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 알바를 그만두다

마트 초밥 매대 3

by 뮌헨의 마리


지난 2년은 브런치가 있어 내가 있었다. 감사하다. 500개의 글은 그동안 아껴주시고 읽어주신 구독자님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분 한 분께 마음 깊은 곳에서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책상 옆엔 책들. 책상 옆엔 난로. 무엇이 더 필요한가.



마트의 초밥 코너에서 일하는 것을 그만두기로 했다. 초밥 만들기는 시작도 못하고. 직접적인 계기는 레겐스부르크 힐더가드 어머니의 무릎 수술 때문이었다. 팔월에 다 같이 여름휴가를 다녀올 때만 해도 괜찮으셨는데. 거기서 사흘이나 골프를 치셨고, 휴가를 다녀온 후에도 계속 골프를 치셨는데. 9월 들어와서 무릎 상태가 갑자기 나빠지셨다. 내가 초밥 일을 시작할 무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걸을 수도 없다 하셨다. 오전 내내 소파에서 무릎 찜질을 하시다가 오후에나 조금씩 움직이신다는 말씀을 듣고도 토요일 저녁 근무 때문에 못 찾아뵈었다. 다음 주말에 어머니를 방문하기로 했다. 수술 예정일은 시월 . 수술 후 재활까지 포함해서 한 달을 병원에 입원하실 예정이시다.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을 굳힌 계기는 또 있다. 3주째 베트남 동료 항의 초밥 코너에서 일을 배울 때였다. 사무적으로 딱딱하게 선을 긋는 항과는 대화 없이 일만 했다. 초밥 일은 2년이지만 예전에 베트남 식당을 운영한 적이 있다는 그녀에게 내 주방 솜씨가 맘에 들 리가 있나. 일의 순서를 까먹고 거기다 느리다고 마지막 날까지 쓴소리를 들었다. 청결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평점은 50점도 안 될 것이다. 이번 주에도 몇 번 버벅대자 항이 옆에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정말로 일을 좋아하면 잊어버리기가 어려운 법이라고. 자꾸 잊어버리는 건 내가 일에 애정이 없다는 증거란다. 그날 그녀의 말에 마음이 데고, 예리한 칼날에 손을 베이고, 뾰족한 야채통 모서리에 손끝을 찔렸다. 하루에 하나도 경험하기 힘든 것을 한꺼번에.


아이도 한몫 거들었다. 두 번째 토요일에는 밤 8시 반에 퇴근 중인 엄마에게 택시 타고 오면 안 되냐고 전화로 물었다. 토요일 오후에는 한글학교를 마치고 엄마와 빅투알리엔 마켓 옆에 새로 생긴 버블티 카페에 가고 싶어 했다. 주말에 한글학교에 갔으니 보상을 받고 싶은 것이다. 버블티를 마시고 나면 시청 앞 마리엔 광장의 후겐두벨 서점도 수순이 될 터였다. 최근 남편도 사업차 자주 집을 비우기 시작했다. 다행히 항도 회사의 담당 매니저도 딸을 둔 엄마였다. 만 열 살짜리 딸아이 옆에는 엄마가 필요하다고 적극 공감해 주었다. 항의 딸은 김나지움에 입학한 첫해에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밥을 못 먹었다고. 우리 아이가 저녁마다 무섭다고 말한다 했더니 애들은 다 똑같다며 나를 위로했다. 항과 나는 마지막 금요일 저녁 내 퇴근 시간을 30분이나 넘기며 대화를 나눈 후 연대의 포옹을 한 후 헤어졌다. 신짜오, 항. 안녕, 오! 서로에게 가르쳐 준 다정한 작별의 말과 함께.



필사적으로, 필사 중인 동화책들!(대부분 한국어로도 번역되었다.)



그날 알았다. 내가 일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좋아해서 하는 일이 어딨냐고 어물쩍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정곡을 찌른 말이었다. 그날 저녁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앞으로도 일은 계속할 것이다. 50대 우울증 예방을 위해서라도. 남편도 고마워하고 두 분 시어머니도 좋아하신다. 아직 남편의 사업이 궤도에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과 함께 내가 좋아하는 일은? 책 읽기와 글쓰기. 독일에 살며 일도 해야 하니 독일어를 잘해야 한다. 어떻게? 지금까지는 어렵게만 공부했다. 까뮈와 카프카라니! 두 작가의 책 중 분량이 짧은 작품일지라도 내 실력엔 어림도 없는데 왜 그렇게 어려운 길을 가려했을까. 2년 전 힐더가드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생각났다. <마담 보바리>에 나오는 글을 실생활에서 얼마나 써먹겠냐는 요지였다. 그때는 그 말씀이 그리 듣기 싫던지. 옳은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건 왕들 뿐만이 아니다.


