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주전자를 처음 본 건 아니다. 초봄에 빅투알리엔 마켓 부근 주방용품 전문 백화점 1층 유리창에 전시된 것을 본 적이 있다. 몹시 비쌌던 기억이 난다. 조카와 아이와 한국 슈퍼에 갔다가 중고 가게에 들렀다. 아이는 가게 안의 크리스털 돌 구경하기를 좋아했다. 어쩌다 주인 여자의 마음씨 좋고 얼굴도 고운 딸이 가게를 지키는 날이면 믿기지 않는 가격으로 돌조각 하나를 손에 넣을 수도 있었다. 가격표가 안 적힌 돌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렇게 선물 받은 보랏빛 돌을 아이는 가지고 있었다.
그 집에는 오래된 물건들이 많았다. 그릇들, 주방 기구들, 소품들, 그림들, 책들과 가구들까지. 안쪽 골방에서는 중고 옷과 신발까지 고를 수 있었다. 나는 그 많은 물건들이 다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 어디서 온 것인지, 누가 쓰던 것인지를 상상하며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평소에는 손님마저 뜸해서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는 것도 좋았다. 가게 물건들이 너무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것에도 점수를 후하게 주었다. 보물 찾기는 그런 맛에 하는 것이니까. 5유로 정도에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는 날은 즐거움도 두 배였다. 그날 알리시아는 새 필기구가 가득한 필통 세트를 5유로에 사고, 나는 조금 더 주고 찻주전자를 골랐다.
지난겨울과 봄 사이 아침마다 차를 마시며 그런 주전자가 있었으면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다시 데우는 번거로움 없이 따끈한 차를 마실 수 있는 철로 된 찻주전자. 꼭 원하던 것을 그렇게 수월하게 찾는 일도 흔하지 않았다. 50번째 브런치 글을 코 앞에 두고 있었다. 아침 공기는 눈에 띄게 쌀쌀해졌다. 아침마다 뜨거운 차를 다시 마시고 싶어 졌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철 찻주전자가 내 손에 들어왔다. 고맙게도 놀라울 만큼 싼 가격으로.
아침에 일어나 찻물을 끓였다.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물로 주전자를 씻어내고 뜨거운 물을 부으니 두 시간도 넘게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었다. 기뻤다. 이런 게 행복이었다. 남편은 출근하고 아이는 자고 있었다. 한두 시간 정도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차를 마시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쓸 수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았다. 고요하게 홀로 차 마시는 시간. 그 시간이 좋았다. 아침 햇살이 부드러웠다.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바빴을까. 서울과 뮌헨의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서울의 하루는 뮌헨보다 두 배로 빨랐다. 하루가, 일주일이, 한 달이 금방이었다. 여기라고 시간이 흐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어딜 가든 시간은 나이 따라 흐르는 법이니까.
그럼에도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멈추기였다. 뮌헨에서는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이 자주 있었다. 카페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산책을 하다가 강물을 바라볼 때, 비 오는 공원의 나무들, 저녁 석양빛에 물들어가는 하늘, 그리고 홀로 차를 마실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