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장마와 수재와 폭염에 이어 태풍까지 불어닥친 쉽지 않은 여름입니다. 심상치 않은 코로나 재확산을 앞두고, 모두가 무사하시고 무탈하시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오스트리아 티롤의 산 풍경. 아래 사진 한가운데 흰 점이 산장.
그리운 샘.
주말에는 오스트리아 티롤주의 할덴 호수인 할덴제 Haldensee 부근에 다녀왔답니다. 티롤에서 휴가 중이신 시어머니와 양아버지를 방문하기 위해서요. 뮌헨에서는 차로 2시간. 로맨틱 가도라 불리는 퓌센을 지나서 독일 국경과도 멀지 않은 곳입니다. 티롤은 알프스 산악 지대를 말하지요. 오스트리아 서쪽의 티롤주와 남티롤인 북부 이태리가 여기에 해당합니다. 아름다운 호수들과, 여름엔 트래킹, 겨울에는 스키로 유명하지요.
베를린 출신이신 양아버지는 1938년에당신의 부모님과 지금의 호텔에 묵으신 적이 있대요. 무려 60년 전 일입니다. 저희 시어머니와는 40년 전에 오셨고요. 그때와 달리 지금은 휠체어에 앉아 계신 모습이 세월을 말해줍니다. 양아버지가 생전에 다시 오실 날이 있을까요. 여든의 시어머니가직접 운전해서 이곳에 오신 이유이자 양아버지께 드리는 어머니의 마음의 선물이겠지요. 언제나 다정하신 두 분 모습을보다가 최근 셰익스피어 관련 기사에서 읽은 소네트 한 구절이 떠오릅니다. '내 당신을 여름날에 비할까!'
양아버지의 하루는 댁에서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휠체어로 움직이셔야 해서 차가 아니면 호숫가로 가시기 어려웠지요. 그것은 어머니께도 쉬운 일이 아니고요. 호텔 안의 수영장은 어머니를 위한 장소입니다. 이번 휴가는 어머니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어요. 아침과 점심은 두 분이, 오후의 티타임과 산책, 저녁은 저희가 함께 했습니다. 밖에서는 클레멘스가, 호텔에서는 알리시아가 할아버지의 휠체어를 밀었지요. 저희를 볼 때마다 기뻐하시던 모습. 알리시아와 아이스크림을 드시며 즐거워하시던 모습. 언젠가는 추억으로 떠올리게 될 시간들입니다.
제1 십자가의 길(위 가운데)에서 제2 십자가의 길로 가는 길(아래).
코로나가 진정세로 돌아선 올여름 많은 독일 사람들은 알프스 자락 티롤로 트레킹을 떠났습니다. 저희도 하루 트레킹을 했지요. 이 지역 호텔들은 트레킹에 필요한 리프트 이용권을 무료로 제공합니다. 올라갈 때는 리프트를 타고 산 중반까지갑니다. 산 전체가 소들의 방목장이랍니다. 나무는 별로 없고 산 전체에 푸른 잔디를 깔아놓은 것 같아요. 골짜기에서 울려오는 소들의 방울 소리. 들꽃들을 보며 정상까지 한 발 한 발. 암벽으로 깎아지른 좁은 능선 지나 두 번째 정상까지. 산 꼭대기에는 십자가들. 일명 십자가의 길(이것은 제가 마음대로 붙인 이름입니다). 한국의 수많은 산을 사랑하는 분들이 오시면 참 좋아하실 것같은 산들..
산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어요. 소들의 방울 소리가 굵은 대나무로 만든 풍경 소리 같다가 처마를 두드리는 소나기 같아서 그 소리에 귀를 모으느라 자주 멈추었지요. 한바탕 비라도 내리려는지 먹구름도 몰려왔고요. 양갈래 길에서 산장을 향해 내려가는데 가도 가도 앞서간 둘의 모습이 안 보였어요. 폰도 터지지 않는 2,000미터 알프스 산자락에서 말이에요. 아시아 여자 아이를 보셨나요? 물어물어 우여곡절 끝에 다시 만나 한 차례 눈물 바람. 산장에 도착하는순간 비바람 심하게 몰아쳤고요. 그 와중에도 추위로떨며 산장 야외 식탁에서 먹던 점심은 말이 필요 없는 오스트리아의 검은 빵, 신선한 치즈, 살라미의 조합!
하산길은 역시나 쉽지 않았어요. 리프트를 놔두고 걸어서 내려갔거든요. 진흙길이 어찌나 좁고 비탈지고 미끄럽던지! 길을 잘못 들고 한참 후에야 안 일이라 누굴 탓할 수도 없었죠. 내려오는 데만 세 시간. 총 8시간의 산행이었어요. 향후 이틀 동안 제 다리는 후들거림의 대명사가 되었답니다. 내리막길에서는 더 천천히,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오를 때처럼 한 발 한 발 내딛는데 집중할 것. 모든 근심 걱정, 불안과 공포도 내려놓고요.잊지 말 것은 겸손뿐. 잘 내려오기가 오르기보다 어려운 건 인생 불변의 법칙 같아요.
소들과 산장의 점심
시부모님과 저희는 같은 날 집으로 출발했답니다. 제 마음 같아서는 두 대의 차로 우리가 앞장서고 어머니께 따라오시라 해서 슈탄베르크 댁에 먼저 갔다가 뮌헨으로 오고 싶었어요. 그런데 어머니도 클레멘스도 걱정하는 빛이 없더군요. 운전 괜찮으시냐고 여쭙는 며느리에게 괜찮다 하시니 어쩝니까. 저만 쓸데없는 걱정인가 싶어 그냥 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녁에 전화를 드리니 오시는 길에 길을 헤매셨다네요. 네비를 모르시니 언제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지요. 집에 오시니 양아버지가 기뻐하신다는 말씀. 참 좋은 여행이었다는 두 분 말씀에 해피 엔딩으로마무리 되었답니다.
샘.
시어머니를 방문하기 전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나흘만의 통보였지요. 전 가족 모두 음성 판정. 샘과 많은 분들의 염려 덕분입니다. 요즘 한국은 휴가도 없이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는데 계속 휴가 이야기나 쓰자니 염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건 이것이 저의 현재이기도 하고, 너그럽게 양해해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누이 바바라 소식도 전해야겠네요. 저희보다 먼저 출발했던 바바라는 저희가 도착하던 날 뮌헨으로 돌아왔어요. 두 분의 휴가 전반과 후반을 저희가 공평하게 커버한 셈이 되었지요.
휴가 전까지 다니던 요양원 주방에서는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8월 말까지 휴무를 통보받았습니다. 덕분에 팔월 한 달을 통째로 쉬는 중이랍니다. 추후 통보가 없어서 9월부터 요양원이 아닌 다른 곳에 일자리를 찾아보는 중이고요. 며칠 전은 이름만으로도 서늘한 처서였지요. 어제가 칠석 오늘은 입추입니다. 긴 장마와 수재와 폭염에 태풍까지 불어닥친 쉽지 않은 여름입니다. 심상치 않은 코로나 재확산을 앞두고, 모두가 무사하시고 무탈하시길 간절히 염원합니다. 잘 이겨내시리란 변함없는 믿음과 함께요. 힘내세요!
P.S. 제목은 셰익스피어 소네트 18번 '내 당신을 여름날에 비할까?(Shall I compare thee to a summer's day?)'에서 인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