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카페를 선택했을까

카페 1

by 뮌헨의 마리


코로나 시대에 카페에서 일한다는 게 잘한 선택인가는 나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내가 아는 건 언젠가는 코로나도 물러갈 거라는 것. 한 번은 뮌헨의 카페에서 일해보고 싶었다는 것. 시범 근무도 마쳤고, 출근은 시월부터!



시월부터 내가 일하게 될 카페. 시범 근무하는 날부터 날이 추워졌다. 노천 테이블엔 꽃과 바람과 빗방울만...



2020.9.23일은 내게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은 날이 될 것이다. 구직 서류를 보낸 뮌헨의 어느 카페에서 인터뷰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망설이지 않고 다음날 가겠노라 답을 보냈다. 그날은 떨려서 잠도 못 자고 인터뷰 날이 밝았다. 전날에도 비가 오고, 다음날에도 비가 왔는데, 인터뷰하는 날만 해가 나왔다. 약속 시간은 오후 6시.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는 말은 진리였다. 일이 손에 안 잡혀서 하루 종일 독일어 <어린 왕자> 필사만 했다. 인터뷰는 잊으려 할수록 자꾸 생각났고 불안을 키웠다. 응모자가 많겠지. 경험자도 많을 거고. 다들 나보다는 젊을 테고. 생각하면 할수록 나를 뽑아줄 이유가 하나씩 사라졌다.


독일 인터넷 구직 사이트에서 카페 주방 보조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서류를 보낸 건 초밥 매장을 그만두기 전이었다. 목 빠지게 기다리던 답이 온 것은 열흘 후. 발송자 이름은 내가 응모한 C카페의 주인장 슈테판이었다. 주방 보조/주 3일 파트타임/오전 근무. 내가 맡게 될 일은 샌드위치, 과일 샐러드, 뮤슬리, 키시 Quiche 등이었다. 독일어로 키시라고 불리는 메뉴는 키슈나 키쉬 등으로도 불리는 프랑스식 타르트였다. 카페에는 인터뷰 시간보다 빨리 도착했다. 위치만 확인한 후 약속 시간 10분 전에 들어가니 홀 직원이 카페 밖 노천 테이블로 안내했다. 6시 정각에 슈테판 등장.


인터뷰는 간단하게 끝났다. 슈테판이 질문하고, 내가 답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차분한 이미지의 슈테판은 지나치게 친절하지도, 지나치게 냉정하지도 않아서 내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사람 사이의 친밀함에도 중도가 있다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온도가 최상일 것이다. 다만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감정이란 게 끓다가 식다가 멋대로라서. 슈테판의 질문은 나의 주방 경험. 작년 봄부터 시작했던 알바 중 세 군데를 말해주었다. 한국 슈퍼/호텔 조식/요양원 주방. 업무 내용만 보자면 칸티네에서 하던 일이 비슷해서 언급했다. 그날따라 독일어가 받쳐주었다. 돌아오는 구월의 마지막 주에 시범 근무를 하고 채용 여부를 결정하기로 다.



인터뷰 전 떨리던 마음.



사실 나는 이 카페에 두 번이나 지원했다. 뮌헨도 코로나 전보다 구직 경쟁이 치열해졌다. 코로나로 인한 관광객 감소와 옥토버 페스트 취소로 호텔에서 유입된 인력들이 강력한 경쟁자였다. 경력도 짧고, 나이도 많은 내가 불리한 것은 당연지사. 코로나 이전에는 전화로 구직 의사를 밝히고, 인터뷰 날짜를 잡고, 시범 근무를 하고, 계약서를 쓰면 끝이었다. 지금은 구직 사이트에 응모하고, 각종 서류를 첨부하고, 이메일로 도착할 답장을 기다려야 했다. 여러 곳에 지원했지만 답은 없었다. 내가 응모한 카페는 최저 수당, 파트타임, 거기다 독일어, 영어 가능자만 뽑기에 지원자가 적을 지도 모른다는 예감은 적중했다. 처음엔 메일만, 두 번째는 사진이 첨부된 서류를 동봉했다. 컴퓨터로는 같은 사람이 2회 지원을 할 수 없어서 한 번은 독일-한국 성, 두 번째는 한국 성으로만 응모했다.


