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오스카네 베란다

뮌헨의 이웃들

by 뮌헨의 마리


화초도 사람도 어쩜 이리 똑같나.



오스카네가 휴가를 떠났다. 캐나다행 오후 3시 비행기. 입추 다음날이었다. 아이와 함께 저녁 무렵 오스카집에 올라갔다. 우리로 치자면 6층. 우리는 5층이다. 독일은 1층을 지층이라 부르며 카운트하지 않는다. 그러니 2층부터 1층인 셈. 땅에서 한 층 위라는 뜻인가. 이런 것도 합리적이라고 봐야 하는 건지. 뭐든 지나치면 골치가 아픈 법이다.

내가 사는 건물아이가 좋아하는 노란색. 20여 세대가 산다. 어떤 층은 3가구가 살고, 우리처럼 4가구가 사는 층도 있다. 맨 꼭대기 오스카네는 옥탑방이 딸린 복층 구조인데 우리 집 바로 위에 산다.


오스카 집은 우리보다 두 배쯤 넓다. 긴 복도 오른쪽은 우리 집엔 없는 부분. 건물의 오른편인데 통째로 식당과 거실로 쓴다. 남서향이라 여름엔 온종일 볕이 드는데 독일 가정에는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으니 여름엔 우리보다 더울 것이다.
베란다에는 화분들이 일렬로 놓여 있었다. 모두 열두 개. 부엌의 사각 조리대 위에도 선인장 화분이 여덟 개. 안이 깜빡한 아홉 번째 선인장은 오스카 방 창문 앞에 있었다. 하루 종일 무덥다가 오후 늦게부터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환기창으로 비가 떨치지나 않나 창문을 확인하다 발견했다.


첫날은 실내가 얼마나 더운 지부터 체크했다. 발코니 쪽 통유리를 활짝 열고 공기를 환기시키고 화분들과 상견례를 했다. 상추 잎처럼 잎이 무성한 화초는 두 손으로 밑에서 위로 몇 번 쓸어주고 잎이 길거나 넓은 것은 손가락으로 훑어주고 닦아주었다.
어떻게는 몰랐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사랑에 어떻게가 어디 있는가. 물 주고 돌아보고 살피면 보인다. 화초들은 반쯤 말라 있었다. 더 방치하면 죽을 것 같았다. 수십 개의 꽃봉오리가 까맣게 변해버린 패랭이꽃은 안이나 로비가 안 보길 다행이었다. 기적처럼 피어 있던 두 송이가 며칠 후 편안히 꽃잎을 닫는 것도 보았다. 다정한 손길에도 어떤 것은 피고 어떤 것은 졌다.

물 주기 시간은 저녁 8시. 베란다에서 바라보는 해 지는 시각의 저녁 풍경과 석양빛으로 물들어가는 이웃 건물들이 특히 아름다웠다. 누구나 한 번쯤 저렇게 빛난다. 건물은 하루에 한 번씩. 매일매일이 새 삶이었다.
첫째 날은 베란다. 둘째 날은 선인장. 셋째 날엔 가위를 들고 누렇게 시든 잎과 줄기들을 깨끗하게 잘라주니 별 볼 일 없던 화초들이 이발을 한 듯 말쑥해졌다. 사흘 정도 물을 주니 생기를 되찾았다. 아무렇게나 살기로 작정한 인생은 없는 모양이었다. 셋째 날부터 작은 꽃봉오리라 수줍게 피었고 넷째 날이 되자 하나가 더 피어났다. 화초도 사람도 어쩌면 저리 똑같나.



오스카 가족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뮌헨에 온 지 사흘 째. 1월의 일요일 저녁이었다. 오스카는 알리시아보다 한 살 많은 남자 아이고 다섯 살 여동생 루시는 유치원에 다녔다. 오스카 엄마 안이 일을 하고 아빠 로비가 사업을 쉬고 아이들을 돌봤다.
안이 직접 구운 작은 마블 쿠헨을 들고 문 밖에 서 있었다. 남편과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였다. 자기들 이웃으로 온 걸 환영한다고. 위에서 아이들이 쿵쾅거려도 이해해 달라고. 뉴욕에서 몇 년 산 적이 있는데 금방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도 잘 안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언제든 초인종을 누르라고.


1주일에 두세 번 혼자서도 오스카네 초인종을 누르는 아이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한국에서는 엄마 치맛자락만 붙잡던 아이였다. 어느 날 오스카가 이웃집 남자 아이랑 우리 집에 왔는데 그 아이가 짓궂은 행동을 반복하는 바람에 알리시아가 화를 낸 적이 있었다. 둘이 돌아간 뒤 제 딴에도 미안했던지 오스카가 휴가를 떠난 사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편지를 써서 현관 입구 오스카네 편지함에 넣었다.


"오스카! 저번에는 미안했어. 나랑 다시 놀아줄 거지?"


휴가에서 돌아온 오스카의 반응은? 어린 마음에도 진심이 전해졌던지 입이 귀에까지 걸려 우리 집 초인종을 누르며 아이의 이름을 큰소리로 불렀다. 목소리에 반가움의 물기가 넘쳤다.

행복은 전염된다. 불행이 그렇듯이. 오스카네 가족 성은 랑 Lang. 이름도 사람 따라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심플한 독일 성은 처음이다. '랑'이라니! 오스카네와 오래오래 좋은 이웃으로 가고 싶다.

오스카가 캐나다에서 돌아오는 9월에 오스카는 이런 편지도 받게 될까?

"오스카! 네가 돌아와서 정말 기뻐!"


이번에도 나는 거들지는 않고 지켜만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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