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꽃 한 송이

편지 60

by 뮌헨의 마리


드디어 장미 정원, 로젠 가르텐에도 들렀습니다. 장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지나고 있더군요. 못다 핀 장미 한 송이도 보았지요. 우리 각자가 아직 다 피우지 못한 꽃송이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뮌헨의 이자르 강변 장미 정원.


그리운 샘.


오래전 3년 정도 채식주의자로 산 적이 있습니다. 불교 공부를 시작할 때였죠. 30대 중후반 때였어요. 큰 고민 없이 내린 결정이었는데 오래 지속하진 못했어요. 클레멘스가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곧 알리시아를 가졌고요. 채식주의자로 산 기간이 짧아서인지 채식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지는 못했어요. 아무 거나 생각 없이 먹고 살아온 몸은 50이 넘으니 정확하게 정산을 해서 돌려주네요. 뮌헨에 온 후로 훌륭한 산책로를 옆에 두고 3년을 집에만 칩거한 결과도 책임이 고요. 암이 아니었다면 계속 그렇게 살았을지도 모르니 인생에 100% 나쁜 일이란 없나 봅니다.


저는 요즘 잠을 충분히 자려고 노력합니다. 저녁 8시에 힐더가드 어머니와 통화를 하고, 반신욕이나 냉온욕을 하고, 밤 10시에는 침대로 가려고 노력하지요. 30분쯤 책을 읽으면 잠이 옵니다. 자다가 화장실 때문에 잠이 깰 때는 복식 호흡이 다시 잠드는데 도움이 됩니다. 아침 7시에는 풍욕을 합니다. 자전거 타기로 워밍업을 하고, 유튜브로 15분간 스쿼트도 합니다. 동작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몸과 마음이 가볍습니다. 당근 비트 주스나 몇 가지 익힌 야채로 해독 주스를 마시고, 아침에는 과일을 많이 먹으려고 노력합니다. 물 한 잔, 과일 하나 더 먹는 습관도 노력이 필요하네요.


필터만 갈면 되는 간단한 정수기도 마련했습니다. 이곳 수돗물에 석회가 많아서요. 오전에는 따뜻한 차를 많이 마십니다. 아침에 마시는 차 한 잔은 장의 움직임을 돕는지 수술 후 움직임이 적은데도 변비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난주부터 림프 테라피도 받고 있어요. 아랫배에 림프액이 모여 더부룩하거든요. 배에 가득 찬 림프액이 빠지는데 얼마나 걸릴지는 물리치료사에게 물어봐도 모른대요. 대충이라도 알려주면 좋겠는데 모른다고 무 자르듯이 잘랐어요. 사람마다 다르다고요. 사람마다 다른 걸 누가 모르나요. 하여튼 융통성이 없어요. 제가 마사지를 안 좋아해서 그런지 1시간이 니다. 다음 주까지 매주 2번씩 가야 합니다.


물리 치료사들에게 배운 누워서 자전거 타기와 발끝 움직이는 동작도 자주 합니다. 자전거 타기는 아침저녁으로 하지요. 테라피 첫날에는 눈이 엄청 와서 클레멘스와 같이 차로 갔는데 둘째 날부터는 혼자 버스를 타고 갔어요. 테라피 시간이 주로 점심시간 때라서요. 버스로 5분도 걸리지 않고, 테라피 하는 건물이 버스 정류장 앞이라 어렵진 않아요. 이번 주부터는 산책 겸 걸어서 가볼까 싶어요. 독일도 가게 안에 들어갈 때와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써야 합니다. 현재는 강력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써야 하지요. 푸른색 치과용 마스크는 안 되고요. 요즘 독일은 영국발 바이러스 때문에 긴장하는 분위기랍니다. 그럼에도 매일 산책을 가려고 노력하지요. 산책길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거리두기가 잘 지켜지거든요.




샘.

