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밥의 날개를 펴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마트 초밥 매대 2

by 뮌헨의 마리


토요일 저녁 8시 근무는 밀물처럼 근심을 몰고 왔다. 단 두 주만에. 아이의 불만과 두 분 시어머니의 진지한 질문. 다른 일을 찾으면 안 되겠니? 그리하여 가을처럼 고민은 깊어만 가는데.


내 동료 항의 롤 솜씨!



2주 동안 마트의 초밥 코너에서 스파르타식 트레이닝을 받았다. 숙련된 조교인 그녀의 이름은 항. 나보다 한 살이 많은 베트남 여성이었다. 항은 그녀의 성이다. 우리는 서로를 성으로 부른다. 앞에 미시즈 Mrs라는 뜻의 프라우 Frau를 붙여서. 프라우 항, 프라우 오. 예의와 정중함을 앞세운 거리두기다. 그녀는 내가 발을 들인 지 2주 차인 이 초밥 회사에서 2년간 일했다. 신기한 건 왜 20년 일한 사람 같은 포스가 나는 거지? 내가 받은 그녀의 인상은 한 마디로 프로다웠다. 철두철미에 빈틈이라곤 없었다. 덕분에 2주 만에 업무를 익히긴 했다. 자기는 1주 만에 마스터했다는 얘기를 귓등으로 흘려들으며. 시작도 하기 전에 기가 죽을까 봐.


알면 알수록, 파면 팔수록 그녀의 놀라운 발견이었다. 지난 2주가 그랬다. 그녀의 퇴근 시간은 마트가 문을 닫는 저녁 8시. 나는 오후 6시 30분. 내가 퇴근하기 전까지 폭풍처럼 일을 끝내고 마감 전까지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 같았다. 흉보자는 게 아니다. 매일 8시간을 월요일에서 토요일 저녁까지 일하려면 꼭 필요한 전략이다. 본인의 업무가 완벽한데 누가 뭐라 하겠나. 내 근무에 휴식 시간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도 그녀가 알려주었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논스톱으로 일을 시키더라는 것. 12시 30분 출근과 함께 숨도 안 쉬고 실시! 이런 기분이었다. 일사불란한 동작. 총알보다 빠른 지시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덕분에 지루할 틈은 없었다. 그녀가 주방을 들고 날 때는 고객들의 손길로 흐트러진 매대 초밥들을 순식간에 절도 있게 정리 정돈했다. 고수의 기술!


첫 번째 할 일은 냉동고에서 다음날 필요한 재료를 카트에 담는 일. 냉동 흰 살 생선, 냉동 연어, 냉동 초밥용 손질한 새우, 유부, 두툼한 계란말이, 맛살, 생선알, 조리 후 깍둑 썰기한 치킨 등등. 스낵 간식용인 냉동 만두와 치킨 꼬지, 미역무침과 초밥용 생강까지. 두 번째는 야채 챙기러 냉장고로 공간 이동. 오이, 파프리카, 단단한 애플 망고(샐러드용). 식초, 마요네즈, 생치즈, 각종 소스들을 챙기면 . 주방으로 돌아와 본 업무 시작. 순서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그사이 두 차례 밥을 짓고, 여러 가지 일을 동시 진행한다. 항은 자기가 한번 보여준 시범을 잊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순서가 틀리기라도 하면 매의 눈으로 지적한다. 고개도 안 돌리고. 자기 일도 계속하면서. 직접 겪으면 진짜로 소름 돋는다.



항의 시범 1(제가 아니고요!^^;;;)



매일의 과제는 세 단계. 먼저 스낵 세 가지 준비하기. 야채 만두, 치킨 만두, 치킨 꼬지를 포장하고 회사 로고가 찍힌 스티커를 붙인다. 각종 소스도 준비. 미역무침과 생강. 연어와 참치도 물기를 꼭 짜서 마요네즈와 버무리기. 그 사이 빈 플라스틱 통들은 식기 세척기에 넣고 돌리고 빼서 물기를 제거한다. 매뉴얼대로 밥을 두 번 저어주고, 수시로 밖의 매대도 확인하다. 이 모든 첫 과정에 걸리는 시간은 대략 두 시간. 두 번째는 오이 등 다섯 가지 야채 썰기. 꼼꼼하게 써는데 두 시간. 항은 나보다 2배는 빠르게 해치운다. 한 과정이 끝나기 직전 질문과 지시를 동시에 날린다. 끝? 다음! 두 시간을 꼼짝 않고 서서 일하면 멀쩡하던 무릎도 시큰해진다는 걸 알았다. 휴식을 외칠 시간. 주방 밖에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온다.


남은 두 시간은 청소에 전력투구. 주방 작업대, 아래쪽 전면을 세 단계로 청소한다. 세제 물로 닦고, 마른 티슈로 다시 닦고, 알코올로 마무리. 바닥 청소와 유리창까지 깨끗이 쓸고 닦을 때 깨가 미워지는 순간이 온다. 타일 사이사이에 깨알같이 박혀서 속을 썩이기 때문. 바닥은 깨와의 전쟁. 공간이 작아서 진공청소기는 없다. 비로 싹싹 쓸어 담고 밀대로 마무리. 식기 세척기와 대형 휴지통 세 개까지 말끔히 비우고, 쓰레기를 버린 후 마지막 임무는 물품 공수. 사이즈별 초밥 포장재, 쌀, 김, 깨, 티슈, 젓가락, 등등. 주방 수납공간이 충분하지 않아 다음날 쓸 만큼만 들고 와야 한다. 재고를 미리 파악하고 가는 게 핵심. 항은 무엇을 얼마만큼 들고 올 지 정확히 안다. 나는 무심하게 갔다가 꼭 두 번 걸음 하는 타입. 물품들을 주방의 서랍에 채워 넣으면 끝.


