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퇴원입니다

편지 59

by 뮌헨의 마리


4년 전 샘과 자주 걷던 한강변도 기억합니다. 그 햇살, 그 바람도요. 빨리 회복해서 다시 그 강변을 걸어보고 싶어요. 샘과 함께요!



2017.1월 샘과 한강변을 산책하던 날의 사진. 벌써 4년 전의 일입니다.



그리운 샘!


2021. 1. 5. 드디어 퇴원을 합니다. 보름 만이네요. 전날 오후엔 그동안 계속 달고 있던 림프 줄도 뗐습니다. 얼떨떨했어요. 실감이 잘 안 나서요. 다행스럽게도 두 다리의 부종은 차츰 나아지고 있답니다. 발목 돌리기와 가볍게 발끝 두드리기를 같이 했더니 왼쪽 다리는 금방 원 상태로 돌아왔어요. 오른쪽 다리는 계속 부기가 안 빠지다가 그제부터 조금씩 나아지고 있고요. 수술 후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습니다. 혈압이 정상으로 돌아왔어요. 수술과 맞바꾼 귀한 선물이니 앞으로도 잘 관리할 생각이에요. 오늘 아침 제 담당샘이 크리스마스 휴가를 마치고 오셨더군요. 2주 동안 저를 괴롭히던 명치의 괴로움, 위의 고통과 아픔에 대해 말씀드렸더니 항생제 탓이래요. 집에 가서 항생제를 줄이면 차츰 나아질 거라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암 요양원에서 일하는 절친 M에게 들은 얘기가 생각났어요. M이 그랬거든요. 위 아픈 거 다 항생제 때문이라고요. 먹어도 위는 쓰리고 아픕니다. 이것도 익숙해져야 할 과정이겠지요.


예상대로 대수술이었어요. 수술을 결정할 때 고민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마음 같아서는 수술 날짜를 미루고 석 달 정도 매일 걷고, 식이요법을 하고, 온열치료를 하며 체력과 면역력을 최고치로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그렇게 쭉 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어요. 어차피 제 생활습관에서 비롯된 병이니 습관을 100% 바꾼다면 더 나빠지기야 하겠나 싶었거든요. 지금 생각해도 수술을 몇 달 미룬다고 암이 어떻게 되는 건 아니었을 텐데요. 암이 몸속에 있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요. 말을 듣고 클레멘스는 사색이 되더군요. 시부모님과 시누이와 그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거냐고,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할 거라고 말리더군요. 클레멘스 역시 제가 수술을 거부할까 봐 걱정이 되었겠지요. 배우자를 설득하는 게 가장 어렵더군요. 천만다행으로 수술은 잘 끝났지만, 다시 하라면 안 하는 쪽을 선택할 같아요. 할 때 하더라도 이렇게 서두르지는 않을 거예요. 미리 공부도 하고 건강한 방법을 먼저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테니까요. 수술은 번 하면 되돌릴 수가 없잖아요. 다른 장기에 주는 부담도 너무 크고요. (수술을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아쉬움은 남지만 제 스스로의 선택이었으니까요. 중요한 건 앞으로 가야 할 길입니다.)


수술을 결정한 후 언니는 본격적으로 암에 관련된 책을 수십 권 사서 읽기 시작했지요. 일단 암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공포에서 해방될 니까요. 읽은 책은 제게 DHL로 보내주고 있어요. 마치 2인 1조 경기의 한 팀 같아요. 덕분에 암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 빠지지 않고 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거기다 암이라고 다 죽는 건 아니라는 확신까지 얻었고요. 암은 죽는 병이 아니고 반드시 나을 수 있다는 의지도 곱빼기로 다졌지요. 언니가 자신의 일을 팽개치고 저한테 달려오지 않도록 말린 건 정말 잘한 것 같아요. 기왕 암이라고 하니 이참에 도대체 암이 무엇인지 제대로 공부해 보려는 시도도 좋았어요. 결론적으로 언니에게도 제게도 암공부는 최고의 선택이었어요. 언니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요가와 명상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암은 우리의 실생활에 가깝게 있으니까요. 어느 가족이든 암환자 한 명 없는 집을 찾기는 힘들잖아요. 암의 메커니즘을 이해할수록 왜 호흡이 그토록 중요한지, 어떻게 깊은 호흡을 해야 하는지, 왜 산책이나 유산소 운동이, 산소가 그토록 중요한지 알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어요.



제목만 보아도 힘이 난다고 언니가 말했습니다.



