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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반향초 Feb 08. 2022

필사 노트33 - 필사,쓰는 대로 인생이 된다



오늘 정신이 없었다. 요즘들어 부쩍 일이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는것 같다... 퇴근 후 집으로 오는데 갑자기 오늘은 코노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혼자가서 노래를 몇 곡 부르는데, 오늘 정말 혼신의 힘을 다해 목청껏 불렀다. 그런데... 45점, 38점, 27점이 나왔다. 심지어 노래방 기계가 "즐거우면 된거죠, 점수가 중요한가요?"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노래방기계가 이렇게 정직할 일인가 싶으면서도, 티비를 틀면 오디션 프로그램에 전국민이 출연해서 노래를 그렇게 다들 잘 하는데, 나는 이렇게 못 부를 일인가 싶기도 했다... 쓰린 가슴을 부여잡고, 필사에 관한 책의 문장들을 정리했다.


   




필사를 이렇게까지 예찬하는 책은 처음보았다. 이 책을 읽으면 무조건 필사를 시작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게하는 책이었다. 노트에 손글씨로 하는 필사가 가장 정석이라고 말하지만, ‘리딩으로 리드하라’의 이지성 작가님은 손글씨 필사가 힘들면 노트북으로 타이핑을 해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유명한 작가님들 모두 작가가 되기 위한 코스로 ‘필사’를 꼽는만큼, 필사가 글쓰기 실력을 늘리기 위한 좋은 방법임은 분명한 것 같다.



아래 문장들은 필사에 대한 예찬을 담은 문장들이다. 양이 많지만, 문장들을 간직하고 싶어 모두 담았다.



1.



필사를 시작한 건 순전히 책을 사랑하게 된 덕분이다. 마음에 드는 책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고, 책을 닮고 싶어서 필사를 시작했다. 눈으로만 사랑하는 것으로는 모자랐다. 손으로도 책을 사랑하게 되자 글이 자동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글을 미니홈피에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에게서 내 글을 읽고 감동받았다는 사람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미니홈피에 글을 쓴 것뿐인데 그 글이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2010년의 일이다.

 



2.



결국 책을 사랑하는 마음이 글을 쓰게 했고, 그것이 내 안에 들어 있던 진짜 나 자신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필사를 해서 작가가 되었지만 필사를 한다고 해서 모두 작가가 될 수도, 될 필요도 없다. 모차르트는 헨델의 악보를 베끼다가 작곡가가 되었고, 피카소는 그림을 베껴 그리기 시작해서 화가가 되었다. 팝 아트의 거장 리히텐슈타인은 만화책을 베끼다 현대 미술가가 되었고, 안도 다다오는 르 코르뷔지에의 도면을 베끼다가 건축가가 되었다




3.



무언가를 그대로 모방한다는 것은 자신 안에 들어 있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는 기폭제가 된다. 무엇이 되고 싶다면, 동경하는 그 무언가를 베껴라. 베끼다 보면 단지 무언가를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창조물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 깨닫게 될 것이다. 세상을 바꾼 창조는 모두 모방에서 시작되었다.




4.



 독서는 눈으로 글을 읽는 행위지만, 필사는 마음으로 글을 만지는 행위이다.




5.



어려운 고전을 접하게 되자 필사는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어려운 책을 똑같이 베껴 쓰자 선명하게 이해되는 경험을 하면서 필사의 마력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6.



마음으로 깊게 스며든 문장, 심장이 내려앉을 듯한 문장, 마음을 세차게 뒤흔드는 문장, 뒤통수를 때리는 듯한 문장을 만나면 그 문장을 절대 그대로 내버려두지 마라. 그런 문장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니 그 문장을 가슴에 새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라.




7.



소유한 책이 많아진다는 것은 영혼 깊숙이 들어앉은 문장이 많아졌다는 의미이다. 그런 문장이 새겨져 있는 책을 어떻게 버리겠는가.




8.



손때가 묻은 책, 영혼을 삼킨 책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읽는 것에 의해 만들어진다. 명문장이 담겨 있는, 소유하고 있는 책이 바로 나 자신이다.




9.



하루 종일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만큼 신나고 행복한 일이 있을까. 뜨거운 여름을 도서관에서 보내는 것은 천국에 온 것과 다름없었다. 나는 도서관에서 책을 필사하는 데 여름휴가를 모두 할애했다.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으면 필사할 엄두도 나지 않는 책이었기에 그해 여름, 도서관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리고 나는 다른 존재가 되었다.




10.



필사노트는 나 자신이 곧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11.



사람이 먹지 않으면 생명을 연장할 수 없듯이 독서와 필사는 마음과 정신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원이다.



12.



