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 치 앞을 모르는 것

뮌헨의 편지 52

by 뮌헨의 마리


무엇이 최선인가. 어떤 게 최선의 자세인가. 최선만이 최선인가. 차선은 나쁜가. 질문은 계속되겠지요.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팔월의 저녁 7시 산책길에 들기 좋은 화두입니다.



칠월의 길에서 주운 부겐베리아 꽃잎 한 장.



그리운 샘.


어제는 팔월의 첫날이었습니다. 요즘은 시간이 한 달 단위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돌아서니 유월이었고, 칠월이다가, 어느새 팔월이네요. 칠월의 마지막 날 유럽의 날씨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남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치 차이퉁을 참조하면 뮌헨은 32도. 그날 독일 최고 기온은 트리어 부근으로 38도였어요. 유럽의 다른 도시들도 비슷한 상황이었고요. 암스테르담 31도, 리스본 32도, 바르셀로나 32도, 비엔나 32도, 로마 33도, 런던 34도, 취리히 35도. 아테네와 파리가 38도를 찍었고, 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는 무려 39도로 올여름 폭염을 미리 예고하는 듯하네요.


팔월의 첫날 뮌헨의 기온은 전날보다 높은 34도. 유럽의 다른 도시들은 다행히 전날보다 1~2도 낮았습니다. 주말 아침부터 저는 부지런을 떨며 집안의 창마다 블라인드를 내리고, 부엌의 큰 창에는 임시 가림막을 쳤답니다. 에어컨이 없는 독일 가정에서 햇볕 차단은 가장 손쉬운 무더위 예방책입니다. 이럴 때는 나무 덧문이 최고인데 아쉽게도 저희 집에는 없습니다. 독일은 커튼 있는 집도 드물어요. 최대한 햇볕을 집안에 들이려는 의도가 아닐까 싶어요. 에어컨을 직접 설치하면 안 되냐고요? 집에 손상을 입히면 나갈 때 완전 복구의 의무가 있답니다. 설치 전에 주인 허락도 받아야 하고요. 이래저래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칠월의 마지막 날은 아침부터 더웠답니다. 이번 주는 계속 휴무라 아침 8시에 빵을 사러 나갔다 돌아오니 이런 게 무더위구나 싶더군요. 온종일 집에서 더위를 피하다가 오후 6시경 클레멘스와 알리시아와 외출을 했는데 그때까지 더웠어요. 당연하지요. 한국은 낮 최고 기온을 오후 3시로 치지만, 여기는 오후 6시로 보거든요. 그날은 알리시아가 햄버거가 먹고 싶다고 했어요. 1년에 두 번, 여름과 겨울에 햄버거와 콜라를 먹는 건 괜찮지 않냐 묻길래 온 가족이 햄버거로 저녁 외식을 하기로 했답니다. 뮌헨의 유명 햄버거 체인점은 <한스 임 글뤽 Hans im Glück>. 일명 '행복한 한스'!



아래 햄버거들 중 가운데가 클래식!



결론은 이렇습니다. 맛이 나쁘진 않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는 것. 주문할 때 선택지가 어찌나 많은지 힘들었다는 것. 혼자였다면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미식가도 아니니 다음에 온다면 클래식 메뉴만 주문할 생각이에요. (메뉴 이름이 '클래식'이랍니다!) 세 종류를 먹어봤는데, 클래식 메뉴가 빵도 바삭하고 맛있었어요. 감자튀김은 양도 가격도 1인분 몫이었는데 만족도는 최고였답니다. 투박하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독일 감자튀김의 맛! 햄버거 세 개와 감자튀김 한 개, 음료 세 잔의 저녁 외식은 팁 포함 48유로. 바람 부는 서늘한 노천 테이블의 외식 비용으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저희 가족이 좋아하는 베트남 식당이 문을 열었는지도 보고 왔어요. 빅투알리엔 마켓 길 건너 작은 식당입니다. 코로나 이후 문을 열지 않았거든요. 인상 좋은 베트남 형제가 식구들과 일하며 살아가는 일터입니다. 형님은 주방을, 동생은 홀을 책임지지요.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어제 보니 가게를 조금 넓혀서 리노베이션 중이었어요. 손바닥만 한 식당이라 테이블 거리 제한에 맞추려면 답이 없었겠지요. 외국에 살면서 싸고 맛있고 맘씨 좋은 주인장이 있는 식당을 만나기가 쉽나요. 맘 편히 들를 로컬 식당이 있어 마음 든든합니다. 재오픈 때는 꼭 달려가서 단골의 의리를 보여줄 생각이에요.



