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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반향초 Jan 29. 2022

필사 노트23-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10년 전에 힐링 서적 열풍이 있었다. 대표적인 책으로 김난도 교수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있었는데 폭발적인 반응 이후 서점에 힐링 서적이 엄청나게 쏟아졌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보다 인생을 먼저 산 인생선배의 조언이라고 생각하고 꽤 인상 깊게 읽었는데, 동시에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서울대학교 교수가 진정한 청춘의 아픔을 아느냐는 비판이 거세게 있었던 책이었다. 유명 개그맨(유0재)은 "아프면 환자지 어떻게 청춘이냐"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비판은 아프리카 기근에 시달리는 아동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사람에게 네가 기근과 굶주림을 아느냐고 물어보는 것과 비슷한 비판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상대와 동일한 종류의 아픔을 겪지 못했다고 상대의 고통과 상실에 대해서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개인적으로 공감능력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아래 문장들은 내가 대학시절 읽었던 힐링 서적 중 한 권으로 '수선화에게'(외로우니까 사람이다)란 시로 유명한 정호승 시인님의 산문집이다. 사실 다른 힐링 서적의 내용과 대부분 비슷해서 몇 군데만 밑줄과 별표를 쳤던 것 같은데 그 문장들을 모으니 양이 꽤 되는 것 같다. 아래 문장들은 내가 수줍게 별표를 쳤던 정호승 시인님의 문장들이다.




1. 나의 가장 약한 부분이 나중에 나의 가장 좋은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 부분 때문에 내게 더 인간적인 매력이 있는지 모릅니다. 가장 못생긴 나무가 산을 지키는 고목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가장 곧고 잘생긴 나무가 가장 먼저 서까랫감으로 쓰이고, 그다음 못생긴 나무가 기둥감으로 쓰이고, 가장 못생긴 나무는 잘리더라도 대들보로 쓰입니다. 나의 가장 못생긴 부분이 끝까지 남아서 나를 지키는 대들보가 될 수 있습니다. 잘난 부분은 늘 잘났다고 오만해짐으로써 화를 불러 올 수도 있습니다.




2. 일찍 시작했다고 해서 반드시 일찍 이룰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일찍 핀 꽃이 튼튼한 열매를 맺는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얼마만큼 오랜 시간 동안 참고 견디며 얼마나 정성껏 준비했느냐가 중요합니다.




3. 젊은 날은 대팻날을 가는 시기입니다. 이 시기에 대팻날을 갈지 않고 섣불리 대패질을 하다가는 송판 하나 제대로 다듬지 못하게 됩니다. 특히 이 이 시기는 능력을 준비하는 시기이기도 하지만 겸손을 배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고통 가운데서 참고 견디며 대팻날을 간 사람일수록 겸손의 얼굴을 지닙니다. 남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줄 압니다.




4. 젊음은 직선입니다. 그것도 날카로운 직선입니다. 사람이 익어서 부드러워지기 전까지는 젊음의 선은 무척 강하고 날카롭습니다. 그렇지만 젊음이 오직 직선만으로 이루어지는 건 아닙니다. 젊을 때일수록 직선 속에 곡선을 포함하려는 의지가 요구됩니다. 곡선은 삶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좌절과 도전이 되풀이되는 곡선 속에서 젊음의 꿈은 천천히 이루어집니다.



곡선 없는 직선은 불안정합니다. 탁자 모서리에 놓인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유리병처럼 불안합니다. 직선은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참고 견디는 인내의 힘과 부드러움의 힘이 부족합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릅니다. 그러나 곡선에 의해 이루어진 직선이라면 튼튼하고 안정적입니다.



비록 직선이 시간을 단축시킨다 해도 단축된 만큼 삶의 깊은 맛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곡선은 느리고 멀리 둘러가도 깊은 맛을 건네줍니다. 그 맛은 사람을 부드럽게 하고 여유를 지니게 합니다. 우리에게 여유와 부드러움이 없다면 다른 사람과 마찰을 일으킵니다. 그러나 여유를 지니고 부드러운 곡선의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다른 사람과 마찰을 일으키는 일은 없습니다. 곡선만이 부드러움과 여유로움을 선물합니다. 마음을 낮추게 하고 굽히게 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으려는 마음은 직선의 마음입니다. 그런 마음을 참는 마음은 곡선의 마음입니다.




5. 아까워하지 마세요. 저렇게 깨어지고 버려지는 도자기가 있기 때문에 훌륭하게 완성되는 도자기가 있는 겁니다. 저것들은 저것들대로 자기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저기 저렇게 있는 겁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깨어지고 버려졌다고 해서 그 가치가 완전히 소멸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길가에 버려진 연탄재 한 장도 비 오는 날이면 웅덩이를 메우는 데 쓰이거나 겨울날 빙판길의 미끄러움을 방지하는 데 쓰이는 것입니다.




6. 저는 그 불행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어쨌든 그 불행을 주워 담아 퍼즐 맞추듯 자꾸 맞추어 원형을 회복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깨어진 항아리가 있기 때문에 온전한 항아리가 있는데도 말입니다. 어쩌면 깨어진 항아리가 더 이상 잃을 게 없기 때문에 더 평화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텅 비어 있는 항아리는 그 텅 비어 있음을 간직해야 하는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산산조각이 난 항아리를 인간의 힘으로 다시 붙이려는 것은 헛된 노력입니다. 산산조각이 난 항아리를 다시 붙여 물을 길으려면 신의 힘이 필요합니다. 산산 조각나게 만든 것은 인간이지만 그것을 다시 붙이기 위해서는 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신에게 도움을 청하면 신은 산산조각 난 항아리 대신 새 항아리를 줍니다. 우리는 그 새 항아리로 다시 물을 길어오면 되는 것입니다.



새 항아리를 구한다는 것은 찾아온 불행을 피하지 않고 그대로 긍정하고 인정해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불행도 불행 그 자체로서 빛날 때가 있습니다. 맑은 날, 산산조각 난 조각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조각에서 도 햇빛이 반짝입니다. “금이 간 종은 깨진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것을 깨뜨려 놓으면 모든 하나하나의 쇳조각은 맑은 소리를 낸다.”




7. 나에게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그 불행이 인생의 어느 시기에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에게도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긍정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속에서는 안정과 평화의 삶이 작고 낮고 느리게 찾아옵니다.


저는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행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가 있다고 늘 생각합니다. 부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 어떤 불행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 있는 마음의 공간을 준비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의 인생에서도 언제 불행한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동안 많이 일어났습니다. 나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위안하고 견딜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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