샘께서 사 주시는 보리굴비는 언제나 감사하지요. 제가 한국을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도 생선구이 때문이니까요. 집에서 친정 엄마가 구워주시는 조기와 갈치의 맛! 그리고 샘과 먹는 생선구이의 맛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겠어요. 고기는 안 먹어도 살 수 있지만 생선은 거부할 수 없지요. 인생의 즐거움 중 하나니까요. 요즘은 전보다 유제품을 적게 먹으려 노력합니다. 그래도 계란은 가끔 먹습니다. 저는 계란을 좋아하거든요. 계란찜, 계란 프라이, 두툼한 계란말이, 삶은 계란 전부 다요. 지난번엔 김밥이 생각나서 흰 밥으로도, 현미 잡곡밥으로도 만들어 먹었답니다. 시금치와 계란과 당근만 넣어도 맛있었어요. 다행히 상태 좋아져서 현미밥도 소화를 잘하고 있답니다.


저는 요즘 조카의 엄마이자 저의 친척 언니가 보내준 된장을 먹고 있어요. 언니가 직접 담근 된장인데 얼마나 맛있는지 몰라요. 언니가 보낸 청국장 가루도 드디어 도착했대요. 조카가 한국 슈퍼에 온라인 주문을 할 때 부탁한 콩나물과 두부와 김밥김도 같이 들고 올 거예요. 조카가 올 날만 손꼽아 기다립니다. 된장국에 콩나물을 듬뿍 넣어 끓일 생각만으로도 기운이 샘솟네요. 요즘은 먹는 생각만 하며 사는 거 같아요. 가만 생각해 보면 암 진단을 받기 전 평소 좋아하지도 않던 잼을 아침마다 빵에 듬뿍 발라먹던 기억이 나네요. 설탕은 암이 가장 좋아하는 먹거리잖아요. 지나친 억측인지는 몰라도 경우엔 하혈과 함께 잇몸 출혈도 증상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책마다 염증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어서 해 본 생각이에요. 저는 알리시아 출산 후 오랫동안 만성 질염도 있었거든요. 뭐든 만성 질환은 안 좋네요.


<암의 스위치를 꺼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하나 재밌게 발견한 것은 Ph수치였어요.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배운 대로 몸이 가장 건강한 상태는 6.5~7.5랍니다. 6.5보다 낮으면 산성이고, 7.5보다 높으면 알칼리성인데 대부분의 암환자들은 산성이라고 하네요. Ph 테스트 용지를 사서 아침에 소변으로 테스트가 가능하대요. 신선한 과일이나 야채를 많이 먹어야 하는 이유도 산성화 된 우리 몸을 알칼리로 바꿔주기 때문이랍니다. 신기한 건 달고 신 귤이 그 자체로는 산성이지만 우리 몸으로 들어오면 알칼리성으로 변한대요. 이런 걸 책으로 배울 땐 놀랍고 재미있고 신기하고 뿌듯해요.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로젠 가르텐에도 들렀습니다. 저의 겨울 장미 공원에요. 이번 주부터 알리시아와 율리아나 둘 다 데리고 오후 산책을 시작했거든요. 산책 좋아하는 아이들이 어디 있겠어요. 심심하기만 하지요. 그래도 둘을 붙여놓으니 얼마나 신나 하던지요. 애들이 요즘 온라인 수업을 해서 종일 집 안에만 있으려 한다고 율리아나 엄마도 울화통이 터지기 직전이었죠. 그래서 제가 둘을 데리고 산책을 가겠다고 했어요. 작전은 성공이었답니다. 애들도 좋아하고 저도 마침내 장미 정원까지 진출했으니까요. 장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겨울을 지나고 있었어요. 못다 핀 장미 한 송이도 보았지요. 우리 각자가 아직 다 피우지 못한 꽃송이들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내일은 봄의 시작이라는 입춘입니다. '봄'이라는 말, '시작'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뛰고 용기가 샘솟네요. 부산에서 새롭게 시작하실 샘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하고 기대합니다.



아이들과 이자르 강변 로젠 가르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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