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마지막 햇살의 고요하고 슬픈 아름다움은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가! (이반 부닌의 <아르세니예프의 인생> 중에서.)
뮌헨의 저녁 7시 이자르 강변 공원
이번 달 근무일수가 2주밖에 안 된다는 것을 안 것은 칠월 초의일이다. 원래는 4주 동안 일하게 되어 있었다. 이전 근무표는 유월에 나왔다. 그런데 일정이 변경된 것이다. 내가 휴무를 받은 동안갑자기. 그동안 요양원 주방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유는 코로나 때문이었다. 직원 대다수가 외국인이라 본국으로 여름휴가를 가려던 이들이 연말까지 휴가를 보류하거나 반납했다고한다. 결론은 일손이 남는다는 것.
요양원이 외부인에게 개방하던 직원 식당 카페테리아도 연말까지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 그 말은 코로나 기간 동안 한시적으로 중지하던 뷔페식 샐러드바를 연말까지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 주방의 일거리가 줄어드니 인원도 감축하려는 것이다. 비정규직 직원은 나와 마누엘 둘 뿐이었다. 우리 중 하나가 나가야 할 상황. 주방은 마누엘의 손을 들어주었다. 충분히 예상은 했다. 마누엘은 8년 차 베테랑 직원이었다.
처음엔 놀랐지만 받아들이기로했다. 코로나 시대 아닌가. 어떤일도 생길 수 있지.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는 법. 100% 좋은 일도, 100% 나쁜 일도 없다.찾아보면 다른 일도 있겠지. 서운한 마음은 일찌감치 버렸다. 사람의 일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이므로.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수많은 비정규직들이 겪는 일이므로. 그래도 노파심에서 물었다. 혹시 제가 실수라도? 그런 건 아니란다. 그럼 됐다.
해질 무렵 우리집 옆의 공원
근무표가 바뀌기 직전 나이 많은 동료 굴헨에게 요양원 주방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말을 꺼낸 건 실수였다. 본전도 못 건졌다. 그런 것도 지나면 추억으로 남으려나. 그녀의 말도 안 되게 직선적인 성격까지. 그녀는나 자신을 알라고 했다. 정규직이 되기엔 턱 없이 모자란 실력을 강조하며. 다른 일을 찾는 게 나에게도 좋고 주방에도 좋을 거라는대못 박기로 엔딩.차근차근 배우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은금방 바닥으로 떨어졌다. 칠월의시작은 그랬다.
이후 마누엘도 칠월까지만 일하고 그만둔다는 소리를 들었다. 내가 정규직 얘기를 꺼낸 날, 귤헨이 마누엘에게 왜 정규직 제안을 거절하냐고 물었다. 나도 궁금했다. 이유는 한 곳에서만 일하면 지루해서라나. 마뉴엘은 일도 많고, 사람도 많은 회사 주방 칸티네를 선호했다. 가장 좋은 건 주중 칸티네, 주말 요양원근무라고했다. 일명 투잡. 저런 성실파가 있나. 마누엘의 주말 요양원 근무는 받아들여졌다.
나중에 안 것은 귤헨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의 여자 동료, 미라와 쿠키는 나와 계속 일하기를 바랐다. 그 사실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일을 계속하게 되는 건 아니지만. 나처럼 몇 개월을 버틴 사람이 없었다는 얘기도 미라에게 들었다. 심하면 하루 이틀, 잘하면 한두 주만에 거의 그만둔다고. 매번 새로운 직원과 일하는 고충도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라고 했다. 쿠키는 내게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 하고, 마누엘은 자기 회사를 추천했다.
이자르 강변 산책로
귤헨과 어떻게 헤어졌는지도 말해야겠다. 그녀와는지난주 금요일이 마지막이었다. 미라와 나와 귤헨이 같은 조였다. 보통은 내가 먼저 퇴근하는데 그날은 귤헨이 바쁜 일이 있었는지 주방 일을 끝내고 셋이 나란히 탈의실로 갔다. 고민이 깊어졌다. 마지막 멘트는 어떻게? 다시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과 현명하게 헤어지는 방법은 뭘까? 마지막이니만큼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할 만큼 했고, 들을 만큼 들었다.
그녀도 같은 고민을 했던가 보다. 내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 그녀는 바람 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미라에게 작별 인사를 대신 남기고. 귤헨과 넉 달 동안 일하며 가장 고마운 순간이었다. 덕분에 미라와 충분히 작별의 말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귤헨이 있었다면 둘 다 속마음을 드러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첫날에 자기들과 함께 일하자고 제안했던 것도 미라였고, 마지막까지 나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좋았다고 말해준 것도 그녀였다.
사람 일이란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것. 어찌 알았을까. 내 근무는 연장되었다. 원래는 오늘이 마지막 근무였다. 그런데 귤헨이 아픈모양이었다. 심각한 건 아니고 위내시경 검사를 받고 쉰다고. 다음 주까지그녀의 대체 근무를 하게 되었다. 살다 보니 그녀에게 고마워할 날도 있구나.요양원 정원 입구를 지키는 보리수나무를 며칠 더 볼 수 있다는 건 좋은 일. 단풍 들고, 찬바람과 눈과 서리와 함께 한겨울을 버티는 모습까지는 못 본다 해도. 요양원 가로수길을 며칠 더 걷는 것도좋다. 가을날 길바닥에 가득할 낙엽은 못 본다 해도.이별이 그리 쉽나. 퇴근 후 매일 들르는 성당 옆 야외 테이블과 체리 나무와도 작별의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뮌헨의 새벽 5시(왼쪽)과 저녁 9시(오른쪽).
아, 마지막 햇살의 고요하고 슬픈 아름다움은 얼마나 가슴에 사무치는가!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 모든 사람은 우리에게 고통을 안겨준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 늘 두려워한다!
왜 인간은 유년 시절부터 먼 곳, 탁 트인 넓은 공간, 깊은 곳, 높은 곳, 미지의 것, 위험한 것에 끌리는 걸까? 왜 인간은 삶을 흔들어놓고, 뭔가를 혹은 누구를 위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에 끌리는 걸까?
(초록 부분은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이반 부닌/문학동네)>에서 인용함.)
오른쪽은 은윤 화가의 작품. 코로나 시대의 예술가들을 지원하기 위한 전시회 '안 팔리면 불태운다 프로젝트'로 사라졌다. 저토록 아름다운 그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