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달리며 친구를 생각하다

잃어버린 친구들

by 뮌헨의 마리


가을을 좋아하듯 H를 좋아했다. 이유는 모른다. 어쩌다 우리 사이가 멀어졌는지.



8월의 두 번째 주말이었다. 8월이 시작한 지 열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강변을 따라 잉글리시 가든까지 달리자 바람결이 달랐다. 내가 놀란 건 낙엽들. 녹음이 짙은 잎들 사이로 황색의 마른 잎들이 나무들 주변 잔디를 덮고 있었다. 설마 가을이 벌써 온 건 아니겠지? 간이 철렁할지도 모를 뮌헨 사람들과는 다른 이유로 내 가슴은 뛰었다. 나는 가을을 좋아했다.

남편과 나는 자전거를 타고 아이는 롤라를 탔다. 여기 아이들이 한 다리로 타는 롤라를 탈 때 우리 아이만 두 다리로 타는 구식 롤라였다. 한국에서 산 가위처럼 두 다리로 벌렸다 접었다 반복하는 롤라 말이다. 한국에서도 사라지는 추세인 롤라를 타고 나가면 애고 어른이고 가릴 것 없이 멈춰서서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웬만해서는 돌아보는 법 없는 이곳 사람들이 말이다.


이자르 강변을 따라 달리다 대로변을 달렸다. 도이치 뮤지엄도 지나고, 다리도 지나고, 신호등을 몇 개나 지난 후 잉글리시 가든에 도착했다. 가든 입구에는 물살이 빠른 수로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리 위에 서거나 나무 밑에 앉아 보드 타기를 구경했다. 파도를 타듯 거친 물살을 가르며 차가운 물방울을 튕겨 내는 모습은 지켜 보기만 해도 시원했다. 아이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영국 정원의 수로를 끼고 호숫가 비어 가든까지 돌았다. 영국 정원이 그렇게 큰 줄 몰랐다. 한가운데 넓은 잔디밭에는 사람들로 빽빽했다. 햇살이 뜨겁지도 않나. 사람들이 햇살 아래 아무렇지도 않게 오후 내내 앉아 있었다. 뮌헨의 알려지지 않은 명소 두 군데가 영국 정원과 이자르 강변. 뮌헨 사람들이 주거지를 선택할 때 가장 선호한다는 곳이다. 뉴욕의 센트럴 파크나 런던의 하이든 파크가 부럽지 않았다.



나는 H를 좋아했다. 이유는 모른다. 어쩌다 우리 사이가 멀어졌는지. 뒤늦게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산후 우울증이 찾아왔다. 친구를 챙길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가까이에 살았건만. 그렇게 멀리 살 때도 달려와 준 친구건만. 일본도 중국도 싱가폴도. 독일만 빼고. 다시 독일에도 돌아왔는데 달려와 줄 H가 곁에 없다는 게 뼈아팠다.
H는 학창 시절 동창이었다. 대학도 같이 다녔다. 공동의 친구도 많았다. 한국을 떠나기 전 Y에게 전화번호를 물었지만 끝까지 알려주지 않았다. 이유가 있겠지. H와 가까운 사이니 속사정도 잘 알 것이다. 진작 연락을 하지 못한 건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 잃은 친구도 생각했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물을 수도 없었다.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린 거라면? 돌이킬 수 없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할 나이가 되자 지나간 시간은 지나간 시간대로 좋았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다 이해하려 들다니. 내가 그들에게 잘못한 게 있다면 용서해 주기를 바랄 뿐. 내가 그들의 위트와 재치를, 그들 자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말해주었어야 했는데.

독일로 오기 전 나를 찾아와 묵은 오해를 풀어준 친구도 있었다. 나라면 죽어도 못할 일을 척척 해 준 친구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그때부터 씩씩했던 친구였다. 친구의 용기에 힘 입어 나도 후배에게 사과를 하고 왔다. 내 실수로 1년도 넘게 연락이 끊긴 사이였다. 곧장 답을 보내준 후배 덕분에 마음 편히 독일로 올 수 있었다. 둘 다 고마웠다.


한국의 밤늦은 시각 친구 M이 톡을 보냈다. 뇌하수체 종양이 커져 수술을 받아야 한단다. 해마다 여름이면 검진차 서울에 올라오던 친구였다. 휴가를 오는 것처럼 삼복더위에 선생님 댁에 묵으며 방청소에 세탁기까지 돌렸다가 샘과 같이 살던 집주인 언니에게 지청구를 듣던 내 친구. 잠시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몸을 혹사해서 사십 대에 벌써 무릎이 나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들던.

오십이 되자 어리석음으로 잃은 옛 친구들보다 앞으로 잃게 될지도 모를 친구들 걱정이 앞선다. 지금 곁에 남아 있는 친구들의 소중함. 후유증 때문에 수술 후 관리가 문제지 수술 자체는 별 거 없다고 걱정 말라는 M이 무사히 수술의 관문을 통과하기를. 다시 돌아와 새 삶을 리셋하기를. 자신만의 글쓰기를 시작하기를.


톡을 끝내기 전에 M이 말했다.


"이런 일 겪어보니 알겠어. 정말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겨워하던 일상이 얼마나 찬란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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