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슈타트는 산 아래 호숫가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만들어진 작은 마을이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비치는 마을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호숫가에서 바라본 할슈타트 전경(위) 케이블카로 올라간 산 위에서 본 할슈타트 전경(가운데) 할슈타트 마을 입구와 광장(아래)
시월의 첫 번째 주말에 오스트리아 할슈타트 Hallstadt에 다녀왔다. 뮌헨에 사는 현경이 가족과 함께. 현경이는 2년 전 한글학교에서 만난 아이의 친구다. 여행은 토요일 아침에 출발해서 저녁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토요일인 10.3일은 독일 통일의 날이었다. 한글학교도 쉬고, 현경네와도 시간이 맞아 망설이지 않고 떠났다. 아이는 학교에서 발표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볼멘소리를 냈지만, 차 떼고 포 떼고 여행은 언제 하나. 삶에는 우선순위가 있는 법. 그중의 하나가 여행이 아닐까. 기회가 오면 무조건 붙잡고 볼 일.
아침 8시 출발은 현경네도 우리도 쉽지 않았다. 토요일은 한글학교에 맞추어 아이를 아침 8시 30분까지 자도록 한다. 금요일 저녁은취침 시간인 밤 9시를넘기기 예사여서 아이는 그날 아침도 7시 반에 일어나는 게 힘들어 보였다. 현경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현경네 차로 9시에 출발. 오전 11시 20분 할슈타트 도착.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이야기꽃과 웃음꽃으로 차 안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우리 남편은 못 가고 현경 파파와 집 앞에서 반갑게 악수만 나누었다. 우리가 현경네와 여행을 가는 것은진심으로반기는 눈치였다.
전망대가 있는 할슈타트 산 위 레스토랑(위) 케이블카로 올라가는 할슈타트 소금 광산과 현경네가 기념으로 사 준 마그네트(아래)
그날은 날씨가 흐렸다. 춥지 않고 비만 안 와도 어디냐, 최악의 경우엔 비 오는 호수도 멋있겠지 생각하며 출발했다. 다행히 날씨는 춥지 않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800미터 산 위까지 올라갔다. 그 산속에 소금 광산이 있었다. 소금 광산은 온라인과 오프 라인 티켓이 모두 매진되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아쉽지 않았다. 유명하다고 다 봐야 하는 건 아니니까. 소금광산 근처 산 위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었다. 유명 관광지라 기대를 안 했는데 주문한 메뉴가 다 맛있어서 놀랐다. 돼지고기 요리와 굴라쉬 수프, 아이들의 비엔나 슈니츨(돈가스)와 심지어 미트소스 볼로네제 스파게티까지.
할슈타트는 산 아래 호숫가에 난 좁은 길을 따라 만들어진 작은 마을이다. 거울처럼 맑은 호수에 비치는 마을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보통 잘츠부르크와 연계해서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많다. 산 위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고 레스토랑 전망대에서 할슈타트와 호수 건너편 산과 마을까지 볼 수 있다. 다시 케이블카로 할슈타트 마을로 내려왔다. 코로나 이후 오랜만에 관광버스를 본 것도 놀라웠다. 여름도 지난 시월에 관광버스가 올 정도라니. 할슈타트의 명성을 짐작하고도 남을 대목이었다. 산에서 점심을 먹을 때쯤 해가 나왔다. 그날 날씨는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눈 빼고 다 보았으니까. 먹구름, 해, 비, 안개, 노을과 무지개까지.
호숫가를 따라 조성된 할슈타트 거리와 기념품 가게들. 아이는 현경네에게 비누까지 선물로 받았다.
할슈타트 호수 앞에 서자 노랗게 물들어가는 가로수 잎들이 햇살에 반짝이며 몸을 흔들었다. 우리는 호수 앞을 떠나지 못하고 한참을 머물렀다. 호수를 따라 시내를 걷는 일은 잠시 미루어도좋았다. 영원한 순간이란 없으니까. 마음을 붙잡는 풍경 앞에 멈추어 서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여행이란 그것을 배우고자 떠나는 게 아닐까. 바람이 호숫물을 철썩이고, 물보라가 일고, 호수 앞 벤치까지 물방울을 날리는 일. 바람이 작은 잎들을 흔들 때 마음은 또 왜 대책 없이 흔들리는지. 나뭇잎에 닿은 햇살이 보석처럼 반짝일 때 얼굴은 왜 금세 환해지는지. 아이들이 벤치에서 놀 때 어른들이 맞이한 건 충만한 고요.
오후에는 아기자기한 할슈타트의 거리를 걸었다. 유리로 만든 푸른 병들. 그 속에 든 모래처럼 고운 하얀 소금들. 호수를 따라 걷는 좁고 긴 거리를 장식하던 건 장미와 부겐벨리아 꽃들이었다. 누군가가 장난스레 비누 가게 앞 철제 통에 올려놓은 붉은 꽃잎도. 아이들은 1611년에 짓고 1981년도에 리노베이션 한 비누 전문 선물가게 안에서 오래 머물렀다. 마을 안쪽의 광장까지 도착하자 날이 흐리고 비까지 흩뿌렸다. 호수가 바라다보이는 호텔 카페에서 아이들은 핫초코를, 어른들은 카푸치노와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이토록 놀라운 변신이 있나. 다시 늦은 오후의 거리로 나서자 호수도, 하늘도, 마음까지 비에 젖어 촉촉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흐린 호수의 빛!
뮌헨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장 먼저 나를 흔든 건 깊은 안개. 2017년도 노벨상 수상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파묻힌 거인> 속 짙은 안개가 떠올라서였다. 삶이라는 안개. 가족이라는 안개. 부부라는 안개. 친구라는 안개. 관계라는 안개... 그 속에 감추어진 진실을 캐는 과정은 필요한 것일까 아니면 반대일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려는 찰나 순식간에 옅어져 가는 안갯속에서 우리는 보았다. 우리 앞에 펼쳐지기시작한 황금빛 석양을. 그 눈부신 마지막 소멸을. 번뇌와 망상은 일시에 사라졌다. 무슨 말이 필요하랴. 우리는 각자 소원을 빌었다. 거기에 공통의 소원도 하나 보탰다. 현경이 가족이 오래오래 뮌헨에 살게 해 주시길.
하마터면 그것이 끝인 줄 알고 눈을 감고긴장을 놓을 뻔했다. 무지개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무지개를 가장 먼저 본 건 나였다. 석양은 우리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왼쪽 차창으로는 산들이 비현실적인 황금빛과 짙은 푸름 속에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내가 앉은 왼쪽 창가 뒤쪽으로 무지개가 보였다. 무지개는 우리가 지나온 하늘의 절반을 덮고도 남을 정도였다. 그 무지개를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대미를 장식한 건 다시 출현한 안개의 군무. 산자락을 비단처럼 휘감으며순식간에 땅으로 내려와 우리를지나치던 안개. 안개는 우리마음을 황홀하게 홀린 후 제멋대로 휘저어놓고 멀리 저 멀리 사라져갔다. 인생은 안개다. 찬란한 석양과 무지개가 보물처럼 숨겨져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