뮌헨 외곽의 오래된 사과나무가 있는 정원.



샘.

인생이란 한 치 앞을 알기 힘들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자주 합니다. 코로나 이후 알 수 없고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 많아서요. 그 모든 것들을 알려는 노력이 무의미한지도 모르지요. 제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3월 중순부터 시작된 독일의 코로나와 저의 뮌헨 요양원 주방일은 우연의 일치로 같은 날 출발했지요. 어떤 시국에도 일자리가 보장되리라 믿었던 요양원도 코로나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나 봅니다. 요즘 저희 요양원 주방에도 구직자들의 문의가 줄을 잇고 있거든요. 호텔과 레스토랑과 회사 구내식당인 칸티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에요. 저보다 젊고 경력도 많으니 제 경쟁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우여곡절 끝에 저는 주방에서 팔월까지 일하게 되었답니다. 일손이 안 모자란다던 보스의 말은 핑계에 불과했어요. 팔월부터 주방에는 새 정직원이 들어옵니다. 그동안 세 명이 다녀갔는데, 중년 남성 둘 중 한 명이 뽑혔답니다. 점잖은 인도 남성인 그의 이름은 클레멘스. 미워할 수도 없는 이름이네요. 시범일을 하러 온 첫날 그에게 내 남편 이름이랑 똑같아! 하자 그도 고백하더군요. 나 사실 인도 출신인데, 어릴 때 독일 가정에 입양되었어. 히스테리가 심한 동료 귤헨으로부터 그가 오래 버티기를 바라요. 같은 정직원이니 저한테 하듯 함부로는 못하겠지요.



나흘간 근무했던 새 주방 옆 카테테리아.



칠월 근무가 끝나기 전 나흘간 저는 다른 주방에서 일을 했어요. 저희 요양원은 뮌헨 시내에 13개의 지부를 두고 있답니다. 저희 주방이 본부라 다른 곳보다 일이 많지요. 귤헨의 병가로 연장되었던 근무가 끝날 무렵 다른 지부로부터 인력 지원 요청이 있었어요. 직원들의 병가와 휴가가 겹쳐서 일손이 모자란다고요. 그곳 주방 보스는 저희와 몇 달을 함께 일하던 젊은 헝가리 요리사였고, 성격도 좋았답니다. 나흘간 저는 그곳에서 행복했어요. 일도 적었고, 스트레스도 없었어요. 그 작은 주방에서 말도 안 걸고, 묻는 말에만 대답하고, 순순히 곁을 내주지 않던 젊은 여자 동료도 있었지만요. 사흘째부터 기적처럼 그녀와도 말을 나누었고, 마지막 날엔 언젠가 다시 만나자며 코로나 때문에 금지된 포옹까지 하고 헤어졌답니다.


제가 꿈꾸던 주방이었어요. 작지도 크지도 않은 공간에서 요리사들과 주방 보조들이 사이좋게 일했지요. 서로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웃으며 일하는 곳. 거기서 일할 수는 없냐고요? 글쎄요,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제가 정직원이 아니라서요. 보스에게 물어보니 빈자리가 없대요.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은 세상 일은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칠월 중순까지 근무하기로 되어 있던 제게 두 번의 연장 근무 기회가 주어졌고, 마지막엔 즐거운 추억까지 덤으로 얻었으니까요. 팔월에는 두 주 정도 추가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감사할 일이죠. 귤헨이 뭐라 해도 참고 견딜 수 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인연인데 얼굴 붉힐 필요야 없겠지요.


샘.

한국의 폭우로 인한 크고 작은 피해에 안타까운 마음만 보탭니다. 종식되지 않는 코로나에, 폭우에, 무더위라는 삼중고 속에서 다들 무탈하시기를 바라요. 팔월 마지막 주가 되면 '칠석' '입추' '말복'이라는 반가운 단어들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살면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는 말만큼 위로가 되는 말도 없네요. 삶에도 언젠가는 끝이 있듯이요. 그 끝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합니다. 마지막을 생각하면 누구나 최선을 다하게 되지요. 무엇이 최선인가. 어떤 게 최선의 자세인가. 최선만이 최선인가. 차선은 나쁜가. 질문은 계속됩니다.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팔월의 저녁 7시 산책길에 들기 좋은 화두입니다. 샘의 건강과 평안을 간절히 바라는 이가 뮌헨에 있다는 것도 잊지 마시기를.



뮌헨 외곽의 어느 정원 풍경.


P.S. 브런치 작가 로마언니님의 글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7/31 로마의 기온은 39도. 8/1 로마의 기온은 38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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