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나에게 패배감을 안겨주었던 미셸 푸코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면서, 문득 노희경 작가님의 에세이집 글귀가 떠올랐다. 대학시절 노희경 작가님의 드라마 "그들이 사는 세상"이 인기리에 방영 중이었고, 우연히 커피를 사러 갔다가 대형강의실에 계단까지 학생들이 빼곡히 들어선 것을 보고 호기심에 나도 강의실 한켠에 자리를 잡고 강연을 들었었다. 강의실 맨 앞에는 “그들이 사는 세상”에 출연하셨던 배우 한분도 앉아 계셨다.
앉아서 강의를 다 듣고 싶었지만, 뒤에 수업이 있어 중간에 조용히 강의실을 떠날 수밖에 없었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따뜻한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작가님이 쓰시는 작품에는 항상 휴머니즘이 넘쳐났기에 작가님이 궁금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작가님이 쓰신 대본집, 에세이집을 찾아서 읽었다.
노희경 작가님의 에세이집을 읽는데 문득 한 대목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작가님의 글에는 미셸 푸코의 권력 이론이 녹아져 있었다. 사실 미셸 푸코의 책을 포기? 한 뒤로, 그래도 이 사람의 사상에 대해서 조금은 알아야겠기에, 살림 지식총서에서 나온 '미셸 푸코'라는 얇은 책을 읽었다. 잘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푸코가 이런 얘기를 했구나는 대략적으로는 알고 있는 상태였다. 푸코가 모든 관계는 권력구조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을 했던 것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노희경 작가님은 푸코의 말을 일상의 에피소드에 투영시켜 글로 풀어낸 것이었다.
오늘 정리한 글귀들을 읽을 당시 가슴 아픈 사랑을 하고 있거나, 실연의 아픔의 상태에 있거나 그렇지도 않았다. 그냥 이 글이 품고 있는 의미가 너무 좋았다. 한 철학자의 사상을 현실에 투영시켜 이렇게 멋지게 풀어내는 작가님의 생각이 너무 멋있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쓸 수 있을까 감탄하면서 이 글을 노트에 베껴 썼었다.(어쩌면 나만 그럴 수도 있긴 하다...)
문득, 오늘 이 글귀들을 다시 정리하면서 모든 관계에 권력구조가 존재함에도 서로 관계를 맺고, 그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 걸까 궁금했다. 푸코에 의하면 우정이든 사랑이든 모든 관계는 권력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 관계 속에서 누군가는 강자가 되고, 누군가는 필연적으로 약자가 된다. 누군가가 절대적으로 우위만을 점하는 관계는 있을 수 없기에, 권력의 구조를 재단하는 저울의 추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수시로 균형이 바뀐다. 아마 권력 구조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서로가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의 기반이 신뢰, 우정, 믿음, 그리고 사랑을 비롯한 다양한 종류의 인간적인 감정을 토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살다 보면 내가 약자인 순간이, 때로는 강자인 순간이 오기도 한다. 그때마다, 서로가 어느 위치에 있건 상대방의 마음과 배려를 고마워하는 따뜻한 마음들이 권력의 추가 기울어진 순간에도 사람사이의 관계가 지속되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들었다.
살면서 시공간을 초월해 누군가로부터 배려받는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의 작가의 꿈을 기특하게 보아준 고마운 분으로부터 좋은 작가가 되는 꿀팁을 얻을 수 있었고, 감사한 마음이 한가득 들었다. 그분 덕분에 내가 늘 꿈꿔오던 에세이 작가에 한발 더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