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를 뒤적거리다가 시청자 추천으로 ‘저스트 머시’가 뜨길래, 침대에 자리를 잡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저스트 머시'는 실화를 기반으로 한 영화였고, 영화를 보는 내내 1980년대 미국에서 일반적이었다던 인종차별의 장면들이 다수 등장했다. 그때마다 나는 나지막이 “와~나쁜 놈들 너무 하잖아”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본인이 저지르지도 않은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사형 언도일을 기다리는 월터 맥밀리안 앞에 브라이언 스티븐슨이라는 하버드 출신의 흑인 변호사가 나타난다. 좋은 직장을 모두 마다하고 인종차별이 유독 심한 앨래바마로 온 그는 수임료도 받지 않고 사형수들의 변호인을 자처한다.
맥밀리안의 유죄판결은 백인 소녀의 살인범에 대한 공분과 범인을 1년 넘도록 잡지 못하는 무능한 경찰을 향한 군중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것이었다. 경찰은 수감된 중범죄자에게 맥밀리안이 범인이라는 허위의 증언을 강요하였고, 그는 처음에는 거부하다 결국 허위증언을 하게 된다. 허위증언을 한 중 범죄자의 증언자체가 모순적이고, 사건 발생 시간 당시에 맥밀리안은 살인 장소에 있을 수 없는 무수한 증거가 가득함에도 경찰은 맥밀리안을 유죄로 만들어 버리고, 법원도 이에 동조한다.
브라이언이 재심청구를 하고 법정에서 허위증언을 한 수감자가 직접 출석하여 외압이 있었고, 이로 인해 위증을 하였다고 진술함에도 불구하고 판사는 재심청구를 기각한다. 이에 브라이언은 언론에 이 사건을 알렸고, 이후 대법원에 이 사건에 대한 재심판단을 맡긴다. 방송으로 인한 여론 때문인지 대법원은 재심을 허용하였다. 맥밀리안이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음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이 사건의 책임자들은 자신의 책임을 면피하기 급급하고, 어떻게든 이 문제를 덮어버리려고 한다. 앨러머바주 검사 역시 이 사건을 덮어보려 하지만, 결국 브라이언이 맥밀리안의 모든 혐의에 대해 기각을 구한 청구에아무리 증거를 검토해도 증거가 없다며 동의한다. 맥밀리안은 억울한 누명을 벗고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실제 브라이언 스티븐스의 모습,영화 뒷편에 그들의 실제 모습이 나온다.
영화를 보면서 미국 유학시절인종차별을 겪었다던 친구의 이야기가 기억이 났고, 몇 년 전에 읽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지금도 존재하는 인종차별과 이로 인해 발생한 불합리한 차별을 제도를 통해 시정하여, 소수자에게도 기회를 주어 좀 더 평등한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적극적 우대조치’가 생각이 났다.
불과 30여 년 전인데 이처럼 극심한 인종차별이 존재하였다는 점에서 화가 났고, 백인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용인되는 사회 분위기에 분노하였으며, 이러한 불합리함을 극복하고자 하였던 정의롭고 숭고한 변호사 브라이언 스티븐슨과 그가 만들어 낸 변화가 인상 깊은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