지금까지 딱 세 번 항에게 칭찬을 들은 건 역시 청소 덕분이었다. 한 눈 안 팔고 열심히 한다고. 땀도 흘려가면서. 그것이 하루의 끝은 아니다. 매장 마감. 하루 매출을 모니터로 본사에 클릭해서 보낸다. 그전에 재고도 살핀다. 초밥은 이틀 판매가 가능하다. 날짜를 확인하고 그날까지 유효기간인 음식들은 전산으로 폐기 처분한다. 사실 그럴 일은 별로 없다. 초밥은 완판 되는 날이 많다. 토요일에 남는 게 있으면 항이 나에게 다. 그럴 때면 정이 느껴지는 순간이다. 항은 초밥 포함 어떤 먹거리에도 관심이 없다. 날생선과 김 비린내를 싫어한다고. 마지막은 서류 정리. 마감 전 매대가 비면 메뉴에 가격표를 출력해서 다시 채우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초밥을 추가로 만들 때도 있다. 가격은 착하지는 않다. 기대했던 매장 할인, 직원 할인은 없었다.



항의 초밥 솜씨!



한 번은 내가 초밥, 초밥 하니까 항이 30분 일찍 출근하란다. 자기가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캘리포니아 롤을 말고, 연어 초밥을 만드는데 동작이 어찌나 빠른지 사진 찍기도 바빴다. 연달아 두세 번 시범을 보여주고 해 보란다. 롤이야 그렇다 치고, 내가 연어 초밥 두 개를 쥐고 연구를 거듭하는 사이 다섯 통을 끝내버리던 그녀. 초밥은 자태가 중요한데.. 고민하는 나에게 아침 근무 포기를 종용하던 그녀. 보나 마나 초밥 포장만 다며. 자기처럼 매장 관리나 하란다. 난 싫다. 토요일 저녁 8시 근무는 밀물처럼 근심을 몰고 왔다. 단 두 주만에. 우선 엄마가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일해서 싫다는 아이의 불만이 접수되었다. 두 분 시어머니는 애꿎은 초밥에 애증의 연타를 날리시고. 다른 일을 찾으면 안 되겠니? 우리를 못 보시는 게 초밥 탓이라도 되는 것처럼. 가을처럼 깊어지는 고민.


최근 레겐스부르크의 새어머니는 왼쪽 무릎이 급격히 안 좋아지셨다. 오전에는 걷지도 못하신다.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쓰시던 보조기를 친구에게 대여했다가 급히 찾아오셨다. 이럴 땐 즉시 달려가야 맞는데. 이럴 때일수록 마음으로 의지할 사람이 필요한데. 퇴근 후 전화로 안부만 여쭙는 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즉시 연락하시라 말씀드려 사양하시는 어머니. 오후가 되면 움직일 수 있고, 오른쪽 다리로 운전도 가능하고, 집에 비축한 음식도 충분하다고. 조만간 무릎 수술도 고려 중이시다. 친어머니 카타리나도 요즘 살짝 외로워하신다고 시누이 바바라가 전해주었다. 왜 아니시겠나. 매주 가던 우리를 못 보시니. 정작 어머니는 표를 안 내시고 양아버지 핑계만 대셨지만. 매일 아침 눈만 뜨면 우리 언제 오냐고 물으신다고. 다음 주 일요일에 찾아뵙기로 했다.


결단을 내리는 건 어렵지 않다. 사직서도 필요 없다. 초밥 회사와는 아직 계약서를 쓰지 않았다. 들고나는 사례가 많아서인지 구비 서류만 내고 계약서는 나중에 쓰자고 했다. 일을 먼저 시작해보고 계약서를 쓰는 것 같았다. 이런 경우도 처음이었다. 보통은 하루 정도 일해 보고, 계약서부터 쓰는데. 길게 갈지 말지 서로 신중하게 결정하자는 뜻인가 보았다. 항에게 물으니 걱정 말란다. 일당 다 챙겨준다고. 독일에서 주 6일 근무는 흔한 경우가 아니다. 오래갈 직원을 구하기가 쉬울 것 같지는 않았다. 아시아계 직원을 구하는 이유도 이것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시어머니 두 분의 뜨거운 애정이 문제라면 문제. 초밥의 날개를 펼쳐보기도 전에 녹아버릴 같아서. 잃을 것은 없다. 추락만이 답인 이카루스의 날개도 아니고. 사실 펼쳐야 할 날개는 초밥이 아니고 글밥 인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삼주 차인 오늘도 항과 일하라는 문자를 일요일 오전에야 받았다. 지난주 그녀는 내게 섭섭함도 없이 시원하게 작별을 고했는데. 그러니 이건 내 뜻이 아니야, 항!



항의 시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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