눈으로 읽기만 하는 독서와 손을 동원해야 하는 필사의 다른 점은 필사로 소화한 문장은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는 것이다. 독서가 소화가 잘되는 정제된 탄수화물인 흰 쌀밥이라면, 필사는 식감이 거칠어서 꼭꼭 씹어야 넘길 수 있고 소화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현미밥이다. 10년이 지난 후 흰 쌀밥과 현미밥을 먹은 사람의 건강에는 어떤 차이가 날 것인가?





13.



필사는 문장을 통해 과거의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14.



제갈공명은 27세에 유비에게 발탁되기 전까지는 초야에 묻혀 필사와 독서만 하고 지냈다. 그는 시골에 있어도 세상 돌아가는 것을 모두 꿰뚫고 있을 정도로 해박했는데, 이는 그의 독서량을 보면 이해가 간다. 그는 2세기에서 3세기까지 당시 구할 수 있는 책은 모두 읽었고, 소유할 수 없는 책이라면 밤새 필사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제갈공명의 독서법은 곧 필사였다 .




15.



독서는 책을 쓰는 데 재료가 되지만, 필사는 책을 쓰는 스킬을 연마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로 글을 써보는 감각을 키워주는 것이 필사이다.

문장이 마음에 스며드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필사를 며칠 했다고 정신과 마음이 갑자기 바뀌는 것은 아니다.




16.



엘리자베스 1세는 지독한 독서광이었다. 그녀는 영국의 어느 학자들보다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 배우고 경청하는 태도 덕분에 엘리자베스 1세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제대로 배치하고 활용할 수 있었다.




17.



가장 적극적인 독서는 필사다. 필사는 단지 책을 글로만 읽는 것에 그치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생각과 경험을 받아들임으로써 건설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다. 먼저 말하려 하면 안 된다. 진정한 설득은 경청에서부터 시작한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남의 말을 ‘잘’ 듣는 경청 능력이다. 듣는 능력이 없다면 현인들이 책으로 남겨놓은 뼈 있는 조언을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




18.



그래서 필사는 가장 적극적인 경청이다. 소리는 흘러가면 사라진다. 아무리 훌륭한 강의를 들었더라도 기록하지 않는 소리는 휘발된다. 말하는 것을 아끼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면 성공의 자세를 갖춘 것이다. 그만큼 말하기보다 듣기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진지한 경청은 힘들어한다. 그만큼 말하기보다 듣기가 어렵다.



19.



필사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글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수준 높은 책을 필사하다 보면 설득력을 갖춘 글을 쓰는 것도 가능해진다.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을 설득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필사를 함으로써 그 형태와 구조를 자연스럽게 익혀나가게 되는 것이다.



20.



필사를 한다는 행위는 책을 읽으면서 문장을 마음에 새겨두기 위함이다.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책이라면 일부러 꺼내서 읽을 이유도, 필사하면서 마음에 새기고 싶은 문장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필사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신이 새기고 싶은 문장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책의 주제에 관해 심도 깊게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는 것 자체만으로 굉장한 경험이다.



21.



독서는 생각을 자극하지만 필사는 생각을 정리하게 한다. 필사노트가 쌓여간다는 것은 그만큼 생각이 쌓여간다는 의미이다.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불러온다. 생각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해줄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려면 생각이 흘려야 한다. 생각이 생각을 중첩하고 부딪히고 융합하는 과정이 담긴 노트가 있어야 인간의 시간이 흘러간다.



22.



사람은 평생 정신적인 성장을 해나가야 한다. 정신적인 성숙이 멈춘 순간, 시간의 흐름이 정지한다.




23.



그렇게 필사는 나를 다독이는 치료제이자, 채찍이자, 친구이자, 고민 상담소였다. 필사를 하면서 내가 하는 고민과 겪는 고생이 보잘것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필사를 하며 대화를 나눈 책의 저자들은 그렇게 나에게 알려주었다. 너무나 힘든 날에는 독립 운동가들의 평전을 필사하며 마음을 다스렸다.




24.



인생의 고비마다 나를 지탱해준 건 다름 아닌 필사였다. 참혹하다는 표현밖에 쓸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날에는 그렇게 좋아하는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읽고 싶지만 마음이 어지러워 글 한 줄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필사를 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기분 전환이 되었다. 마음에 에너지가 샘솟고, 가슴 한구석이 뜨거워졌다. 필사를 하게 되면서 시련을 방관하지 않고 운명을 움켜쥐고, 나의 의지대로 개척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25.



나는 책을 읽으면 바로 필사를 하는 독서습관이 있다. 플래그로 표시했던 부분은 대부분 옮겨 적는다. 읽은 책을 모두 100퍼센트 필사한 것은 아니고, 10권을 읽으면 7권은 부분 필사를 했다. 플래그로 표시해둔 문장이 너무나 아름다워 영원히 기억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26.



나는 작가가 되려고 필사를 한 것이 아니다. 필사를 하다 보니 나만의 생각의 생겼고, 그것을 글로 쓰지 않으면 못 견디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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