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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반향초 Oct 14. 2023

필사노트 53-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그리고 평화로운 주말의 어느 날

     

    

   평일에 일에 파묻혀서 살다가 주말이면 늦잠을 푹 자고, 오전에 필라테스를 한다. 우연히 올리브영에 들려서 구매하게 된 단짠의 최고봉, 고디바 초코 프레즐보다 맛있는 것 같은 더티초코 프레즐을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먹으며, ‘주말 참 좋다’ 이러면서 거실에서 뒹굴었다. 그러다, 책을 펼쳐 들고 책을 읽기도 하고, 넷플릭스에서 오늘 볼만한 영화가 있는지 기웃거린다. 팬케익구워서 메이플시럽을 발라서 한입 먹으면 푹신함과 달콤함이 입안에 가득 퍼진다. 가족들은 내가 만든 팬케익이 팬케익 가게에서 먹는 맛이랑 비슷하다고 했다. 칭찬을 듣고 신나게 팬케익을 구워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갓 돌을 지난 조카가 여동생과 집에 왔고, 가족들은 모두 조카 주변에서 떠나지를 못했다. 가족 카톡방은 조카의 사진과 동영상들로 가득 차 있으며 우리 집 냉장고는 조카 간식들로 가득하다. 아장아장 걸으며, 인간의 언어를 알아듣기 시작한 조카는 낱말카드에서 포도를 찾아서 들고 할머니에게 달려가곤 한다. ‘코 자는 거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말을 하면 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자는 시늉을 하는 사랑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 너무 소중한 아가이다.     

  

    사랑스러운 아가는 내가 뛰어다니면서 자신을 잡으러? 다니는 놀이를 좋아한다. ‘OO이 잡으러 간다’.라고 말을 하며 잡으러 가는 시늉을 하면, 한껏 업된 소리로 꺄르르 웃으며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달려가 품에 안긴다.


     사랑스러운 아가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콤부차 한잔을 타서 건식 반신욕을 하는데, 반신욕을 시작하기 전에 고운 가루 입자와 생수, 앰플을 넣어 만든 고무팩을 얼굴에 펴 바른다. 얼마 전 조카가 집에서 있을 때 초록색 고무팩을 하고 나타나니 세상 서러운 울음으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아마 조카의 눈에는 내가 슈렉?처럼 비쳤을 것이다. 나는 짓궂게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는 조카를 보며 사라졌다 나타났다를 반복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초록색 고무팩을 얼굴에 바른 채 반신욕을 하며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다.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을 이루고자 에세이를 끄적이다가, 옆에 있던 ‘사랑의 기술’을 펼쳐 들고 글귀를 필사했다. 사랑의 기술에서 주로 논의되는 사랑은 내가 조카에게 느끼는 사랑스러움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나는 에리히 프롬의 책들을 좋아하니까 '사랑의 기술'을 필사했다.    



       


#1


    사랑하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없다는 태도는, 그렇지 않음을 나타내는 증거가 산재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이다. 사랑처럼 엄청난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시작했다가 반드시 실패하고 마는 활동이나 사업은 없을 것이다.  만약 이것이 다른 활동이었다면, 사람들은 실패의 원인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을까를 배우고자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활동을 포기해 버릴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포기할 수 없는 것이므로, 사랑의 실패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실패의 원인을 살펴보고 사랑의 의미를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2

    

    우리 문화권 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분명히 실패하면서도 왜 이러한 기술을 배우려 들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도 아마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사랑을 갈망하면서도 사랑보다는 성공, 권위, 돈, 권력 등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사랑의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 모든 정력을 사용하고 있다.      


     돈이나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방법만이 배울 만한 가치가 있다면, 오직 영혼에만 유익하고 현대적인 의미에서 볼 때 아무런 이익도 없는 사랑은 노력을 기울일 필요도 없는 사치에 불과한 것일까?               



#3


    책은 독서 클럽에 의해 선택되고 영화는 영화사나 극장 소유자에 의해 선택된다. 휴식도 마찬가지로 일정하다. 일요일에 자동차로 드라이브하고, 텔레비전을 보거나 카드놀이를 하거나 사교파티에 참석한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월요일부터 다음 월요일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활동은 규격화되고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일상의 그물에 걸린 인간이 자신은 독특한 개인이며 희망과 절망, 슬픔과 공포, 사랑에 대한 동경과 무에 대한 분리의 두려움을 지니고 살아갈 기회 밖에는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떻게 잊지 않겠는가?     



#4


   ‘사랑은 인간에 있어서 능동적인 힘이다.’ 즉 인간이 타인과 분리되어 벽을 허물어 버리고 타인과 결합시키는 힘이다. 사랑은 고독감과 분리감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며 동시에 각자에게 자신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고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 있어서는 두 존재가 하나가 되지만 동시에 따로따로 남는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5


   사이비 사랑의 또 다른 형태는 ‘감상적인 사랑’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그 사랑의 본질은 실재하는 상대방과 현재 맺고 있는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환상 속에서만 경험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유형의 사랑의 가장 흔한 형태는 영화를 보거나 잡지의 애정 소설을 읽거나 혹은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대리적인 애정만족에서 사랑 일치 친밀감에 대한 충족되지 않는 욕구들을 이러한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만족을 찾게 된다.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분리의 벽을 뚫을 수 없는 사람은 영화에 나오는 두 사람의 행복하거나 불행한 사랑 이야기를 볼 때에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많은 부부들에게 있어서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이런 이야기를 보는 것은 그들이 서로에 대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구경하는 구경꾼으로서 사랑을 경험하는 유일한 기회가 된다. 사랑이 백일몽인 그들은 참여할 수가 있다. 그러나 사랑이 실제의 두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현실로 나타나면 그들은 냉혹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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