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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반향초 Feb 13. 2022

필사 노트 38- 마음 챙김의 시

류시화 시인 엮음




엊그제 지인들에게 선물하려고 주문한 류시화 시인님의 ‘마음 챙김의 시’가 도착했다. 이 책을 알게 된 건 2년 전 가을이었다. 트레바리의 명상 클럽인 ‘마인드 풀니스’ 에서 소녀 감성의  멤버분께서 이 시집에 수록된 시 한 편을 낭송하여 음성파일을 올려주셨었다. 친구분들과 하루에 한 편씩 시를 낭송해서 공유하시는데, 그 파일을 올려주신 것이었다. 이 분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으신 귀여운 어른이셨다. 연기를 해보고 싶어서 kbs 단막극에 오디션을 보셔서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하셨고, 호기심에 새벽 신문배달을 하시다가 몸살에 걸리시기도 하고, 넷플릭스에서 희귀한 다른 나라 드라마를 발견하셔서 공유해주시는 소녀 같으신 분이셨다.          

(이 분의 초대로 저녁 석양이 예쁜 북카페에 가기도 했었다.)



올려주신 ‘그녀는 내려놓았다’는 받아들임, 내려놓음에 관한 명상 책을 읽던 모임에 딱 어울리는 시였다. 시 낭송을 듣는데 차분한 음성 속에서, 시 속의 주인공인 그녀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내려놓음은 삶에 대한 포기, 도피, 좌절이 아닌 인생에 대한 수용, 순응,  인생 나에게 무엇을 선사하든  어떠한 상황이 내게 오든  난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임으로써 내게 주어진 삶을 살아내겠다차분한 의지가 담겨있었다.




이 시집을 알게 된 뒤로, 소중한 사람들에게 시집 앞부분에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선물을 주곤 했다. 같이 고생했는데  합격해서 혼자 지옥을 탈출해 늘 미안했던, 그러나 다행히도 그 다음 해에 시험에 합격해서 지옥에서 탈출한 친구들에게도 정성 어린 편지를 앞부분에 써서 선물로 주었는데....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다....(내가 맨 앞에 편지를 쓰면서 ‘000 변호사님’이라고 쓴 부분만을 좋아했었다.....)  






아래는 인생이 나에게 어떠한 것을 선사하더라도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그녀의 차분한 의지가 잘 나타나 있는 ‘그녀는 내려놓았다’의 시 구절들이다.




그녀는 내려놓았다



                                            -세파이어 로즈-     



그녀는 내려놓았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그저 내려놓았다.    


 

그녀는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판단을 내려놓았다.

머리 주위에 무리 지어 모여드는 선택들의 합류 지점을 내려놓았다.

자신 안의 망설임 위원회를 내려놓았다.

모든 아 보이는 이유들을 내려놓았다.

전적으로 그리고 완전히,

머뭇거림 없이, 걱정 없이 내려놓았다.          



누구에게 조언을 구하지도 않았다.

내려놓음에 대한 책을 읽지도 않았다.

경전을 찾아 읽지도 않았다.     



그녀는 그냥 내려놓았다.

자신을 주저하게 하는 기억들을 내려놓았다.     

앞으로 나아가는 걸 가로막는 모든 불안을 내려놓았다.

계획 세우는 일과 그것을 완벽하게 실천하기 위한

모든 계산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내려놓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다.

그것에 대해 일기를 쓰지도 않았다.

일정표에 예정일을 적어 놓지도 않았다.

공개적으로 선언하거나 신문에 광고를 싣지도 않았다.

내려놓기 위해 일기예보를 확인하거나

오늘의 운세를 읽지 않았다.          



그녀는 그냥 내려놓았다.

내려놓아야 할지 분석하지 않았다.

그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친구들을 부르지도 않았다.

다섯 단계 영적 치료 과정을 수료하지도 않았다.

기도문이나 만트라를 외지도 않았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내려놓았다.          



그 일이 일어났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박수도 축하도 없었다.

누구도 그녀에게 고마워하거나 칭찬하지 않았다.

누구도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사귀처럼 그녀는 그저 내려놓았다.

아무 노력도 없었다.

아무 몸부림도 없었다.

그것은 좋지도 않았고, 나쁘지도 않았다.

그것은 그저 그것일 뿐이었고, 단지 그러할 뿐.

내려놓음의 공간 안에서 그녀는 모든 것을

순리에 맡겼다.

작은 미소가 그녀의 얼굴에 떠올랐다.

가벼운 바람이 그녀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태양과 달이 영원히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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