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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반향초 Jan 27. 2022

필사 노트21-안도현 시인님의 문장

도깨비 그리고 사랑의 물리학

<도깨비에 소개되었던 '사랑의 물리학'이 실렸던 시집>


아래 문장들은 안도현 작가님이 어떻게 시인이 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왜 시인이 되었냐는 질문에 저렇게나 멋지게 답할 수 있다니...!감탄을 하며 노트에 꾹꾹 눌러 담았던 문장들이다.




문학은 여전히 외로운 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을 모르는 문학이 있다면, 외로움의 거름을 먹지 않고 큰 문학이 있다면 그 뿌리를 의심해 봐야 한다.

글을 쓰는 일은 외롭기 때문에 아름다운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시인이 되려고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시인이 되려고 시를 쓴 것도 아니다. 나는 책을 읽음으로써 내게 다가오고 일어나고 쓰러지는 온갖 생각들을 책을 통해 또 밀어내고 쓰러뜨리고 일으켰다.

절망과 좌절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왔으며, 나는 때로 절망으로부터 도망갔고, 정면으로 대들었다. 외로웠을 것이다. 나는 저문 강변을 따라 멀리 갔다가 어두워져서야 돌아와 내 방의 불을 켰다. 어둠은 길고 깊었으며, 아침은 빨리 왔다.


누군가를 기다렸다. 겨울 무구덩이 속의 무처럼 누군가를 기다렸다. 캄캄한 땅 속에서 나를 건져 갈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렸다. 빛이 없어도 때로 무순은 노랗게 자랐다. 달빛 아래 강물을 나는 수도 없이 건너다녔다. 물소리는 외로운 내 발목을 잡고, 내 발소리는 산이 잡아갔다. 그렇게 나를 꺼내갈 흰 손을 기다렸던 어느 날 시가 내게로 왔다. 산이 환하게 열리고, 강물이 산굽이를 희게 돌아왔다. 발등이 환했다.






 왜 시인이 되었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안도현 시인님만큼 멋있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역시 시인의 언어는 아름답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글이다.

가끔 나에게 왜 변호사가 되었냐고 물어보시는 분들이 계신다. 멋적게 웃으며 어쩌다 보니...라고 대답을 하곤하는데, 사실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성향상 변호사란 직업이 잘 맞을 것 같기도 했고,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감사한 환경 속에서 살아왔었고,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은 단순히 내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을 해왔었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서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스스로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었다(사실 변호사가 된다고 해서 이런 능력이 생기진 않지만, 그래도 주변에서 벌어지는 소송들을 내가 할 수 있어 다행이긴하다). 지구를 지키거나 세상을 구하는 히어로는 아니더라도, 내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기댈 수 있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가치들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평생 노력해도 이런 능력을 갖을 수 없을 것 같긴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미래를 함께하게 될 사람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주 주말마다 할머니를 찾아뵙는데, 할머니가 동생 부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를 보시더니 “인연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니 네 삶을 열심히 살면서 기다리면 된다”고 말씀 하시는 것이었다. 손주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할머니가 최애(?) 손녀인 나의 이름도 깜빡 깜빡하곤 하시는데, 씩씩한 큰 손주가 혼자 외로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셨던 것 같다. 사실 꽤 오랫동안 내 삶을 열심히 살면서 기다리고 있는데...이제는 인연이 좀! 나타날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올 인연은 아무리 힘든 상황이 오더라도 서로의 손을 쉽게 놓지 않고, 힘들 때면 나에게 기대라고 말해주고 싶다(그렇다고 내가 가장의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ㅋㅋ)



갑자기 안도현 시인님의 인터뷰 글귀를 정리하다가 여기까지 이야기가 흘러와 버렸다. 나는 에세이를 쓸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다. 아래는 김은숙 작가님의 드라마 <도깨비>에서 도깨비 김신(공유)이 은탁이(김고은)를 보면서 사랑을 깨달은 순간의 감성을 표현한 <사랑의 물리학>이라는 시이다. 수험생의 신분으로 <도깨비>에 심취해 있던 열렬한 팬이었던 나는 이 시가 실린 위 시집을 사서 열심히 필사를 했었더랬다. 오늘의 주제는 안도현 시인님의 아름다운 문장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의식의 흐름에따라 이렇게 흘러와버렸다. 마무리는 일단 '사랑의 물리학'이란 시로 해야겠다.





-사랑의 물리학-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그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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