지금 돌아보아도 영리한 전략은 아니었다. 요령도 없이 겉멋만 들었던 것을 인정한다. 허영심이 독일어 실력에 하등 보탬이 되지 않았다는 것도. 정도 일에 멀쩡한 쓸개를 꺼내어 진짜로 쓴 지 아닌지를 논할 것까지야 없겠다. 알아차렸으니 실행만 하면 될 일. 그래서 시작했다. 그날 밤 당장! 독일어 동화책 필사하기. 눈으로 읽는 것과 직접 써보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처음 독일에 살던 2002년부터 독일 동화책에 관심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그림책을 사기 시작했으니 동화책 고르는 일이야 식은 죽 먹기였다. 그림책이라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하루 저녁 한 권 필사도 어렵지 않았다. 현재 다섯 권째 도전 중. 아이들 표현이니 눈과 입에 착착 감기는 즐거움도 크다. 모르는 단어나 애매한 표현은 실시간 도우미가 집에 둘이나 있으니 성취감 두 배, 만족은 세 배. 번역을 즐긴 하루키를 벤치마킹하는 기분도 만끽했다. 하루키도 했다는데 나도? 이런 게 진정한 만용. 위대한 작가 앞에서 주눅이 드는 건 자신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새벽 출근길의 첫 무지개(위) 두번째는 쌍무지개(아래 왼쪽) 어디에 쌍무지개가 있냐고? 위쪽을 자세히 봐야 보인다. 마음으로 보시라는 말은 않겠다. 세번째도 쌍무지개(아래 오른쪽)



얼마 전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냐고. 엄마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지. 책을 쓰는 작가. 너는? 아직도 화가? 아니란다. 화가는 애기 때나 꾸던 꿈이라고. 그럼 지금은? 얄밉게도 말을 안 해 주었다. 그런 건 말로 하는 게 아니라며. 흥, 엄마도 말 안 한 꿈이 몇 개 더 있는데, 그건 모르겠지? 오늘로 브런치에 500개의 글을 썼다. 나 자신에게 500번의 브런치 밥상을 차려준 것 같은 기분. 앞으로의 목표는 내년 여름까지 만 3년 글쓰기. 글은 600개. 그리고 이슬아처럼 되기! 자신의 글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일 것이다. 그럴 일도 그만둘 것이다. 못하면 계속 고 go. 꿈도 계속된다. 세계문학 읽기, 나 홀로 문학기행, 뮤지엄 순례 글쓰기. 단편 쓰기. 독일 동화책 필사가 동화책 번역으로까지 이어지지 말란 법도 없다. 새로운 도전은 언제나 멋진 일이니까. 이 나이에도 꿈을 물어주는 이가 있는 한!


지난 칠월은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된 지 만 2년이 되는 때였다. 그 달에 나는 뮌헨에서 무지개를 세 번이나 보았다. 그중 두 번은 쌍무지개였다. 그때마다 무지개가 사라지기 전 일곱 색깔 위에 급히 내 꿈을 보탰다. 그게 무지개 보고 빈다고 되고 말고 할 일인가마는. 내가 작가의 책상이라고 명명한 앤티크 책상을 거실 난방기구 옆으로 옮긴 것도 결심을 실천하는 일 중 하나였다. 새 마음으로 필사하고 글쓰기. 작년 봄 알바 첫 봉급으로 중고품 가게에서 산 책상이었다. 그동안 아이가 쓰다가 새 책상이 생겼다고 1년 만에 내게 돌려주었다. 책상에 앉아 내년 여름까지 동화책 필사를 계속할 생각이다. 목표는 200~300권. 많은 동화책 중 가장 심혈을 기울일 이달의 한 권도 정했다. 9월은 <어린 왕자>. 난로도 있고, 책상도 있으니, 이제 앉기만 하면 된다. 기분만 보자면 벌써 저작이 수두룩한 작가다. 언제나 그렇듯 실천이 중요하다. 결심은 누구나 하는 것. 지난 2년은 브런치가 있어 내가 있었다. 감사하다. 500개의 글은 아껴주시고 읽어주신 구독자님들 덕분이었다. 한 분 한 분께 진심 어린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



곧 만나러 갈게, 나의 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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