독일에서 구직을 할 때든 언제 어디서든 자신을 적극 어필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겸손은 금물. 짧은 주방 경력 덕분에 서류를 낼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슈테판이 제시한 조건은 주방 경력 최소 1년 이상일 것. 신뢰할 만하고, 시간 개념이 정확하고, 친절할 것. 나는 그 문구에 두 마디를 더 보탰다. 부지런하고, 청결을 중시함! 주인장은 단정했고, 작은 주방과 널찍한 작업실 겸 사무실은 깔끔하고 청결했다. 주방만 셋. 홀 직원 포함 총 열 명도 넘는 직원의 인건비와 가게 임대료와 재료비 등을 감당하려면 오너인 그는 얼마를 벌어야 할까. 근무 시간과 임금으로만 보면 최저인 미니잡 Mini job 알바인 내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만, 하루를 하더라도 내 일처럼 하는 마음 가짐은 소중하다. 사장은 좋은 직원 만나기 어렵고, 직원도 좋은 사장 만나기 어려운 . 좋은 카페와 주인장 만났을 때 잘하고 싶다.


코로나 시절에 카페에서 일한다는 게 잘한 선택인가에 대해서는 나도 자신 있게 답할 수 없다. 내가 아는 건 언젠가는 코로나가 물러갈 거라는 것. 언젠가 한 번은 뮌헨의 카페에서 꼭 일해보고 싶었다는 것. 더 나이 들기 전에 말이다. 홀 근무가 아니라 주방 보조라 고객을 응대할 일이 없고, 주방은 근무 인원이 적어 코로나에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내가 '우리 카페'라고 애정을 품고 말하게 될 카페는 크기도 적당하고, 고정 단골도 있어 보였다. 도로 건너편 회사에서 시누이 바바라가 일한다는 것은 카페를 검색하다 알았다. 지난주에 인터뷰를 마치고 바바라에게 취업 소식을 알렸더니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카페에 대해 물으니 단번에 엄지 척! 떨리는 마음으로 시범 근무도 마쳤고, 출근은 시월부터 하기로 했다.



카페 내부 정면을 가득 채운 세계 지도의 의미는?



내 취업을 가장 기뻐해 주신 분은 시어머니 두 분이었다. 힐더가드 어머니는 내가 얼마를 버는 것과 무관하게 독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에 큰 점수를 주셨다. 홀로 고립되지 않고, 누군가와 관계를 맺으며, 어떤 일이든 마다하지 않고 구직에 애쓰는 며느리를 대견하게 여기시고, 통화할 때마다 독일어도 칭찬하신다. 독일어가 나아졌으면 얼마나 나아졌을까마는 이제야 말을 많이 하 반갑고 좋다는 뜻으로 들린다. 나는 오랜 세월 말이 없는 며느리로 살아왔다. 친어머니 카타리나도 반색을 하셨다. 밤낮없이 일하는 아들을 염려하시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근무 시간이 적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카페에서 일하게 된 것을 좋아하시니 나 역시 뜻밖의 효도라도 한 것처럼 기쁘다.


어제는 시범 근무 날이었다. 아침 8시 출근. 정오 12시 퇴근. 슈테판과 작업실에서 종류에 가까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버터를 바른 브레첼도 수십 개. 다음 날 판매될 뮤슬리와 당일 판매할 키시 도우도 9개를 준비했다. 주방장은 포르투갈에서 온 아드리아노. 업무도 다르고 공간도 분리되어 주방장인 그와 일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던 나는 그의 온화한 인상에 안도했다. 같이 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와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것도 반가웠다. 그래서 독일어-영어 가능자를 찾았구나. 잊혀가는 영어를 소환하는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나의 새 알바. 카페는 월~토요일까지 문을 연다. 주중에는 아침 7시 30분~오후 7시, 토요일은 아침 8시~오후 7시. 올 겨울 다양한 샌드위치 레시피와 함께 이 카페를 아주 많이 사랑하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반가운 건 근무날엔 커피나 음료 공짜. 근무가 아닌 날엔 직원/가족 할인도 있다고. 직장이 이 정도는 되어야지!



시범 근무를 마치고 홀 직원이 내려준 카푸치노 한 잔. 너무 맛있어 보여 일단 한 모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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