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엔 광장에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다가 지난 3월의 기억을 떠올렸어요. 불안과 공포 대신 온화한 미소를 짓던 거리의 젊은 악사를요. 올 가을 광장의 피아니스트 역시 미소를 짓고 있네요. 제가 목격한 코로나의 의문의 2연패 현장입니다.
코로나는 여전하지만 뮌헨 시청의 시계탑 인형은 춤추고, 거리의 피아니스트는 연주한다.
그리운 샘.
지난주 날씨가 좋은날 마리엔 광장에 나갔다가 피아노 연주를 들었답니다. 그날은 카페 근무가 없어서 미나와 만나기로 한 날이었어요. 기억나시죠? 작년 이맘때 호텔에서 같이 일했던 모로코 친구 말이에요. 그 사이 독일어가 제법 늘었더라고요. 코로나로 호텔에 쉬는 날이 많아서 예전보다 몸도 통통해졌고요. 휴식과 다이어트는 반비례하나 봐요. 월급의 반은 호텔에서, 반은 정부에서 받고 있대요. 미나와는 카페 이탈리에서 카푸치노를 마셨고, 잠시 수다를 떨다가 헤어졌답니다. 함께 한 시간은 짧았고, 지금은 서로 다른 일을 하니 공통의 화제가 많지는 않았어요.
미나와 만나기로 약속한 장소는 뮌헨 시청사 앞 마리엔 광장이었어요. 미나는 길치라서 길을 잘 몰라요. 만날 때마다 그녀가 도착한 장소를 확인하고 방향을 알려주고 안내를 해야 한답니다. 미나를 기다리며 마리엔 광장을 한 바퀴 둘러보다가 광장 한가운데에 크림색 피아노를 발견했어요. 밤색 상의와 베이지색 바지에 운동화를 신은 피아니스트도요. 점심시간이었어요. 햇살은 따뜻하고, 공기는 온화했지요. 그날 그가 준비한 곡이 어떤 곡인지는 모른답니다. 알 필요도 없었고요. 그의 피아노 소리가 조용히 한낮의 광장으로 퍼지며 사람들의 발길을 불러 세운 것으로 충분했어요.
마리엔 광장에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다가 지난 3월의 기억도 떠올랐어요. 코로나로 외출 금지령이 내리기 전날이었죠. 마리엔 광장에서 슈타후스까지 뮌헨 시내의 노른자 격인 쇼핑 거리엔 사람의 그림자도 찾기 힘들었어요. 가게들은 셔터를 내리고, 거리엔 스산한 바람과정적뿐. 그때 거리에서 들은 아코디언 소리를 지금도 기억합니다. 전염병을 눈 앞에 두고 불안과 공포가 아닌 온화한 미소를 짓던 거리의 젊은 악사를 기억합니다. 올 가을도 코로나는기세 등등하지만 마리엔 광장에서 피아노를 치던피아니스트 역시 동전을 넣자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었답니다. 제가 직접 목격한 코로나의 의문의 2연패 현장이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궁금해졌답니다.저 무거운 피아노는 도대체 어떻게 옮겼을까요.
빅투알리엔 마켓의 꽃과 꽃장식 가게
샘.
마리엔 광장에서 빅투알리엔 마켓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북적거려 안도감이 듭니다. 썰렁한 시장만큼 애잔한 풍경도 없지요. 가을엔 역시 노란 국화입니다. 꽃가게를 한 바퀴 돌며구경하다가 발길을 멈춘 곳은 꽃가게 옆 꽃장식 가게. 집 현관에 걸어두고 싶을 만큼 예쁜 리스들과 매대 아래쪽 푸른 바구니도 눈길을 끌고요. 내친김에 채소 가게들도 둘러보았답니다. 미끈한 무들이 나올 철이잖아요. 큰 무를 다섯 개나 샀답니다. 마트에서는 무청을 잘라버리고 파는데 여기선 무 길이만큼 청청한 열무잎이 달려 있으니 일거양득. 저를 놀라게 한 아주머니의 질문 두 가지도 소개할게요. 무청 잎 떼주랴. 마늘은 안 사냐. 한 번은 고개를 젓고, 한 번은 끄덕였답니다. 햇마늘이 필요한지는 또 어떻게 아시고.
그날 밤 당장 무김치를 담았답니다. 김치는 식구들 다 자는 밤에 홀로 담아야 제맛입니다. 무를 잘라 굵은소금을 뿌리고, 열무도 먹기 좋게 잘라서 소금을 치고요. 작은 냄비에 물을 끓여 찹쌀 풀을 만듭니다. 계량 같은 것은 없고요. 감으로 까나리 액젓, 매실액, 고춧가루를 곱게 풉니다. 그뿐이었어요. 누가 생무 김치는 맛이 없다고 했나요. 생무청의 맛도 기가 막히고요. 따끈한밥을 초밥처럼 쥐어 열무와 무 쪽을 얹어 서너 번 먹었죠. 다음 날은 닭국물에 밥을 넣어 얹어 먹고요. 힐링 푸드. 이 세상에 더 이상의 호사는 없습니다. 클레멘스와 알리시아는 당연히 그 맛을 모르지요. 이런 건 누구와 나누어야 할까요.
독일에 살며 계절과 절기를 챙겨보는습관이 생겼답니다. 입추나 입동이란 단어를 들으면 저절로 한국이 생각나고요. 이달 말엔 서리가 내린다는상강이, 11월이 오면 입동입니다. 개인 위생과 마스크를 철저히 지켜서인지 감기 환자가 많이 없는 것도 다행이에요. 샘도 들으셨겠지만 요즘 독일은 하루 확진자가 2,500명을 넘는답니다. 지난 금요일 기준으로 영국 13,000명/프랑스 12,000명/러시아 10,000명/스페인 9,500명/이태리 2,700명. 주말이 되자 하루 이틀 사이 프랑스가 2만 명을, 러시아가 12,000명에 육박한다고 하네요. 우려의 목소리는 있지만 그럼에도 큰 혼란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매일 일터로 출근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갑니다. 가게들은 아침마다 문을 열고, 레스토랑과 카페들도 영업을 계속하고요. 어떤 일이 닥쳐도 삶은 계속됩니다. 계속되어야 합니다. 1일확진자 수가 두 자리인 한국은 경이로움 그 자체입니다. 환절기에 건강에 유념하시고요. 언제나 무탈하시길 빌어요, 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