못 찍음..) 만능간장도 필요 없었다. 껍질을 깐 흰 슈파겔을 반 값(4유로)에 팔기에 무조건 사 왔는데 결과는 성공! 자신감이 수직 상승했다.


남은 닭다리는 어떻게 했냐고? 남편이 좋아하는 닭볶음을 해봤다. 감자 넣고 양파랑 파도 넣고. 반응은? 만족할 만큼 좋았다. 그때부터 시작했다. 도전, 고기 요리! 그전에는 닭죽과 삼겹살과 수육만 가끔 했다. 내친김에 목살도 사고 깍둑 썬 굴라쉬 수프용 소고기도 샀다. 얇게 썰어 야채 넣고 간장과 굴소스와 집에 있던 소갈비 양념 등도 조금 넣었다. 그렇게 하고도 맛이 안 날 리가 없다. 손맛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우리 음식이 별 거 있나. 간장, 마늘, 참기름, 깨소금, 고춧가루, 매실엑기스 정도면 기본 맛은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넣는 건 비슷한데 뭘 해도 맛있다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



야채 듬뿍 닭죽과 볶은 김치(위) 얇게 썬 목살 혹은 소고기에 야채 볶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비빔밥(아래).(저 야채들 아래 고슬고슬 쌀밥이 깔려 있다!)



내친김에 올해 첫 김치도 담갔다. 실패. 절임 과정에서 제대로 절여지지 않아 배추가 뻣뻣했다. 고춧가루도 안 받쳐줬다. 맵기만 하고 색깔도 어두웠다. 사놓은 젓갈이 없어서 아시아 마켓에서 샀던 피시 소스를 넣었는데 역부족.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잘 버무려서 발코니에 며칠 두었더니 적당히 익었다. 김치란 게 그렇다. 시간이 해결해준다. 코로나도 그렇고 우리 인생도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도 나름대로 익어가더라. 익으면 또 맛이 나고. 때깔은 안 나지만 뭐 어떤가. 볶아서도 먹고 찌개로도 잘 먹고 있다.


그럼에도 고백하자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은 휴무날 먹는 아침 빵이다. 나는 빵을 사랑하는가 보다. 단언컨대 이 정도면 독일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독일잼 마멜라데는 먹는 양과 횟수를 대폭 줄였다. 설탕 중독은 좋을 게 없으니까. 아침에 마시는 커피 한 잔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이다. 잠을 못 잘까 염려되어 마시지는 못한다. 아침을 먹고 남편과 아이가 부엌을 나가고 혼자 있는 시간도 사랑한다. 설거지는 나중으로 미루고. 따뜻한 차 한 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 책 한 권. 주말이면 도착하는 쥐트도이체 차이퉁. 인생에 뭐가 더 필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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