!

그동안 알리시아는 크리스마스 때는 현경네와 카타리나 할머니 댁에서, 연말연시에는 레아마리네에 초대받아 신나게 눈썰매를 타고 왔답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이번에는 절친 율리아나의 생일이라며 그 집에 가서 이틀 밤을 자고 집에는 돌아올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엄마의 퇴원과 함께 귀가할 것 같네요. 현경네도 레아마리네도 율리아나네도 제가 가장 먼저 암 소식을 알린 이들입니다. 고민하지 않고요. 어려운 소식을 어렵지 않게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고마웠어요. 그들에게서 특별한 도움과 배려를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답니다. 내일은 조카가 달려온대요. 가장 먹고 싶은 순서대로 국을 끓여준다네요. 저는 뜨거운 미역국이 가장 먹고 싶어요. 납세미나 조기 같은 생선을 넣은 미역국이요. 조카가 좀 고생을 할 거 같네요. 그런 미역국은 안 먹어봤을 거니까요. 그리고 닭을 푹 고아 기름기 좔좔 흐르는 국물도 먹고 싶어요. 이건 어렵지 않을 거 같고요. 생각만 해도 하루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네요.


병원 생활이라고 해서 지루하고 심심하기만 했던 건 아닙니다. 지난 2주간 병원에서 가장 바빴던 시간은 저녁입니다. 아침을 먹고 나면 복도를 걷고, 점심을 먹고 다시 걷고, 오후에 또 걷고, 저녁을 먹고 나면 한 번 더 걷습니다. 오래 걷지는 못합니다. 수술 부위가 당겨서요. 천천히 10~15분 정도 걷습니다. 병원이라 저녁은 빨리 먹지요. 오후 6시만 되어도 일과가 끝납니다. 그때가 제가 바빠지는 시간입니다. 바바라가 전화를 합니다. 제 상태가 궁금하기 때문이지요. 질문은 끝이 없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집에 가면 매일 전화하지 말라고 했어요. 다음에는 힐더가드 어머니입니다. 병원에 있다고 해서 매일 안부 전화를 빼먹을 수는 없지요. 수술 후 둘째 주부터 제가 저녁 전화를 드립니다. 클레멘스가 전화를 안 드려서요. 하도 습관이 되니 일 같지도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카타리나 어머니의 전화가 옵니다. 제가 궁금하셔서요. 그래서 둘째 주는 매일 시댁 식구 세 명과 저녁 통화를 했답니다. 참 바빴어요. 귀가하면 이것도 줄일 생각입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피곤하더라고요. 한국 가족들은 제가 힘들까 봐 전화도 안 하시는데요.


샘.

연말에는 언니가 엄마를 모시고 샤부샤부를 먹으러 갔대요. 샤부란 말만 듣고도 눈 앞에 한 상이 차려지더군요. 보글보글 끓는 육수. 얇게 저민 소고기. 싱싱한 야채. 입맛대로 골라먹는 소스. 면을 삶을 차례가 지나면 짙어진 육수에 고소한 김가루를 뿌린 따끈한 죽. 생각만 해도 배가 불렀어요. 그중에서 제일 그리웠던 건 뜨거운 샤부 국물 한 사발이었답니다. 명치가 많이 아플 때였거든요. 언니에게 심드렁하게 맛있었냐고 던지니 눈치도 없이 너무너무 맛있었다고 하네요. 뿔이 나서 악마 이모티콘을 다섯 개나 쏘아보냈답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 음식이 얼마나 다양한지, 국물 요리는 또 얼마나 많은지, 독일에서 가장 그리운 건 한겨울에 생각나는 국물들입니다. 결코 혼자 먹을 수 없는 음식이지요. 샘과 먹던 음식들도 생각나요. 여의도에서 생선구이를 자주 먹었죠. 마지막으로 먹은 보리굴비 맛도 잊지 않고 있답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에 걷던 한강변도 기억합니다. 4년 전 어느 날 샘과 걷던 강변길, 그 햇살, 그 바람도요. 빨리 회복해서 다시 그 강변을 걸어보고 싶어요. 샘과 함께요! 곧 부산으로 내려가신다고 들었어요. 부산에서는 Y언니와 온천천도 자주 걸으시겠지요. 그 길 위에 저도 함께 서고 싶습니다. 그럴 날이 곧 올 거예요. 믿고 기다려주세요.



레아마리 동네에서 신나게 눈썰매를 타는 아이들! 작년에는 스키를 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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