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의 가을

편지 54

by 뮌헨의 마리


지난 주말에는 뮌헨도 아름다운 가을 날씨였어요. 하늘은 높고 파랬지요. 공기는 가볍고, 햇살은 투명했고요. 벌써 가을이 오면 겨울도 빨리 올 텐데. 그렇다고 오지 마, 가을! 할 처지도 못 되고요. 가을을 사랑하니까요.



뮌헨의 우리집 앞 카스타니아 밤나무.



그리운 샘.


이번 주는 밤이 점점 길어져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추분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저희 집 앞 길가에도 큰 카스타니아 나무에서 잘 익은 밤들이 날마다 떨어집니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뮌헨은 지난 주말부터 2주간 옥토버 페스트로 떠들썩할 때입니다. 축제의 상실에 대한 아쉬움 때문인지 요즘 뮌헨에는 바이에른 전통 의상 던들 Dirndl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자주 눈에 들어오네요. 예전에는 학생들도 가을 새 학기마다 던들을 입고 학교에 갔었지요. 조용한 뮌헨의 구월이 아직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동안은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은 비가 내리네요. 구월은 깊어가고 마음은 차분해지는 가을날입니다.


뮌헨의 학교가 개학을 한 지도 2주가 지났습니다. 2주 동안 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등교했지요. 교실에서도 마스크는 계속 쓴답니다. 새 학기인데 선생님과 친구들의 얼굴을 한 번도 못 봤다고 알리시아는 속상해합니다. 나중에 마스크를 벗어야 할 때는 부끄러울지도 모르겠다며 걱정도 하고요. 그래도 학교에 갈 수 있는 게 어딘가요. 감사할 일이지요. 김나지움 수업은 오후 1시에 마친답니다. 학교에서 유료 급식(한 끼/5.50유로)을 먹고 오후 4시까지 숙제를 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합니다. 바이에른주는 2주간 학생들의 마스크 착용을 연장했답니다. 하루에 천 명이 넘던 확진자가 최근 2천 명에 육박하기 때문이에요.


지난 주말에는 뮌헨도 아름다운 가을 날씨였어요. 하늘은 높고 파랬지요. 공기는 가볍고, 햇살은 투명했고요. 덥지도 춥지도, 건조하지도 축축하지도 않은 가을날. 어쩜 뮌헨의 가을이 이토록 한국 같을까요. 그럼에도 제 마음은 아직 가을은 오지 않았다고 우기고 싶었답니다. 하늘이 저토록 푸른데 가을이 아니라니요. 오지 마, 가을! 벌써 가을이 오면 겨울도 빨리 올 거라고 해서 렇게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가을을 사랑하기 때문이에요. 구월부터 초밥 알바를 하느라 못 가 본 장미 정원에도 가을 인사차 한번 들러야겠어요. 장미들 소식은 나중에 다시 전해드릴게요.



뮌헨의 한글학교에서 옥토버 페스트 장소로 가는 길(위) 카페 이탈리 앞. 오른쪽 건물 끝에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다고 함(아래)



샘. 저는 요즘 주로 집에서 글을 쓰고 독일어 동화책을 필사하고 있습니다. 우체국에 들러야 하는 오늘처럼 외출할 일이 있을 때만 카페에 답니다. 제가 브런치 글을 오래 썼던 빅투알리엔 마켓의 카페 이탈리는 지난번보다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해졌네요. 테이블을 많이 줄여서 넓은 실내가 더 넓어지고, 일하는 직원들은 바뀌었어요. 나이 드신 할아버지 바리스타만 여전시 건재하시네요. 마스크를 쓰니 서로 얼굴을 알아보기가 어려운 것도 아쉽습니다. 예전에는 이름과 연락처도 썼는데 요즘에는 안 하네요. 독일은 레스토랑이든 카페든 주문을 하고 테이블에 앉은 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답니다.


알리시아가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가까운 프라우엔 호프 슈트라세 역 앞의 작은 카페는 문을 닫았습니다. 그곳에서 겨울에 글을 쓴 적도 있는데요. 작은 카페가 견뎌내기는 6개월이 너무 길었나 봅니다. 주말 한글학교에 갈 때마다 들르던 카페 디바 Cafe Diva 기억하시죠? 샘께 첫 뮌헨의 편지를 썼던 곳 말이에요. 그 카페도 이번 주까지 휴가라고 쪽지가 붙어있었답니다. 이번 주말에는 꼭 문을 열기를 바라며 다시 가 볼 생각이에요. 대신 카페 마마스 Kaffee Mamas 는 문을 열었어요. 카페 디바가 문을 닫을 때마다 제가 가던 곳이죠. 500번째 브런치 글은 그곳에서 답니다.



카페 디바 Cafe Diva 안내문. (친구들, 우린 9.23일까지 휴가라네!)



지난봄 카페들이 문을 닫았던 시절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네요. 이 멋진 계절에 밖에 나왔다가 차 한 잔 마시러 마음 놓고 들어갈 카페가 없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얼어붙을 것 같거든요. 얼마 전에 신문을 보고 안 사실인데, 카페 이탈리 부근에 유명한 독일식 도넛 가게가 있거든요. 건물 반대편에 퀸의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다지 뭐예요. 그래서 그 거리 이름을 '프레디 머큐리 거리'로 바꾼대요. 놀라운 건 그 집을 샀던 집주인도 자기 집에 프레디 머큐리가 살았다는 걸 몰랐다가 영화를 보고서야 자기 집인 줄 알았다나요. 집 안 구조가 자기 집과 같아서 혹시나 했는데 맞았대요. 뮌헨에 살기로 한 건 잘한 일 같아요! 프레디 머큐리 이름을 딴 거리 하나가 새로 생기는 것뿐인데도 설레는 걸 보면요.


샘. 저는 뮌헨을 깊이 사랑하나 봅니다. 뮌헨의 이 가을을요. 맑은 날 뿐 아니라 비 오는 날까지도요. 사랑하면 궂은 것도 받아들이게 되지요. 언젠가 샘이 오시면 뮌헨의 시내와 이자르 강가와 영국 정원을 함께 산책할 날을 그려봅니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왔다가 곧 떠날 가을도 중무장하고 대기 중인 겨울도 두렵지 않아요. 실내에 레몬빛 오렌지빛 등불 걸어둔 카페가 있으니까요. 어제까지 10권의 동화책 필사를 마치고 오늘부터 <어린 왕자>를 시작합니다. 번역본마다 내용이 다른 것도 새롭습니다. 올 겨울 제게 몰입의 즐거움을 안겨줄 작업이지요. 독일어 공부의 즐거움과 함께요. 샘이 그리고 계실 올 가을과 겨울의 풍경도 궁금합니다.



카페 마마스 Kaffee Mamas(독일어로 커피를 뜻하는 Kaffee와 카페 Cafe의 발음은 같다.)


P.S. 얼마 전부터 뮌헨은 시청 앞 마리엔 플라츠 등 번화가 거리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답니다. 알리시아가 라디오에서 듣고 알려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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