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엉뚱한, 초밥의 세계

마트 초밥 매대 1

by 뮌헨의 마리


팔월 한 달을 쉬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일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나의 재발견. 새 알바는 오후에 출근하는 마트 안 초밥 코너. 즉석 초밥은 아니고.


매장의 초밥! 동료가 첫 출근 기념으로 주었다.



나는 새벽 출근을 좋아한다. 하루를 일찍 시작할 수 있고, 나 자신이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자존감으로 충만해지고, 오후 2~3시면 일이 끝나기 때문이다. 작년 9월부터 만 1년 동안 세 곳의 직장에 새벽 출근을 했다. 작은 호텔, 독일 관청 구내식당 칸티네, 요양원 주방. 그들의 세계는 박진감이 넘쳤지만, 처음 해보는 일이라 일도 사람도 버거울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후회는 다.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일하는 이민자 여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다. 그리하여 여름 내내 구직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팔월 한 달을 쉬면서 드는 생각은 단 하나. 일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나의 재발견이었다.


입에 맞는 떡은 없나 보다. 올여름 구직을 하며 느낀 점이다. 근무 조건이 괜찮은 곳은 이력서를 보내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한 곳은 8월 초에 이력서를 보내고 한 달 만인 8월 말에 연락이 왔다. 초밥 회사와 두 번의 미팅이 끝나고 다음날 출근을 앞두고 있는데. 타이밍을 그리 못 맞추나.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인력회사를 통해 떠돌아다니는 일 말고 한 곳에서 일하고 싶다는 바람은 나를 초밥의 세계로 안내했다. 뮌헨에는 빈자리가 없다는 본사 매니저를 통해 뮌헨의 담당자와 인터뷰를 것도, 아침 근무는 자리가 없지만 오후 출근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담당자에게 'In' 뮌헨을 적극적으로 부탁한 것도 나였다.


초밥 회사에 관심을 둔 것은 작년 봄의 일이다. 독일에 와서 첫 알바를 시작할 때였다. 독일 전국 대형 마트 안에 신선한 초밥을 납품하는 체인 회사였다. 공동 대표는 독일인 2명. 작년 팔월 한국을 다녀온 후 가을부터 일하고 싶다고 문의를 했는데 그때도 뮌헨 시내에는 자리가 없다고 해서 포기했다. 올해 팔월에 다시 그곳이 생각났다. 심오한 고민 끝에 얻은 결론은 아니고, 거기서 일하면 초밥 레시피라도 남겠지 하는 나름의 계산 때문이었다. 세 곳의 주방을 돌아 그렇게 초밥의 세계로 돌아왔다. 누가 오라고 초대한 건 아니지만 궁금한 건 도전해 봐도 안 되겠나. 나이에 누구 눈치 볼 아니고.



둥근 도시락은 매장에서 파는 초밥 샐러드(왼쪽). 맨 밑에 밥을 깔았다. 빨간 건 연어. 건너편 흰 색은 애플 망고. 전날 내가 썰었다!



첫 출근은 2020년 9월 1일.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였다. 6시간 근무. 두세 달은 여러 매장을 돌며 일을 배운다고 했다. 각 매장 근무는 평균 2주. 시간당 수당은 주방보다 적다. 전국 체인망을 갖춘 회사 규모에 비해 짜다는 인상.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런 게 사회 공부지. 돈 받고 독일 사회를 경험하는 방법. 초밥이라도 배우면 남는 장사 아닌가. 초밥집 사장님을 꿈꾸는 것도 아니니까. 초밥을 즐기지 않는 나와는 달리 파파를 닮았는지 아이는 초밥을 좋아한다. 집 근처 베트남 식당에서 자주 사 와서 먹기도 한다. 날씬한 김밥 안에 연어가 든 걸로. 아이 혼자 배부르게 먹는 비용은 9유로. 팁 1유로를 합하면 10유로다. 내 전략은 이렇다. 초밥을 배운다. 집에서 만든다. 초밥 비를 아낀다. 와우!


첫 출근은 뮌헨의 대형 마트. 집에서 버스로 15분이지만 정류장에서 마트까지 걷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대략 30분. 이틀을 출근하자 오후에 혼자 매장을 책임지던 50대 베트남 여성 동료 항이 30분 일찍 출근하고 30분 일찍 퇴근하란다. 그래서 내 출근은 오후 12시 30분에서 오후 6시 30분이 되었다. 토요일 오후도 출근해야 하는데 독일의 마트들이 토요일도 문을 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 근무일은 주 6일에 하루 6시간 근무가 되었다. 근무조는 2교대. 새벽 근무조가 각종 초밥을 만들고 점심 무렵 퇴근하면, 오후 조는 다음날 재료를 준비하고, 매장을 깔끔하게 정리정돈하고 청소를 한 후 마감까지. 고객을 응대할 일은 없다. 질문도 거의 없다. 직접 골라서 마트 계산대에서 계산하면 끝.


내가 게으른 사람이라는 자각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 집에만 있으면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원하는 건 다 될까. 결론은 어림도 없었다. 게으름이 문제였다. 생활의 리듬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일은 하고 일일 계획표는 지킨다? 내겐 불가능했다. 좋은 방법은 외부로부터 자극을 만들어 놓는 것. 일하는 시간을 빼고 나머지 시간을 밀도 있게 쓰는 방법이 나을 것 같았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를 좋아하지 않는 내가 마트 안에 오아시스처럼 존재하는 작은 코너 안에서 일하는 것을 견딜 수 있을까.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요즘 나는 2주째 야채를 썰고 있다. 시간이 걸리는 건 의외로 오이. 오이 서른 개를 굵직하거나 날씬하게, 깍둑썰기와 껍질만 채썰기 신공을 발휘 중이다. 색색의 파프리카와 애플 망고와 잔파와 루콜라까지 종횡무진 칼질하며 속으로 궁금해하는 다음 주는 어느 매장? 떠돌아다니는 건 싫다고 해놓고.



집 부근 베트남 식당에서 파는 초밥(위). 여섯 개가 3유로. 맛있다! 아래는 우리 매장에서 파는 만두, 우동, 초밥 종류(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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