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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반향초 Mar 08. 2022

필사노트 46-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오늘 내가 좋아하는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만날 수 있어서  즐거운 하루였다. 아직 읽지 못한 신영복 선생님의 저서들도 빨리 읽어야겠다.




            


오늘은 완독 하지 못했지만, 천재 소설가라고 느꼈던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정리했다. 내가 좋아했던 명작 명문의 이해 수업 시간에서는 책을 읽고 감명 깊게 읽었던 문장들을 낭독했었는데, 아래 문장들은 그 당시 내가 감동하면서 낭독했던 문장들이다.       





         

그는 술집 입구를 볼 수 있는 노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전날 그녀가 무릎에 책을 얹고 앉아 있던 바로 그 벤치였다! 그 순간(우연의 새들이 그녀의 어깨 위에 모여들었다.) 그녀는 이 낯선 남자가 그녀에게 다가올 미래의 운명임을 알아챘다. 그는 그녀를 불러 옆자리에 앉으라고 청했다.(테레자는 영혼의 승무원이 육체의 갑판 위로 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 그녀는 그를 역까지 배웅했고, 그는 헤어지려는 순간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혹시 우연히 프라하에 들르시면...”               






집을 뛰쳐나와 운명을 바꿀 용기를 테레자에게 주었던 것은 마지막 순간 그가 그녀에게 내밀었던 이 명함보다는 우연(책, 베토벤, 6이라는 숫자, 광장의 노란 벤치)의 부름이었다. 그녀의 사랑에 발동을 걸고, 끝나는 날까지 그녀에게 힘을 준 에너지 원천은 아마도 이런 몇몇 우연 들일 것이다.(이런 하찮은 도시에 걸맞게 변변치 않고 진부하긴 하지만.)          




우리의 일상적인 삶에는 우연이 빗발치듯 쏟아지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가 소위 우연의 일치라고 부르는 사람과 사건 간의 우연한 만남들이 일어난다.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순간 토마시가 술집에 등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엄청나게 많은 우연의 일치를 우리는 대개 완전히 무심결에 지나쳐 버린다. 토마시 대신 동네 푸줏간 주인이 테이블에 앉았다면 테레자는 라디오에서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는 것에 주목하지 못했을 것이다.(베토벤과 푸줏간 주인의 만남 역시도 기묘한 우연의 일치지만.) 그러나 막 싹트는 사랑은 그녀의 미적 감각의 날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녀는 그 음악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매번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감격할 것이다. 그 순간 그녀 주변에서 일어날 모든 일은 그 음악의 찬란한 빛에 물들어 아름다울 것이다.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베토벤의 음악, 역에서의 죽음)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안나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삶을 마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역과 죽음의 테마, 사랑의 탄생과 결부되어 잊을 수 없는 이 테마가 그 음울한 아름다움으로 절망의 순간에 그녀를 사로잡았던 것이다. 인간은 가장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조차 무심결에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자신의 삶을 작곡한다.


따라서 소설이 신비로운 우연의 만남에 (예컨대 부론스키안나, 플랫폼, 죽음의 만남이나 혹은 베토벤, 토마시, 테레자, 코냑 잔의 만남 같은 것) 매료된다고 해서 비난할 수 없는 반면, 인간이 이러한 우연을 보지 못하고 그의 삶에서 미적 차원을 배제한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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